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챌린지
주제가 있는 스낵아티클
[공지사항] '이야기 챌린지'를 소개합니다.
맘블리
2달전
  이야기 챌린지는 여러분의 일상 속 단상을 정리하여 맘블러와 공유하는 공간입니다. 맘블리에서 그동안 진행했던 이벤트 글들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해시태그 주제로 글을 작성해 주세요☺️ (태그에 쓰고자 하는 주제가 없다면 직접 주제를 결정하여 글을 작성하셔도 무방합니다.)   우수 맘블러의 글은 맘블리 큐레이션에 발행되며, 맘블리 앰버서더 지원 자격이 주어집니다.     📌우수 맘블러 선정 기준 1. 꾸준히 글을 작성한 활동자 2.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글을 작성한 활동자     📌결과발표 홀수 월 15일, 우수 맘블러 선정 후 개별 알림 메일 발송
#이야기챌린지소개
1
0
육아 가장 중요한 시기를 꼽는다면?
은주맘
2달전
한국의 유아교육이 정립된지 100년을 훌쩍 넘었지만 아직까지 유아교육의 본질과 특성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가 부족한 실정이예요. 이러한 사회 분위기가 유아교육의 근간을 훼손하는데까지 이르게 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구요. '아이들이 1년 일찍 초등학교로 진학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학제개편안은 비록 무산되기는 했지만, 일반인들과 정책입안자들의 유아교육에 대한 인식부족을 여실히 확인하는 계기었어요.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통합, 즉 '유보통합'이라는 커다란 숙원과제를 두고서는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기도 하구요. 유아교육 정책을 바로세우기 위해서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 신체 및 운동능력의 발달: 일상생활 속에서 신체를 움직일 기회의 중요성! 영유아의 신체는 급속히 발달해요. 특히, 영아기는 신체 발달이 일생 중 가장 빠르게 이루어지는 시기로, 신체 발달의 결정적 시기죠. 신체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생물학적 요인과 환경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운동능력 기술을 연습할 기회가 얼마나 주어졌는가 역시 중요한 요인입니다. 즉, 영유아는 매일 놀면서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운동능력을 터득해야 해요. 발달은 통합적으로 일어나므로, 신체 운동과 감각을 통해 영유아는 인지적으로 탐색을 하며 개인의 지식체계로 구조화하고, 이러한 대소근육의 움직임은 뇌신경 발달을 촉진합니다. ◇ 뇌발달: 영유아기는 뇌 성장의 급등기 인간이 평생 갖게 되는 1~2억 개의 뉴런(신경세포)은 태내기 때 이미 다 형성되나, 시냅스(뉴런과 뉴런을 연결하는 공간)의 형성이 급속하게 이루어지는 시기인 영유아기가 뇌 성장의 급등기예요. 따라서 이 시기에 적절한 환경적인 자극과 경험은 필수적이구요. 영유아가 ‘직접’ 사물을 보고 만지고, 언어와 다른 소리를 듣고, 환경을 탐색하는 일상적인 경험에서부터 뇌는 정상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특히, 만 4세 이전에는 눈과 손의 협응이 원활하지 못하며 이에 따라 만 4세 유아는 성인보다 주의집중 시간이 짧은 편이예요. 이는 눈과 손의 협응을 관장하는 뇌영역의 수초화(신경전달의 효율성을 가속화하는 미엘린(myelin)이라는 절연지방 세포막으로 신경세포를 감싸는 과정)가 만 4세 이전에는 발달하지 않기 때문이예요. 즉, 유아교육기관에서 필요시 진행되는 대소집단 활동은 대체로 10~20분을 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는 이러한 뇌과학적 근거를 두고 영유아의 발달적 특성을 반영한 것이죠. ◇ 언어발달: 영유아기는 모국어 습득의 민감기 대뇌피질의 언어영역 시냅스는 생애 첫 2년 동안 빠르게 형성되며 이후 가지치기를 한 후, 만 6세 경에 성인의 수준에 도달해요. 따라서 모국어는 생의 초기에 획득되어야 하며, 이 시기가 바로 언어 자극에 가장 민감한 시기죠즉, 모국어 습득이 언어의 올바른 발달을 위한 가장 중요한 발달과업(UNESCO, 2022)임을 명심해야 할 거예요. 하지만 여전히 안타깝게도 많은 부모들은 이 시기의 외국어 노출이 영유아의 외국어 습득에 도움이 될 것이라 오해하죠. 하지만 뇌과학적으로 보면 외국어 교육이나 문자지도는 언어능력을 담당하는 측두엽이 성숙하는 만 6~7세 이후가 해요! 영유아기는 모국어 문법 체계의 완성이 가장 중요한 발달과업이며, 외국어 교육은 그 이후인 아동기가 교육의 적기지요! ◇ 인지발달: 영유아는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 능동적인 학습자 유아교육에 영향을 미친 사상가 중 체계적인 인지발달 이론을 처음 제시한 피아제는 영유아가 자신의 학습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강조했어요. 영유아는 비록 성인이 보기에는 비논리적일지라도, 경험과 성숙, 내적인 사고작용을 통하여 지식을 구성하는 학습의 주체자로서 고유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어요. 영유아는 본인이 직접 몸을 움직이며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지식을 구성해가는 특성이 있으므로, 언어를 통한 논리적 접근으로 지식을 구성하도록 강요받는 것은 발달상 적합하지 않으며 영유아의 자율성을 저해한다는 점을 분명히 인지해야 할 것예요. ◇ 결론: 고유하며 특별한 영유아기 발달 영유아기는 신체 및 운동, 뇌, 언어, 사회정서 및 인지의 모든 측면에서 발달의 변화가 크고 개인차가 큰 시기입니다. 각 영역의 발달은 독립적이지 않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통합적으로 발달한구요. 개별 영유아의 발달 수준에 적합한 교육과 돌봄을 위해서, 교사는 영유아 발달지식에 기초하여 세심하게 관찰하고, 개별 영유아들이 건강하게 발달하고 있는지 어떤 발달적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영유아기의 발달은 그 이후의 발달단계에 비해 매우 고유하며 특별하다는 것이예요!
#육아
#육아노하우
2
0
우리 아이의 반려 친구 만들어주기!
주*맘
2달전
강아지가 아기를 보호할 수 있나요?네, 강아지는 아기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어요.
일반적으로 강아지는 가족 구성원을 보호하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에 아기를 보호하려는 자연스러운 욕구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강아지의 성격과 훈련 수준, 그리고 아이와 강아지와의 관계에 따라 다를 수 있어요.
오늘은 강아지와 아기가 함께 안전하게 생활하기 위한 팁을 이야기 해볼게요. 강아지가 아기를 보호하는 경우강아지가 아기를 가족 구성원으로 생각하는 경우, 보통 강아지는 아이를 보호하려는 본능을 갖습니다.
하지만 강아지가 아기에 대한 경험이 없거나, 아기와 강아지 관계에 긴장감이 있는 경우에는 특히 주의해야 하죠.
특히 강아지가 아기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보일 수 있으므로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강아지가 아기를 가족 구성원으로 인식하는 방법1.강아지에게 아기의 존재를 미리 알리기아기가 새로 태어난다면, 강아지에게 아기의 존재를 미리 알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아기가 사용할 침대나 물품들을 미리 구입해 변화될 집 안의 환경을 적응시켜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또한 집으로 오기 전, 아기가 사용한 양말이나 옷 등으로 냄새를 먼저 익히게 해 주면 좋습니다.2.강아지와 아기의 긍정적인 첫 만남 만들기긍정적인 첫인상은 강아지가 아기를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보호자가 아이를 과잉보호하거나 과한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충분한 거리에서 첫 만남을 갖되 아기와 함께하는 시간을 점진적으로 늘려주세요.3. 아기에게도 반려견을 대해는 태도 알려주기신생아나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아기에게 교육이라는 것은 쉽지 않죠.
하지만 아기들에게도 강아지를 쓰다듬을 때의 방식에 대해 반복적으로 연습시켜 줘야 합니다.
아기가 강아지의 털을 움켜잡거나, 세게 내리치는 행동은 위험한 행동이라는 것을 계속적으로 알려줘야 해요.Q. 강아지가 아기를 보호할 수 있나요?
