임신과 출산
조산기: 6주 간의 병실 생활과 쇼생크 탈출 


3화 🛌조산기: 6주 간의 병실 생활과 쇼생크 탈출 


입덧과 임신 당뇨… 이 정도면 이제 남은 이벤트는 출산인 줄로만 알았다. 회사에 다니고 있던 나는 언제 출산휴가를 들어가야 할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2주 정도만 남겨놓으면 될지 고민하고 있었더랬다. 그때가 29주 정도였던 것 같다. 남들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싶었기에 태교 여행을 다녀왔다. 막달에는 가면 위험하다는 글을 봐 급하게 정했다. (회사 사람을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해외로도 나가고 싶었지만, 온갖 염려증을 가지고 있는 남편 때문에 국내로 정했고 비행기도 타지 않길 원해서 부산으로 가게 되었다. 부산에는 친척도 있고 친구도 있어 겸사겸사 좋은 차였다. 기차를 타고 갈 수도 있었으나 편리하게 이동하기 위해 ‘차를 끌고’ 다녀왔다. 즐거웠다.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고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다 보니 이래서 태교 여행을 다녀오는구나 싶었다. 2박 3일로 다녀왔고 집에 돌아온 날은 일요일이었다. 그날, 우리 집은 패브릭 소파를 쓰고 있고 정기적으로 커버를 교체해 사용하고 있어 마침 기분 전환을 할 겸 커버를 교체하자 했다. 커버와 솜이 짱짱하게 붙어있기 때문에 교체할 때마다 남편과 나는 ‘땀을 한 사발씩’ 흘리곤 한다. 그날따라 더 힘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다음 날이 정기검진이었다. 

가진통이 보였다. 진통이 오면 태동 검사라는 걸 하는데, 거의 막달에 하게 되는 걸로 안다. 그래프에 미미한 진통이 있으면 자궁이 열리기 시작하는 것이고 실제 출산이 임박했을 때는 그 수치가 정점을 찍게 된다. 그런데 이 진통이라는 것이 출산 때에만 규칙적으로 있어야 하는데 나는 30주 정도에 시작된 것이다. 담당 선생님께서 당장 입원해야 한다고 하셨다. 가진통의 규칙성이 없어질 때까지 꼼짝 말고 누워있어야 한다고… 혼도 엄청났다. 태교 여행 누가 다녀오라고 했냐고… 태교 여행이 필수라는 건 어디에도 없다고… 임산부가 그렇게 장거리를 차 타면 어떡하냐고… 또 임신 당뇨 때문에 여행에서 먹은 음식들을 체크하시면서 기가 차 하셨다. 갑자기 웬 날벼락 같은 일이 생긴 건지. 그냥 소파 커버를 교체하면서 배에 힘을 많이 주게 되었던 건 아닐까.

입원하고 첫날밤은 기억이 잘 안 난다. 그 당시 야근도 꽤 많이 했던 터라 처음 1주는 휴가 같았다. 예상치 못했던 이른 휴직이 시작되고 맞이한 병원 생활의 첫 1주는 그야말로 행복 그 자체였다. 화장실을 가거나 식사 시간을 제외하고는 선생님이 회진을 오실 때조차 누워있어야 했다. 업무를 제대로 인수인계하지 못해 종종 누워서 업무를 해야 했지만 그 외 시간에는 그 동안 못 봤던 영화나 드라마들을 보며 꿀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1주일 정도 지나고 나니 집에 가고 싶어졌다.

우선, 병원 밥이 정말 맛이 없었다. 진짜 그런 밥을 줄 수 있는 것일까. 안 그래도 임신 당뇨 때문에 식단 관리를 해야 하는데 병원이다 보니 내 병력을 다 알고 있을 터, 임신 당뇨인 식단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봤자 밥은 현미로 바뀌고 면 종류가 나올 때는 다른 음식으로 대체되는 수준이었다. 문제는 맛이었다. 병원 밥이 맛이 없다는 이야기는 풍문으로만 들어봤기에 입원을 거의 처음 해보는 나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하루에 마지막 당뇨 수치를 재고 나서는 간식을 많이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기한테 미안하다. 

병실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여기까지는 그래도 괜찮다. 그곳은 조산기가 있는 임산부들이 모여있는 병실이었다. 며칠을 입원하게 될지 몰라 추천해 주신 곳으로 향했다. 의사, 간호사 선생님 앞에서 늘 작은 사람이 되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터라 그대로 따랐다. 7인실이었다. 7명, 혹은 그 이하의 예비 엄마들이 매일매일을 아기를 지키기 위해 사투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없어 누워만 있는 곳).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소등하는 시간까지 아이를 잃을까봐 마음을 졸이는 엄마들의 고요하고 적막한 동침은 이어졌다. 가끔 식사하는 소리, 화장실을 이용하는 소리, 간호사 선생님이 태동을 검사하거나 수액 바늘을 교체해 주시는 소리, 회진 오신 담당 의사 선생님의 짧은 말소리 등을 제외하고는 각각의 임산부는 커튼으로 벽을 쌓은 고립된 공간에 오롯이 혼자였다. 