A. 네, 다만 가족 구성원으로 인지해야 합니다.아기를 보호하는 강아지를 빈번히 볼 수 있죠.
하지만 모든 강아지의 성격과 훈련 정도가 다르므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행복을 함께 할 수 있는 가족의 구성원이 늘어나는 일인 만큼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죠.
그럼 이 글을 통해 강아지와 아기의 만남을 앞두고 있는 반려인에게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반려동물
#인사이트
2
1
우리집 천사가 온 첫해의 인테리어 도전기!
김미혜
2달전
새집증후군, 아토피, 낙서, 층간소음 등등.. 아이방 인테리어는 아무래도 더 심혈을 기울여 고르게 됩니다. 아이의 건강과 편의는 물론, 엄마아빠의 공간 관리에 대한 수고까지 생각하면 선택이 너무 어렵죠. 그래서 이번 편에서는 간단한 설명과 함께 대표 자재 추천을 통해 부모님들의 고민을 덜어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아이와 가족을 위한 아이방 리모델링 자재를 알아볼게요.1. 손때도 낙서도 걱정없는 벽 마감재아이의 크레파스와 알록달록 손바닥으로부터 집을 지키려다보면 아이를 키우는건지 집을 모시고 사는건지 헷갈릴 때가 많죠. 아이가 더 자유롭게, 깨끗한 벽 더러워질까 걱정 없이 놀 수 있도록! 오염에 강한 벽 마감재를 알아볼게요.1-1. 실크벽지장점 코팅면이 있어 오염이 잘 생기지 않고, 오염이 되더라도 물걸레로 손쉽게 닦아낼 수 있어요.단점 합지 벽지에 비해 가격이 비싸요. (합지 95만원/ 34평 기준 대비) 코팅면에 따라 아토피를 악화시킬 수도 있어요.34평 기준 가격 120~140만원 (철거 미포함/인건비 포함)아마 아이 있는 집에서는 기본적인 벽 마감재로 가장 먼저 떠올릴 소재! 다소 가격이 있음에도 오염관리가 쉽고 내구성이 좋아 폭 넓게 사용되는 벽 마감재입니다. 일반 합지 벽지 보다 한 겹 코팅이 더 된 소재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다만 이러한 코팅면이 친환경 제품이 아닐경우 아토피가 심한 아이에게 발진을 일으킬 수 있으니 주의해주세요!1-2. 페인트장점 부분 시공, 셀프시공이 가능하여 오염이 되어도 쉽게 덧칠할 수 있어요단점 벽지에 비해 딱딱한 마감과 차가운 느낌을 주어 사용감이 떨어질 수 있어요34평 기준 가격  30만원~40만원 (실내용 수성페인트 / 퍼티와 인건비 미포함)페인트는 셀프 시공이 비교적 쉽고 더러워져도 덧칠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부모님들의 마음이 가는 마감재입니다. 많은 경우 실크벽지보다 자재비와 시공비가 저렴한편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마감 퀄리티에 따라 도배 못지않은 비용이 드는 경우도 있대요!) 친환경 페인트를 사용하면 도배 접착제 유해성분 걱정도 덜 수 있다는 것 또한 장점입니다.가벼운 자석 부착과 자유로운 분필 사용이 가능한 칠판 페인트는 아이가 있는 집의 워너비 페인트! 1L당 3만원정도로 일반 수성페인트에 비해 5배정도 비싸지만, 벽면이나 문 일부만 칠하면 1L도 아주 넉넉한 양이라 부담없이 셀프 시공이 가능해요!우리 아이 방, 이 벽 마감재는 피해주세요합지벽지 : 코팅면이 없어 오염될 경우 닦기가 어렵고 습기와 마찰에도 약해요2. 엄마아빠 마음 쿵!하지 않는 바닥재아무리 조심시켜도 아이가 가만히 앉아만 있기는 참 어렵죠. 뛰지말라고 외치면서도 넘어지면 어쩌나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얌전히 앉아있다가도 장난감을 휘둘러 바닥을 쿵쿵 내리치기도 하구요. 충격에 강한건 물론 층간소음 걱정까지 덜 수 있어서 엄마 아빠 걱정시키지 않는 착한 바닥재를 알려드릴게요.2-1. 강마루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위해 마루를 하고 싶지만 손상이 걱정된다면 강마루로 선택해보세요. 가공목 위에 나무 무늬지를 씌워 코팅한 형태로, 표면 처리가 되어 있어 오염과 손상에서 자유로운 편이에요. 장점 마루 중에서 강도가 강한 편이고, 이물질이 묻었을 때도 쉽게 닦을 수 있어요. 바닥과 밀착되어 소음이 덜해요.단점 두께가 얇고 딱딱한 소재다보니 충격 흡수가 다소 약한 편이에요.2-2. 장판일반적으로는 1.8~2.2T* 제품을 많이 사용해요. 하지만 4.5~6T정도로 두꺼운 제품들도 층간소음 절감과 편안한 보행감을 앞세워 여러 브랜드에서 출시되고 있답니다. 한동안 마루에 밀려 싸구려 바닥재 취급받았던 장판이 어린아이와 노약자가 있는 집을 중심으로 다시 사랑받고 있어요.장점 쿠션감이 있어 소음과 충격이 흡수되기 때문에 아이가 넘어져도 충격이 덜하고 층간소음 방지 효과도 우수해요. 수분과 마찰에도 강해서 오염도 손쉽게 지울 수 있어요.단점 한 자리에 무거운 물건이나 가구를 오래 두면 눌림 자국이 날 수 있어요.우리 아이 방, 이 바닥재는 피해주세요타일 : 충격과 소음 흡수가 되지 않고, 물건을 떨어트리면 물건이 잘 파손됩니다. 타일 컷팅면에 잘 베일 수도 있어요.원목마루, 합판마루 : 표면 강도가 약해서 흠집이 잘 나고, 수분에 약해서 오염관리가 어려워요강화마루 : 접착없는 클릭 방식*이라 마루사이, 마루와 바닥 사이에서 소음이 많이 나요초보탈출 Tip 코르크패드는 뭔가요?코르크패드는 마루/장판/타일과 바닥 사이에 까는 바닥재에요. 두께에 따라 20~30db 정도 소음 감소 효과가 있다는 점! 강화마루를 시공하고 싶지만 층간소음이 걱정되는 경우 보조재로 많이 사용하는 추세에요. 장판만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을 때도 아래에 덧대어 시공할 수 있습니다. 구매 전에 시공 가능한지 전문가에게 사전 확인은 필수!
#인테리어
1
0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쵸파곰
4달전
어느 덧 엄마가 된 지 13년이 되었습니다. 기나긴 듯 쏜살같이 지나가버린 시간입니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늦게 지나가길 바라고 있습니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아이와 만나는 첫 순간부터 두렵고 설레고 긴장했습니다. 첫 만남은 아름다운 울음소리와 나에게서 나올 수 있는 최고의 미모를 가진 머리카락이 수북한 아기였습니다. 전 너무 무지했고 그래서 아이를 보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66일의 기적이 오고 어찌 보냈는지 모를 1년반이 지나니 아이는 걷기 시작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않던 저는 놀아주는 법을 몰라 장난감을 사고 문화센터를 다녔습니다. 집밖이 더 편했습니다. 그 사이 눈빛이 초롱했던 아이가 조금씩 눈이죽어가고 발달이 늦어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제서야 아이와 죽도록 놀기 시작했습니다. EBS에 나오는 만들어봐요를 돌려보며 전편을 아이와 함께 만들기를 했습니다. 물감을 퍼붓듯이 사용하고 퍼즐, 인형소품들을  잔뜩사서 아이가 원하는만큼 몇 시간이고 인형놀이를 했습니다. 그렇게 죽도록 놀다보니 아이는 다시 반짝이는 눈빛으로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시행착오도 많았고, 점점 규칙과 훈육의 중요성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훈육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 지 못했고 불쑥불쑥 어린 내가 튀어나와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내 아인데 왜 질투가 나고 부럽고 그랬을까요? 어린시절의 나는 너무 외롭고 힘들고 그래서 였을까요? 아이에게 큰 사랑을 주는 엄마가 되고싶어서 나자신을 돌아보고 내아이를 바로보며 뼈를 깎는 고통으로 알고자 노력했습니다. 머리카락이 하얘지더군요. 그렇지만 그 흰머리카락은 그 만큼 아이를 위해 생각한 노력의 증거라고 생각합니다.힘들 때 남편만이 오롯이 함께 걸어주었습니다. 길잡이도 되어주고 힘들어 주저앉을 때 뒤에서 밀어도 주고 제가 성장하길 차분히 기다려주었습니다. 아이를 키울수록 친정엄마가 이해가가지 않았습니다. 순간 뇌리를 스치더군요. 엄마는 날 사랑하지 않았구나. 집에서 키우는 개처럼 가끔 생가날 때 쳐다봐 주었던거구나. 제가 엄마에게 집착하는 마음이 가스라이팅으로 인한 불안정애착이라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제아이를 지키기 위해선 제가 바껴야했습니다. 정말로 저 자신이 독립이 시급했습니다. 수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실망하고 기대하고 다시 실망하다 떨리는 목소리로 독립을 선언했고 다시 나를 재정비했습니다. 내 아이는 나처럼 키우고 싶지않았고 지켜주고 보호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주가도고 달이 되고 몇 년이 지나니 나의 마음도 단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남들 눈치보고 나를 낮추고 을질만하던 자존감 낮은 내가 주변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게 되었고 길이 없다고 선택도 책임도 지지 않던 내가 선택을하고 책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지금은 10년 전 제가 이해가가지않고 그 때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습니다.아이가 성장할 수록 엄마도 성장해갔습니다. 추월도 당하고 나란히도 뛰어봅니다. 어느 덧 아이는 조금씩 엄마의 손을 벗어나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대화를 하다보면 자리는게 보이고 놀라움의 연속입니다.학교생활 얘기에선 아이의 말은 잘 들어주데 아이의 일에서 끝나야지 나의 감정을 덧씌워 부정적인 감정을 아이것인냥 느끼지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간혹 아이는 아무렇지 않은데 부모가 제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싸움이 나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내아이도 누군가의 아이도 처음을 경험하고 배워나가고 있으니 넘어지면 일어서기를 어른들이 옆에서 잘 지켜봐주면 되지않을까요? 손을 뻗으면 잡아주려 기다리고 혼자 일어서면 따뜻하게 지켜봐주는 기다림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내 아이와 주변이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가겠지요.어른이 되지 않는 둘째 개들래미도 합세하며 엄마가 처음인 나는 책임지는 집사도 처음이 되었습니다. 아이의 외침으로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려온 개들래미는 우리가족과 꼭 맞는 성향이였습니다. 처음에는 소변으로 고생했고 지금은 산책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매일 힘들지만 매일 우리가족이 개들래미에게 힐링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기억이 우리 가족에게 생겼습니다. 내실수로 마음이 철렁 내려 앉은적도 있지만 그 일로 한층 더 나를 다시 돌아보고 마음이 단단해졌습니다. 나에게 아이들은 지금의 내가 있게하는 양분이고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던 이상한 고집도 버릴 수 있었고 힘들면 바람빼는 버릇도 없어지고 무엇보다 남탓하지 않고 일단 나를 다시 돌아봤습니다. 나만 주변을 양해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를 뿐 주변도 나를 양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기며 더불어 사는 사회의 나를 다잡았습니다. 극심한 회피형이라  도망가고 싶은 일이 많았지만 지금은 숨한 번 돌리며 끝까지 생각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매일매일 보고또봐도 보고싶고 사랑하는  내 아이. 그렇게 마음에 아이에 대한 사랑이 쌓여갑니다. 아이를 알게되니 아이가 더 사랑스럽고 나를 알게되니 더 큰 사랑을 담을 수 있게되었습니다. 오늘도 노력하고 실수를 인정하고 반성하고 아이의 노력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칭찬해줍니다. 아이를 건강하게 독립시키는 그 날까지 엄마도 엄마는 처음이지만 아이와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큰 사랑을 주는 엄마가 되는 그 날까지 화이팅입니다.
#부모성장
1
0
두 아이의 엄마, 그리고 교사
땅콩딱
4달전
나의 두 아이들에게하윤아, 너는 사랑의 씨앗엄마, 아빠를 연결해준 고마운 씨앗네가 움 틔우고 싹을 내는 시간 동안따뜻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 촉촉한 비가 널 감싸주었지활짝 피어 따뜻하고 시원하고 촉촉하게 세상을 감싸주는 사랑이 되길.호윤아, 너는 평안의 씨앗엄마가 가장 건강하고 넉넉할 때 만난 아이우리 가족 행복하고 단단히 다져줄 씨앗마음 넉넉하고 건강하고 든든한 너를 기다리며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굳건히 서 있을 수 있어너라는 존재만으로 우리 가족 모두 평안하기를 기도해본다.————————————————————————나는 엄마다첫 아이를 낳았다휠체어를 타고 아이를 보러갔다아픔에 누워있다 퇴원했다그렇게 3년..아이를 또 낳았다이튿날 링겔대를 잡고 걸어 아이를 보러갔다저녁엔 가스가 나와 죽을 먹었다다음날 링거 없이 아이를 보러갔다젖이 불어 오르는 열 속에 유축을 했다내 몸이 알고 있다내 새끼들 곁으로 바지런히 가고 싶은 내 맘을나는 엄마다(2021.08.02)————————————————————————새벽 두시반. 자야한다는 걸 아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호윤이가 열이 난다. 38.8도. 해열제는 먹이지 않고 부랴부랴 열 내리는 마사지를 인스타에서 찾아 자는 아이 팔을 들고 기도하듯 이곳 저곳을 100번씩 만져주었다. 내일 어찌해야 하나. 근무를 해야하니 어린이집은 가야하고, 미리 내어놓은 육아시간이 있으나 3시에 데리러 가기엔 아이가 너무 걱정된다. 다시 기결취소하고 조퇴를 내야하나.. 자기전 끙끙대는 아이가 수상쩍어 보초를 섰더니 여지없이 열이다. 엄마들의 촉이란 참 대단하다. 그래도 다행히 식어가던 손발이 뜨끈해져간다. 손발이 차가워지면 열이 더 오른다는 신호라 더 촉각을 세워 지켜야 하는데 한켠 여기서 더 오르지는 않겠지 안심을 해본다. 9월 1일 복직을 했다. 육아휴직 중에는 “애 둘 엄마예요.”라고 소개하곤 했는데 이제는 엄마이자 교사인 투잡러가 되었다. 아직은 집에 와서 집안일 하고 밥 차리는게 내 본업인양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교사 옷은 왠지 어색한. 1학기를 마치고 그만둔 선생님의 고단함을 고스란히 느끼며 매일 상담전화를 하고 일지를 기록하고 있다. 학년은 2학년인데 고학년 생활지도 하듯 어제는 수업을 멈추고 한명씩 불러 개별상담도 했다. 한 아이는 늘 화를 달고 산다. 다리가 아프다고 해서 쉬라고 했더니 아무것도 못한다면서 화, 같이 왔다갔다 하다 실내화끼리 살짝 부딪혀도 화, 만든 것을 전시하고 두고 가라고 했더니 가지고 갈거라고 하며 화를 내곤 그냥 가버리기도 한다. 첫날부터 자기를 만졌다고 화를 내던 아이는 복직하고 3일째 되던 날 과제 하고 하교하라고 했더니 화를 내며 가방을 싸고 집으로 가버렸다. 수업 중에 화가 나면 갑자기 교실 밖으로 나가버리기도 한다. 아이의 화받이가 되어버린 나는 한켠으론 아이가 밉고, 한켠으로 계속 화를 내는 녀석이 안타깝기도 하다. 들어보니 1학기때 아이아 아파 엄마에게 연락을 했는데 데리러 오지 않았다고 한다. 엄마도 아이가 버겁겠다 싶다. 매일 아침 8시면 학교로 오는 아이. 엄마도 도피처가 필요하진 않았을까? 어쨌든 그 아이의 영향력과 더불어 수업진행이 어려운 우리반 덕에 하윤이, 호윤이를 만나는 일은 더없이 수월하고 반가워졌다. 그런데 복직한지 4일째 되는 날부터 하윤이가 열이 난다. 광주에 계시는 시부모님이 오셔서 하루를 봐주시고 어찌어찌 주말이 왔고 일요일 강릉 병원으로 달려가 검사도 받고 열이 잘 내리는 듯 해 월요일 유치원에 갔다. 배가 아프다며 보건실에 있던 아이가 설사를 하고 울고 난리가 났다. 급히 신랑이 조퇴를 하고 하윤이를 데리고 가며 걱정말라고 전화를 했는데 하윤이가 엄마를 찾으며 울부짓는다. 그 소리를 듣고 나서부터 아무 생각이 안들었다. 전주 수요일부터 열보초 서느라 잠을 못잔 탓도 있으리라. 동학년 선생님들에게 이야기를 하다 왈칵 눈물이 나버렸다. 얼른 들어가라고, 당장 가보라며 전담 있으니 이날은 우리가 돌아가면서 봐준다고 가족돌봄휴가 다 쓰라고 이야기를 해주셨다. 여러 배려속에 휴가를 쓰고 하윤이를 봤고 참 희안하게도 엄마가 도착한 그 순간부터 하윤이는 괜찮아졌다. 그에 이어 호윤이 중이염이 시작되긴 했지만. 집에 있는데 반 아이들 생각이 난다. 누구에게 부탁하기에 날선 녀석들이기에 잘 있으려나 걱정이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시 돌아온 그날 보결 선생님이 잔뜩 써 놓으신 아이들 사건 기록을 보아야했다. 하하하하. 이건 교사의 촉인걸까? 매일 소리지르며 교사로서의 나를 시험하는 아이들임에도 서로에게 스미고 있다는 뜻일까? 어쨌든 복직하고 보니 교사이자 엄마인 그녀들의 종종거림을 마주하게 된다. 오늘도 부장님은 아이가 아파 내일은 못나올 것 같다며 동학년 선생님들께 부탁을 하고 갔다. 그냥 그렇게 사는 일. 한켠으로 걱정했던 복직은 그렇게 지나가고 또 일어나고 있다. 호윤이가 뒤척인다. 얼굴을 지푸리며 온 몸을 쭉 뻗는다. 핸드폰 후레시를 켜고 체온계를 켜 체온을 잰다. 38.9. 떨어져라 열아. 부디. 잘 이겨내자. 내 아들아. (09.20 새벽에)
#부모성장
1
0
아침에 딸의 머리를 땋다가... ...