그러고는 어느 날 밤 누군가의 흐느끼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가만히 집중해 들어보니 자궁 경부를 묶는 맥도날드라는 수술을 하고 오신 분이었다. 아이를 잃을까일지 통증 때문이니 훌쩍이는 그 분을 간호사 선생님이 조용조용 달래주시는 듯했다. 또 다른 어느 날은 급하게 우당탕탕 소리가 나더니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고 서둘러서 나가는 소리도 들렸다. 커튼 벽 안에 누워 있는 아이를 지키지 못할 것 같은 엄마들은 모두 숨죽이고 듣고 있었을 것이다. 그분들을 위로하며…. 혹은 내 일이 안되기를 바라며… 

드라마 속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한 에피소드가 기억난다. 외래진료는 늘 예약하기 어렵고 예약하더라도 기다리는 시간이 최소 30분 이상이 걸린다. 밖에서 기다리는 산모와 가족들은 약간 화가난 웅성웅성을 하고 있는 와중에 별안간 진료받고 있던 만삭 산모의 울음이 문밖으로 터져나온다. 출생을 코앞에 둔 태아의 심장이 멈춘 것이다. 바깥의 공기는 순식간에 차분하고 무거워진다. 그 마음이 이렇게 크게 공감이 될 수가 없다. 

우리 남편은 고맙게도 나의 병실 생활 내내 함께 해줬다. 그 병실에 나 혼자 두고 집에서 편하게 자기가 미안했는지 매일 퇴근하고 돌아와서 나와 저녁을 함께 먹고 집에 가서 씻고 내게 필요한 짐을 챙겨와 간이침대에서 잠을 잤다. 남편 외에도 다른 환자 남편도 있었는데 가끔 남편들의 코 고는 소리가 웃픈 하모니를 이룰 때도 있었다. 그러다 간혹 씻으러 집에 가서는 연락이 안 될 때가 있었다. 집에 들른 남편도 너무 피곤해서 잠시 앉아 쉰다는 게 잠이 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날이면 몇 번이고 전화하다가 이내 포기하고 잠을 청한다. 괜스레 나 자신이 더 처연하게 느껴지는 밤들이었다. 

누워있는다는 것. 이게 힘들다고 하는 걸 누가 들으면 퍽 행복한 불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꽤 힘들다. 일단 배가 무겁기 때문에 누워서도 계속 움직여줘야 한다. 일어나 돌아다니면 경부 길이가 짧아질 수도 있다. 자궁 경부의 길이가 짧아지면 조산을 하게 되는 것이고 이를 막기 위해 자궁 경부를 묶는 맥도날드라는 수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다행히 경부 길이가 짧아지지는 않았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경부 길이를 위해 매일 두 번 질정제를 손가락으로 넣어야 했다. 정말 싫었다. 

담당 의사 선생님이 처음 회진 오셨을 때 얼른 일어나 맞이하려고 했지만 단박에 누워있으라고 말씀하셨다. 절대 일어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다. 언제는 손님들이 다녀가서 앉아있고 그런 건 아니냐고 물으셨다. 마침 주말에 친구들이 다녀갔던 차였다.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어느 날은 반찬을 가져다 주러 오신 엄마와 마주치셨다. 빨리 돌아가시는 게 좋다고 하며 되도록 오지 말아 달라고 하셨다. 엄마와 내가 모두 죄인이 되었다. 슬펐다.

하루하루가 희망 고문이었다. 태동 검사를 하면 가진통 그래프를 확인하는데 내 그래프는 늘 긴 진폭에 규칙적인 주기를 띄었다. 원래는 짧은 진폭에 불규칙적이어야 정상이었다. 이 가진통을 잡기 위해 내가 맞았던 수액에는 라보파라는 약이 들어 있었다. 다행히도 그 약은 보험이 되는 약이었다. 만약 라보파 약이 나에게 맞지 않아 맥박이 빨라진다든지 부작용이 생기면 보험이 되지 않는 약을 맞아야 했다. 그 약은 한 번 맞을 때 7-8만 원 했던 걸로 기억한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태동 검사를 할 때마다 기도가 나왔다. 이제는 가진통이 잡혔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나는 그 규칙성을 배 뭉침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퇴원할 때까지 가진통은 잡히지 않았다. (실제 출산 때는 그래프를 보는 게 무의미했다. 수치는 최고점을 이미 넘어섰고 가진통 때 둥글한 진폭을 보여줬던 그래프는 삐쭉빼쭉 난리도 아니었다.) 

출산 예정일을 2주 남겼던 날. 선생님이 외래를 보러 오라고 하셔서 갔더니 이제 퇴원해도 좋다고 하셨다. 가진통은 잡히지 않았지만, 어차피 이제는 아기가 나와도 위험하지 않은 시기가 왔다고. 나는 소리치며 되물었다. 정말요!!! 정말 퇴원해도 되나요? 담당 의사 선생님은 좀 당황해하셨고, 간호사 선생님은 함께 기뻐해 주셨다.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지긋지긋했던 6주간의 병실 생활은 그렇게 끝났다. 

진진통이 왔던 출산 예정일 당일 전까지 나는 진정한 휴가를 누릴 수 있었다. 이런 날이 다시 오지 않을 거라고 말하며 매일 남편 아침 밥상을 차려주었고, 집안일을 하며 아기를 맞을 준비를 했다. 집 근처 카페에 가서 미뤄두었던 외국어 공부도 했다. 몸이 자유롭지 않고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다는 건 병원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아이를 잃게 될까봐 매일 걱정하며 스트레스 받는 것과 이제는 아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건 하늘과 땅 차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여유로운 날들이 없었다. 또 다시 생각해보면 병실 생활을 했기에 느꼈던 꿀같이 단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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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09 공개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