김*니카
4달전
아침에 딸의 머리를 땋다가, 딸을 샤워시킨 후 딸의 머리를 말려주다가, 병설 유치원 다니는 딸의 점심 도시락을 싸주다가 갑자기 원망스러운 마음이 올라와 울컥할 때가 있다. 남들은 출산을 경험하고 엄마가 되면 친정엄마의 한없는 은혜를 깨닫고 엄마와 사이가 더 각별해진다는데, 나는 엄마가 되고서 참으로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살고 있다. 평생 쉬지 않고 몸이 부서져라 육체노동을 이어오며 책임감이 결여된 친정아버지를 대신해 우리 식구를 먹여 살린 엄마에 대한 고마움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나에게 엄마의 존재는 내가 사는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자랑스러운 딸이 되어서 엄마가 온 몸으로 노동하여 나를 길러준 것에 대한 심리적인 보상도 드리고 싶고, 돈을 많이 벌어서 엄마의 육체적 노동도 멈추어 드리고 싶기에 지금도 여러가지 도전을 이어 오며 살고 있다. 이런 효녀 심청이인 내가 딸을 낳고 보니, 나 자신이 엄마가 되고 보니, 문득문득 엄마에 대한 원망이 솟구쳐서 당황스럽다. 아침 등원 전 딸의 머리를 땋아줄 때면 식당 문을 열기 위해 새벽 일찍 출근하여 부모님이 없는 집에서 언니와 내가 고사리 손으로 서로의 머리를 땋아준 기억이 난다. 병설 유치원을 다니는 딸아이의 도시락을 싸줄 때는 직접 도시락을 싸다니던 초등학교 3학년의 내가 떠오른다. 마침내 전국적으로 급식이 실시되었던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3년 내내 아침에 스스로 계란물을 입혀 햄을 굽고 비엔나를 구워 도시락을 싸던 기억이 떠올라 울컥할 때가 많아졌다. 내가 엄마가 되어 아파트 놀이터에 나가보니 7세인 내 딸보다 한 뼘 정도 더 큰 여자아이가 그네를 타고 있다. "너는 몇 학년이니?" "3학년이요." "아, 그래. 네가 3학년 이구나... …" 내 딸보다 겨우 한 뼘 더 큰 네가 3학년이구나. 이제 겨우 그네 줄을 야무지게 쥐기 시작할 무렵이 3학년인데… … 새벽에 알람소리 듣고 스스로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언니 것까지 도시락 2개를 매일 싸던 어린 내가, 겨우 저 그네 타는 아이만 했을 것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나이를 먹을 수록 마음이 더 깊어지고 철이 들어야 되는데 나는 어쩜 사춘기에도 없던 반항심이 마흔이 다 되어 올라오는 것인지… …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누구보다 애썼고 그 당시 엄마로서는 아침 식사까지 맡아가며 식당을 운영했어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으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지금까지는 늘 그렇게 이해를 했다.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까지는… … 내가 엄마가 되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는 선택', '피치 못 할 상황' 이라는 감정에 대한 호소가 모든 이성적 사고를 눌러왔기에 나는 엄마를 이해해주는 착한 딸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혼자서는 반팔 티셔츠도 스스로 벗지 못하고, 물 한잔 안 흘리고 스스로 잘 마시지 못하는 게 아이들인데, 어린 아이에게 나의 친정엄마는 너무 큰 짐을 지워준 것이 아니었나. 내 눈으로 어린 나를 마주하고 나니 자꾸 의문이 들었다. 단지 육아나 자식의 안전 따위가 엄마에게 우선순위가 아니었던 것이 아닐까? 책임감없는 아빠를 푸쉬하기 보다는 포기하는 것이 오히려 더 편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엄마 자신이 일선에 서서 생계를 해결한다는 변명으로 자식이 후순위로 밀리는 것을 자기합리화 한 것이 아닐까? ‘어쩔 수 없는 선택’ 이란 것도 어쨌든 엄마가 주체적으로 결정 내린 선택이 아닐까? 이성이 감정을 압도하여 이런 질문들을 해대기 시작하자 원망과 분노가 솟구쳤고 아침마다 불 앞에서 고사리 손으로 도시락을 싸는 어린 내가 떠올라 마음이 복잡했다. '가게 때문에... 가게 때문에...' 여느 친정엄마들이 챙기는 딸들의 사사로운 경조사. 출산이라든지, 출산 후 몸조리 라든지, 자취할 때 부모님의 방문이라든지, 해외에서 들어올 때 공항에 마중을 나온다든지... ... 이런 종류의 살뜰한 챙김은 '가게 때문에' 여유가 없는 우리 친정엄마는 당연히 못해주는 것이었다. '당연히' 라는게, 과연 당연하게 존재하는걸까. 무언가를 당연하게 만드는 것도 결국 본인의 선택 아닐까? 이런 생각들을 평소에 자주 하다 보니 내 입은 통제력을 종종 잃곤 한다. 어느 명절 날 친정에서 온 가족이 둘러앉아 가만히 티비를 잘 보다가, 드라마에서 친정엄마가 결혼한 딸의 몸조리를 도와주는 장면을 보면 갑자기 엄마에게 악다구니를 퍼붓는 것이다. '엄마가 우리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고 정말 열심히 산 것은 무조건 인정하고 고맙게 생각하지만, 살뜰하고 세심하게 챙겨주는 친정엄마 역할로 보면 엄마는 빵점이야.' 내 딸이 커서 늙고 힘이 없는 나에게 '이래서 나는 엄마한테 섭섭하고 저래서 원망스럽다.' 라고 하면 억장이 무너지고 속이 뒤집어질 것 같기도 같다. 그래서 나부터 친정엄마에게 마음을 곱게 쓰려고 하는데도 잘 안 되는 걸 보면 나는 한참 모자란 인간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오늘 아침에 딸의 머리를 땋다가...
#부모성장
0
0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엄마를 이해하기
랄랄라가을
4달전
엄마는 정말 치열한 삶을 살며 나를 키우셨다.그나마 변변찮은 수입을 가져다 주던 아빠와 이혼을 하고 난 2000년대 초반 엄마의 한달급여는 대략 120만원 남짓 이었는데, 엄마는 그 돈으로 엄마, 언니, 나 이렇게 세 식구 한달 내 먹을 장을 보고 그 외에 각종 공과금을 냈다. 당시 학기당 등록금이 300만원을 조금 넘었으니 연간 가계 지출 중 내 등록금으로 나가는 돈은 대략 600만원. 당연히 그 금액을 오롯이 엄마 혼자 부담하기엔 현실적으론 불가능했다. 터무니없이 부족한 등록금을 메꾸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다. 아이스크림 가게 , 빵집, 레스토랑, 죽 집, 패밀리레스토랑 ... 아르바이트에 장소와 직종을 구분 했던 적은 없었다. 무조건 돈이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아르바이트 중 수입이 가장 좋았던 직종은 백화점 판매원이었는데 운 좋게 얻은 자리는 아니고 당시 백화점 판매원으로 일하던 엄마의 도움을 살짝 받았더랬다. 이십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백화점근무에 대한 기억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우선...백화점 일은 정말 고되다. 식사시간 이외엔 앉지 못하고 10시간 이상 서있어야 했는데 그것이 제일 힘들었다. 저녁만 되면 종아리에 뜨거운 기운이 치솟았고 신발 속에 욱여넣은 발은 퉁퉁 불어 퇴근할 때 즘이 되면 양말 너댓장을 덧대 신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당시 엄마는 이 일을 시작한지 햇수로 14년차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엄마와 함께 일을 하고 난 순간부터 나는 엄마가 신기해지기 시작했다. 엄만 하루 종일 다리가 부르트도록 악착같이 일하고도 집에 와선 먼지 한 톨도 보이지 않게 청소를 했다. 어쩌다 하루 쉬는 날이면 베란다를 활짝 열고 이불을 털고 온 집안을 뒤집어 쓸고 닦은 뒤 사방의 벽지를 젖은걸레,마른걸레 순서로 한번씩 닦았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빌라(당시 우리의 거처였던-)의 계단청소를 도왔다. 그녀는 정말. 원더우먼이었다. 지난 삼십팔년간 엄마에게서 발견하지 못한 단 하나는 바로 '나태함'이다. 나는 엄마가 슬픔에 못 이겨 주저 앉아 울거나 술을 잔뜩 마시고 몸을 비틀거리거나 혹은 우울한 안색을 띄는 것조차 본적이 없다. 언제나 당차고 씩씩한 우리 엄마. 그것은 엄마가 태어날 때부터 장착한 엄마만의 굳건한 기질적 측면처럼 보였다. 그런 그녀를 나는 존경했다. 엄마의 삶은 파란만장 했지만, 삶을 이겨내고자 하는 엄마의 역동적인 모습은 내게는 꽤 인상적이었으니까. 때문에 어린시절 사람들이 '네가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냐' 라는 질문을 할 때마다 나는 망설임 없이"내가 제일 존경하는 사람은 바로 우리 엄마입니다" 라고 말하곤 했다.굳이 따지자면 나는 외적으로 엄마를 많이 닮았다. 심지어 나이가 들수록 더 닮아간다. 언젠가 언니가 "야, 너는 웃음소리도 엄마랑 똑같아진다" 라면서 웃으며 말할 정도.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를 닮았다는 사실이 좋았다. 엄마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건 우습게도 내가 아이를 낳고 난 뒤 부터다. 아이를 낳고 지겹도록 많은 시간을 혼자 보냈다. 신생아 시절 아가는 먹고, 자고, 싸고, 울고 이 네 가지를 번갈아 가면서 혹은 동시에 했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바쁜 와중에 틈만 날 때면 놀랍도록 집중적으로 자아성찰을 했다. 대부분 나를 중심으로 둘러싼 세상에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나는 왜 그렇게 생각했으며 행동했는지. 그것이 대체 어떤 기저로 인한 결과값인지에 대한 것들이었다. 놀랍게도 내가 싫어하는 나의 파편들의 기저엔 '엄마'가 있었다. 엄마와 나는 사실은 잘 맞지는 않았다. 엄마 앞에만 서면 난 늘 주눅이 들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하는 생각들과 행동들을 쓸데없다고 치부해버리는 엄마의 모습이 생각 난다. 엄마는 늘 나에게 한탄 섞인 잔소리를 했다. "으이구 니가 하는게 그렇지 뭐." " 또 니가 그랬지?"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시끄러 노래 좀 부르지마" 나는 이런 말을 숱하게 들어며 살았고 그러다가 정말 그런 아이가 되었다.내 말과 감정을 들어주지 않은 채 지나간 무수한 시간들... 자존감이 떨어지고 자신감이 줄어들었다. 무슨 일에 앞장서서 하지 않았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미움 받지 않으려 끈질기게 노력했다. 간혹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 끌려다니는 연애를 했다. 물론 엄마의 발언은 나의 행동에 대한 결과값이다. 내가 청소를 잘 했더라면, 약속시간에 늦지 않았더라면. 지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엄마는 나에게 모진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나는... 사춘기 시절 부모의 이혼에 비뚤어 진 적이 없다. 제일 중요한 시기에 학원을 다니지 못했지만 단 한번도 남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성적을 받아본 적은 없다. 내 성적은 오히려 상위권에 가까웠다. 쾌활한 성격으로 엄마에게 적극적인 애정표현도 많이 했으며 열심히 일해 학비를 벌었고, 남은 학자금 대출은 스스로 갚았다. 그 와중에 엄마에게 단 한번도 아쉽거나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이렇 듯 무수히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나지만 엄마에게 칭찬받았던 기억이 별로 없다. 만약 그때 엄마가 나에게 "엄마는 너가 이런 행동을 하면 속상해 (방법)처럼 해주면 어떻겠니? 엄마는 널 믿어" 라는 등의 육아서에 나올만한 말을 많이 해 주었다면. 청소하는 시간을 줄이고 내 눈을 보며 매일 있었던 사소한 이야기를 나눴더라면 그렇게 나에게 무한한 긍정의 의지를 심어줬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되어있을까? 내가 별로 맘에 들어하지 않는 나의 파편들의 기저에서 엄마를 만나고난 뒤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처럼 되지는 말아야지. 엄마처럼 자식의 가능성에 한계를 긋고, 자존감을 키워주지 않고, 모른체 방임하지 말아야지. 이렇듯 내가 현재 바라보는 '엄마'는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다만 나이를 먹을 수록 나는 엄마가 '나의 엄마로 살았던 시간'보다 엄마가 되기 이전의 삶에 대해 이해하고 또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엄마가 조각 조각 이야기 해주는 유년 시절을 이어 붙여 보면 엄마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다. 엄마는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어렸을 땐 식모살이를 간 적도 있다. 중학교에 갈 돈이 없어 운동부에 입소해 운동을 하며 학교를 다녔고 그나마 그 운동부마저 부진한 성적으로 폐지가 되자 엄마를 안타깝게 보던 당시의 중학교 담임선생님이 고등학교 입학금을 대신 내 주어서 간신히 고등학교까지 마칠 수 있었다. 당연히 대학은 꿈도 못꾸었다. 졸업 후에는 막 의류 사업을 시작한 외삼촌에게 노동착취를 당했다. 외할머니는 그닥 인자하신 분은 아니었는데 돌아가시기 전까지 내가 들은 유일한 칭찬은 "동그랑땡에 들어갈 당근을 참 잘 써는 구나" 였다.엄마는… 어린 나이에 깨달은 삶의 팍팍함으로 누군가에게 온전한 사랑을 내어 주지 못하게 되었던 것일까. 가부장적인 할아버지와 다정하지 않은 할머니 밑에서 맏딸로 어떤 역할을 하며 살았을까.무능한 남편, 쌓인 빚, 사춘기 딸 둘. 눈 앞에 닥친 현실을 헤쳐 나가기 위해 남몰래 흘린 눈물도 분명히 있었을 것 이다. 엄마와 함께 살 땐 이정도로 깊게 엄마에 대한 생각을 할 수는 없었다. 취업을 한다는 핑계로 집을 박차고 나왔다. 그 후로 많은 시간이 지났다. 엄마와 떨어져 따로 산 시간이 점점 늘어난다. 자연스럽게 한 발자국 멀어져 서로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 같다. 그만큼 모녀사이는 아득해지는 것 같기도하다.몇 년 전 아이가 고열에 시달리다 결국 폐렴에 걸려 입원을 한 적이 있었다. 하나 밖에 없는 손녀의 입원 소식에 지방에서 한달음에 올라온 엄마.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자 마자 또 잔소리를 쏟아냈다."1인실이 얼마나 비싼데 1인실로 입원을 했니? 돈 새는 소리가 서울 밖까지 들린다 야. 너 어렸을 때 부터 허투로 돈 쓰던 버릇 여즉 못고쳤니?" 예전이었으면 덩달아 언성을 높였을 터였지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답했다. "엄마 실비에서도 받으면 되고 입원비 일당도 있어서 괜찮아 걱정하지마" 엄마는 뭔가 더 할말이 있어보이지만 이내 "음... 그러냐" 하고는 더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 서로가 조심스러워 진 탓일 것 이다. 그 누구보다 가깝고 그렇기에 서로에게 상처 줬던 사이에 조금씩 평화가 찾아왔음을 느낀다. 문득 한 때 유행했던 드라마에 나온 대사가 떠오른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서 잘 몰랐다" 엄마도 분명 잘 몰랐으리라 모성이라는 본능으로 나를 사랑했지만 어떻게 나를 사랑해아하는지, 어떤 식으로 나와의 교류를 이끌어 나가야 하는지를 말이다.나는 이제 엄마에 대한 원망 섞인 마음을 중화시켜보려 한다. 동시에 반어적으로 이런 생각도 한다. ' 나는 엄마 처럼은 딸을 키우지 않겠노라' 라고. 다만 이 글의 말미에서 엄마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이 험한 세상에 환경에 굴하지 않고 굳건히 날 키워줘서 고마워. 날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줘서, 그래서 내 딸과 나를 만나게 해줘서 고마워. 다음생이 있다면 환생이라는 것이 실제 한다면 다음 생엔 엄마가 내 딸로 태어나주길. 엄마가 받지 못한 지난 사랑, 꾹꾹 눌러 담아 내어줄테니
#부모성장
0
0
세 아이를 키우며 성장하고 있는 엄마
해피루피
4달전
결혼 후 3개월 만에 아기천사가 찾아왔습니다. 20대 후반, 전 엄마가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막연한 생각으로 제가 좋은 엄마가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친절하고 자상하며 사랑만 듬뿍 주는 엄마가 될 줄 알았습니다. 육아를 직접 경험해 보기 전까지는요. 아이를 낳은 그날,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눈물을 흘렸습니다. 퇴원 후 집에 와서 마주한 육아는 말 그대로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아이는 정말 예뻤지만 자고 싶을 때 못 자고 먹고 싶을 때 못 먹으며 화장실 가고 싶을 때 바로 가지 못할 때가 많은 그야말로 내 기본권과 아이를 맞바꾼 느낌이었습니다. 초보엄마는 고군분투하며 아이를 키웠습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물론 몸이 피곤하고 정신적으로도 힘들 때가 많지만 아이로 인해 느끼는 행복감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감정이라는 데에 많은 부모님이 공감할 거라고 생각합니다.2살 터울로 둘째가 태어났습니다. 첫째에 이어 둘째도 아들이었습니다. 첫째는 동생에 대한 질투를 친동생보다 7개월 먼저 태어난 사촌동생에게 다 한 덕에(?) 자기 동생에겐 질투보다는 예뻐하며 잘 챙겨주더군요. 그러다 6살 유치원 다닐 때 안 하던 질투를 하며 막무가내 고집이 절정에 달했습니다. 유모차로 동생을 태우고 첫째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는데 본인이 유모차에 타겠다며 고집부리는 일이 많아서 길에서 어찌나 씨름을 했는지 그 시절 아이에게 화내며 지혜롭지 못하게 행동했던 일들이 큰아이가 12살인 지금까지도 미안하게 느껴집니다. 얼마 전 아이에게 그때의 일을 얘기하며 사과했는데 아이는 기억도 안 난다며 쿨하게 얘기하더라고요. 그리고 며칠 후 자기 전 양치하던 큰 아들이 "엄마,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아?" 하며 물었습니다. '제일 좋아하는 게'라고 하기에 물건인 것 같긴 했지만 농담으로 "엄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들이 "정답!"이라고 하는 거예요. 하루의 피로가 씻은 듯 날아가는 기분이었습니다. 말 한마디의 힘을 다시 한번 느꼈죠. 사랑을 표현해 주는 아들에게 고마웠습니다.2021년, 계획엔 없었지만 태명처럼 그저 '선물'같은 셋째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주위분들은 "셋째가 딸이었어야 하는데" 하시며 엄마한테는 딸이 있어야 한다면서 저를 안쓰러워하시지만 저에겐 셋째 아들이 하늘에서 보내주신 천사 같고 사랑스럽기만 합니다. 내 생각과 다짐과는 다르게 아이를 키우며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기에 셋째에게는 실수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아이를 키우며 제가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부모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걸 느낍니다. 내가 낳은 아이라고 하더라도 성격, 기질, 성향이 나와 같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그걸 저는 너무 늦게 깨달았던 것 같아요. 아이가 나와 같지 않을 때 답답함을 느꼈고 행동을 고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예전엔 어려웠지만 아이가 떼를 쓸 때 그것이 들어줄 수 없는 부분이라면 이제는 최소한의 말만 하며 아이가 침착해지기를 기다릴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불필요한 부정적인 감정과 화를 전달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지금의 내 모습대로 첫째와 둘째를 키웠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지만 내 과거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사과하고 앞으로 더 성장하는 부모가 되리라 다짐합니다. 저는 육아에 있어 '기다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마다 발달속도도 다 다르고 성향도 기질도 다 다르기에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아이가 투정을 부릴 때에도 물론 당장 빨리 이 상황을 종료시키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내 마음을 잘 다스리며 아이를 기다려주는 태도가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육아일기를 쓰고 있는데(중간에 안 쓴 기간이 있기도 해요.) 나중에 다시 읽어보니 "육아는 역시 기다림이었다."라는 말을 여러 번 썼더라고요. 아이가 기저귀를 뗄 떼도 아이가 손가락을 빨았던 문제도 아이의 식습관 문제도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기보다는 기다리며 사소한 노력을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해결이 되는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저 또한 그랬고 많은 분들이 알면서도 실수하는 부분이겠지만 잔소리는 상황을 변화시키지 못해요. 갈등만 증폭시킬 뿐이죠. 모든 인간관계에서처럼 아이와의 관계에서도 잔소리가 아닌 대화는 참 중요하더라고요.최근에 "마음챙김"이라는 심리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감정이 생겼을 때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거예요. 내 감정에 대한 이유를 알고 내 마음을 온전히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고 해요. 육아를 하는 엄마에게는 이 "마음챙김"의 태도가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 아들을 키우며 참 특별한 경험을 많이 합니다. 엘리베이터에서, 횡단보도에서, 지하철에서 처음 만난 어르신들이 제가 아들 셋과 함께 있는 것을 보시고는 고생이 많다며 힘내라고 말씀해 주시고 토닥여주시기도 합니다. 처음 만난 분들의 그러한 한마디가 제게 힘이 됩니다. 그저 내가 낳은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것뿐인데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더 잘 키워야겠다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뿌듯한 일, 육아를 하고 있는 다른 부모님께도 힘내시라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부모성장
0
0
전업맘으로 즐겁게 살다가 워킹맘으로 전환한 사연
가라맘
4달전
육아하는 엄마 첫째를 임신하면서 10개월까지 열심히 일을 다니다,, 신랑의 발령으로 전업맘으로 아이와 육아를 시작하게 되었다. 맘카페에 가입해서 온갖 정보를 섭렵하며, 커피,탄산은 물론 라면도 먹지 않고 혼자 열 태교~ 자연분만이 좋다고 해서,출산일까지 22층 건물을 오르락 내리락 매일 할 정도로 열심히 했지만,, 이녀석은 자세를 바꾸지 않았고, 결국 제왕절개로 탄생~ 임신중 태교로 읽었던 책 베이비 위스퍼는 내게 시간의 자유를 줬다. 10년이나 지난 지금 기억에 남는건, 4시간 텀으로 먹이고 재우는 습관을 들였는데,, 아이가 깨고 일어나는 시간을 관리할수 있다보니,,자는 동안은 집안일을 하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스파게티도 해먹고 여유로웠던거 같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맘카페와 같은 네이버카페가 내 육아동지 였던 듯하다.. 타지로 발령을 받아서 아이와 나만 있다보니,,집에서 맘카페 글을 읽고 비슷한 사연을 찾아 읽으며 공감 했던 게 큰 위로가 되었고, 그 시간들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다.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엄마표 교육에 꽂혀서 나름 열심히 아이의 반응을 살피며 내아이 천재인냥 즐거워하며 함께 외국어 공부를 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3살터울의 동생이 생겼고, 신랑 회사는 둘째 출산일과 함께 서울로 발령이 나서 이사를 하게 되었다. 큰 아이는 동생 출산일을 대비해서 어린이집을 가게 되었다. 조리원에서 나온뒤로 한 겨울에 태어난 둘째를 데리고 픽드랍이 어려워 지방에 계신 엄마께 부탁드렸다. 2주정도 계셨지만,, 신랑과 엄마 사이에서 맘이 편하지 않아서 혼자서 해보기로 했다. 이렇게 시작 된 한겨울의 유모차에 한겨울용 커버를 씌우고 꽁꽁 싸메서 유모차 등하원~ 아이를 친구삼아 지나가는 사람들 설명,오늘 먹을 저녁거리 이야기, 곧 데리러 갈 오빠는 뭘 하고 있을까? 가까운 시장에 장을 보며 셋이서 조잘조잘 ~혼자 말하기의 달인이 된 듯~ 아이를 통해서 어린시절로 돌아간 듯 했다. 둘째도 어느 덧 커서 큰 아이 스케쥴에 맞춰 같은 유치원을 보내 다보니, 본의 아니게 1년 일찍 입학을 하게되었다. 아이들과 공원을 자주 다녔는데, 동네 공원에 마술쇼가 나왔는데, 해 볼 사람? 하니 씩씩하게 손을 들고 나가서 신나하는 아이를 보면서 도치맘 또 연기학원을 등록!! 운이 좋게 조연으로 영화도 찍어보고, 9살에는 국립중앙극장에서 뮤지컬 배우로도 서게 되었다. 경험이 제일 중요하다며, 연기 오디션은 수십 번 보고 떨어지고,,뮤지컬 오디션 연습을 위해서 장난감 피아노를 꺼내서 둘이서 1,000번 정도 연습하고 나니 외워졌던 기억이 있다. 뮤지컬은 2학년 새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연습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빠지는 횟수가 많아서,, 최대한 조퇴처리를 하기위해서,등교 시킨후, 중간에 나오라고해서, 그동안 만들어두었던 도시락을 차에서 먹이며 대학로 연습실에 태워다 주고, 그 사이에 둘째 유치원 하원을 시킨 후, 다시 대학로 연습실로 둘째 데려가서 놀아주며 기다리기,, 가장 겁났던건,,, 둘째 하원시간에 맞춰 못 갔을 때 셔틀버스가 다시 유치원으로 돌아갔다는 전화와,,, 상기된 둘째의 얼굴이다… 영화 촬영을 갔을때는 장거리 운전을 불안해서 신랑이 연차를 하루 쓰고 온 가족이 지방으로 촬영을 갔는데, 영화 촬영 끝나는 시간이 딜레이되서, 신랑은 그날 아침에 간신히 지각을 면하고 출근을 했다. 이렇게 글로 쓰고 나니 다 추억이 된 우리 가족의 육아! 둘째도 오빠를 따라 연기를 잠깐 다녔는데,대원 키즈성우 1기에 선발되서 더빙과 목소리 녹음을 잠깐 했었다. 둘째에 딸이라서 훨씬 손이 안가는 것 같았다. 외벌이에 빠듯 하다 보니, 매일의 습관이 중요하다며 연산,영어,중국어 등 참 다양하게 엄마표로 집에서 시켰다.대부분의 미술,수영 같은 예체능은 지역 문화센터를 이용하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어서,라이딩을 하면서 수업을 진행 해줬다. 5학년 큰 아이 사춘기?가 오면서 아니 코로나의 장기화로 신랑의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집은 더 이상 엄마의 놀이터가 아니였다. 그리고 친구 좋아하는 야무진 둘째까지 엄마 기준에 손이 덜 간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친구의 권유로 2023년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전업맘으로 지내다가 사회에 나와보니, 처음엔 아이들 생각에 스케쥴이 뒤죽박죽,,, 엉망 이였는데,,, 3달 정도 지나니,,, 아이들 두고 나온 생각도,,죄책감도 사라지고 일이 재미있어서 열심히 노력중이다. 전업맘에서 워킹맘으로 멋지게 성공하고 싶다. 전업맘의 시간적 여유가 워킹맘을 할때는 그립기도 하지만,, 둘째는 4학년 첫째는 6학년이기에 아이들도 이제 엄마가 많이 필요하지는 않을 나이라 위안하며, 감사하게 일하고 있다. 둘째는 어느새 커서 아이돌이 꿈이라 열심히 댄스연습중이고, 아들은 꿈을 찾는중 늦은 나이에 일 시작해서 바쁜 아이들 스케쥴 관리하느라, 인터넷으로 장보느랴, 늦은 시간까지 빨래 널고 돌리느라 피곤하지만,,,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 오늘도 노력 중이다. 물론 건강을 위해서 매일 아침 8시에 운동도 매일 간다. 둘째는 엄마보다 더 일찍 알람 맞춰서 등교하지만, 큰놈은 아직도 깨워줘야 하는 손 많이 가는 아들~ 각자의 사회생활은 알아서!! 우리집은 각자도생이다 얘들아!!ㅋㅋ
#취향육아
3
0
나를 뛰게하는 존재의 힘
행복자
4달전
첫 눈에 반한 것도 아닌데 선 본지 한 달 만에 결혼하고 27년 살아온 고향을 떠나 타지로 와서 산 지 어언 22년. 뒤돌아 보면 눈 깜짝할 사인데 어느덧 내 옆엔 2남 2녀의 듬직한 자녀들과 한결같이 울타리가 되어준 착한 남편이 내 편이 되어있다. 허니문베이비로 찾아온 첫째 딸은 육아가 처음인 나를 웃고 울게 만들었다. 밤새 열이 나면 나도 밤을 세우고 아이의 자그만 반응에도 크게 반응하며 정말이지 금이야 옥이야 키웠다. 지금은 예쁜 숙녀가 되어서 옷도 나눠입는 친구가 되었지만^^첫째가 동생을 기다릴 무렵 4년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 난임 센터도 가보고 산부인과에서 날을 받으면서 기다리고 기다리다 5년이란 공백을 뚫고 보물처럼 찾아왔다. 아 이제 됐다...둘이면 됐다...여동생이니 친구처럼 지내겠지? 그런데 예기치 않게 들어선 연년생 남동생...어렵게 낳은 둘째라 셋째까진 생각도 않았는데 불쑥 찾아오니 당황스러웠지만 딸딸이 아빠라는 소리가 싫었는지 남편은 입이 귀에 걸려있었다. 년연생은 거의 쌍둥이처럼 손이 많이 가고 힘들었다. 병원을 가도 마트를 가도 업고 끌고 주변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끌 수밖에 없었다. 내 꽃다운 젊음이 사그러져 가는지도 모르고 자라나는 새싹에 물을 주며 꽃이 피는 기쁨과 행복으로 30대를 다 보낸 거 같다. 아이가 셋이지만 다들 성품이 온순해서 몸은 힘들었지만 큰 마음고생 없이 육아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생은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마흔의 나이에 늦둥이가 들어선 것이다. 첫 번째로 남편의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다. 이제 간신히 내 시간을 갖는 여유를 되찾았건만 다시 육아를 시작하려니 자신이 없었다. 아기띠 및 육아용품도 주변에 다 나눠줬는데 도로 찾아와야 할 판이었다. 시어머님이 병원에 가서 현금주면 기록 없이 뗄 수 있다며 조용히 권하셨다. 아이 셋만 해도 생활비에 학원비까지 남편외벌이로 만만치 않은 터였기에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친정 부모님 두 분 다 폐암으로 투병하시다가 소천하신지 불과 오래 되지 않아 찾아온 임신소식은 내게 기쁨이기보단 근심이고 수없는 갈등이 되어 뱃속에 아이에게 참 미안한 마음이 많았다. 병원에서도 아이 심장소리를 들려주지 않았다. 들으면 마음이 약해질까봐...이 아이가 태어나면 얼마나 많은 희생이 따를지 계산하면 엄두를 낼 수 없었지만 지우고 나서 내 마음이 편안할 자신도 없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남편이 결정을 내려줬다. 찾아온 생명을 우리가 선택할 권리가 없으니 받아들이자고...그렇게 나는 불혹의 나이에 다시 육아를 시작했다. 요즘은 결혼연령이 늦어져 마흔 넘는 출산율이 높지만 그 때만 해도 노산이라 각종 기형아검사로 추가비용이 많이 발생했었다. 첫째 아이 때부터 몸조리를 다 해 주신 친정엄마 생각에 눈물도 많이 흘리고 태교보다는 푸념하고 울었던 기억이 많다. 주변에서 축하한다고 육아용품을 챙겨주고 응원과 격려를 듬뿍 받기도 했다. 비록 내 작은 자유와 모처럼 되찾은 여유를 다 반납해야만 했지만. 뒤늦게 동생이 생긴 사실을 안 아이들은 모두 기뻐서 어찌 할 줄을 몰랐다. 첫째 딸과는 띠동갑이라 태어나면 자기가 업어 키울테니 엄마는 편안하게 몸조리 하시라며 위로를 건네고 서로서로 젖병 물리겠다고 다투다보니 자연스럽게 넷째 육아는 분업화가 되었다. 나이가 많아 제왕절개를 원했지만 의사선생님의 극구 반대로 결국 넷 다 자연분만으로 저렴하게 출산할 수 있었다. 넷째 왕자는 전무후무한 상남자로 우리집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누나와 형의 엄청난 사랑과 관심 속에서 다소 버릇없이 자라 혼내기도 많이 했는데 금 새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 축구에 흠뻑 빠져 지낸다. 2017년에는 대전광역시 저출산 극복을 위한 출산장려시책에 기여한 공로로 시장님으로부터 표창장을 수여받았다. 엄마가 건강해야 아이도 건강하다는 생각에 뜻을 같이 한 엄마들이 모여 공동육아커뮤니티를 만들어 부모소통교육을 위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만들어 비영리민간단체 활동을 하면서 육아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주위에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다문화엄마들과 모임을 형성해 알림장이나 아이들 숙제도 함께 봐주며 엄마가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시끌버끌 북적북적 늘 시끄럽고 바람 잘 날 없지만 나는 감히 말 할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아이 한명을 낳고 교육시키는데 몇 억이 든다고 아예 출산을 포기하고 금쪽이 같은 아이가 태어나서 감당 못할바엔 강아지나 기르면서 편하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참 많다. 그들이 추구하는 행복은 당장의 편안함이고 당장의 여유있는 삶일지 모르지만 부모의 희생과 사랑과 눈물이 거름이 되면 그 따뜻한 심장을 가진 젊은이들이 결국 이 사회를 건강하고 밝게 만들어갈 것이라고 믿기에 이 세상의 모든 부모는 위대하고 존경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제3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내 사랑을 듬뿍 머금은 자녀들을 볼 때면 마음 한 켠이 뿌듯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함에 있어 큰 힘이 된다. 대학생, 중학생, 초등학생 아직 갈 길이 멀기에 뛰어야 할 일들이 많지만 뛰어야 하는 이유도 다시 뛸 수 있는 힘도 결국 사랑하는 가족이다!
#부모성장
3
0
건강하게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으로(To.삼봉에게)
미피
5달전
엄마는 어릴때부터 할머니 손을잡고 산부인과(미용미용)병원에 다녔어,  호르몬 불균형이라 매달 여자들이 걸리는 마법에 안걸렸거든, 그러고는 어른이 되자마자 다낭성증후군이라는 병명을 알았고 한창 꽃다울 나이에,사실 그땐 엄마가 아직 아빠도 안만났을 땐데도 아기를 갖기 힘들다는 청천벽력같은 얘기를 들었지, 처음엔 내얘기가 아닌것같고 너무 먼 미래에 얘기를 들은것마냥 실감이나지않아서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었지근데 점점 병원을 다니는 횟수가늘고 먹어야하는 약이 늘면서 점차 엄마는 아기씨를 품을수없구나 인정하기로했지 아마 세상에 억지로되는 것은 별로 없다는걸 알게될 나이쯤되었을거야내것이 아닌것에 욕심을 부리면 탈이날것만같은거야, 작년에 삼봉이도 먹고싶은거 다 먹고 배탈이나서 (미용미용)병원에 간적있지? 그래서 엄마도 아기씨 품기에 욕심을 안갖기로 마음먹고 아빠를 만났을때 엄마 몸에 대해 사실대로 얘기했어, 아빠는 종갓집 종손이라 꼭 대를 이어야하는 사람이었는데엄마를 어찌나 좋아하던지 흔쾌히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허락을받고 엄마랑 마치 왕자와공주처럼 결혼을 했지, 둘은 행복하게 살다가 그로부터 5년쯤 지났을까 언제부턴가 엄마 몸이 피곤하고 체력이 안좋아질때쯤 갑상선기능저하증이라는 병에 걸린걸 알게된거야 아주 나쁜 병은 아니지만 평생 약을 먹어야 되는걸 알았을때 엄마는 아기씨 품기에 욕심안부린걸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내 몸하나 추스리기도 버거웠거든 원래 모르던 병도 알게되면 더 아프게느껴지는데 엄마가 그랬단다, 그로부터 또 시간은 흘러흘러 3년이란 시간이 지났고 엄마친구들도 결혼하고 애기를 낳았는데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거야, 갖을수 없던만큼 이모들 아기보러 자주 놀러가서 예뻐해주고 잘 놀아줬더니 아빠는 엄마가 생각보다 아기를 안좋아하는게아니구나 알게되었대, 그러던 어느날 아빠는 삼촌들과 산의 정기가 좋다고 소문난 홍천 팔봉산가서 좋은공기를 마시며 삼봉까지 올라갔는데 그날 엄마에게 기적이 일어난거야 ! 아무래도 진심으로 이모들을 축하해주고 조카들을 이뻐하는 마음에 기적이생겼다고 생각했지, 삼봉이가 엄마한테 와줬거든 10달 동안 엄마뱃속에서 뒹굴뒹굴하고 있었다고 했던거 기억하지? 지금도 삼봉이는 침대나 쇼파나 미끄럼틀에서 잘 내려오지만 그때는 안내려와도 되는데 자꾸 골반까지 내려와서 몸이 무거워진 엄마를 편하게 누워있게 해주었지,그리고 엄마도 몰랐는데 나중에 삼봉이낳고 알았지, 엄마는 아빠 생각대로 아기를 좋아하지않았던건 맞았다고 말이야대신 좋아하는 감정보다 벅찬 감정이 커서 하루하루가 선물같았대삼봉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황달수치가 안좋아서 매번 발뒤꿈치에서 피검사를 하면서도 잘버텨준 덕에 엄마랑 아빠는 너를 더 잘키울수있는 용기를 낼수있었어잘커줘서 엄마가 다시 회사에 복직할때 쯤  엄마랑 떨어지기 싫었던지 장염으로 크게 아파서 입원을 하더니 엄마가 이직을 하니까 폐렴으로 입원을하더니 한달이 채지나지도 않고 아데노바이러스에 걸려서 아파하는 널 보며 건강한 유전자를 물려주지 못해서 엄마가 너무 미안했단다, 평소에 같이 못놀아준게 마음에 걸려서 삼봉이 어린이집 방학때라 스케줄을 꽉 짜놨을때였는데 환불이안되서 티켓을 쌩으로 날리니 엄마 마음도 쓰라렸지만 24시간 너를 간호하면서 온전히 너랑 둘이있는 시간 또한 귀하게느껴졌지그렇게 퇴원을 하고 첫 참여수업을 앞두고 기대하고있었는데 한달새 또 입원할줄이야엄마는 하늘이 무너지는줄았았어그렇게 몸에 좋은 영양제를 먹였건만그렇게 마스크를 방패삼아 바이러스에 보호 시켰건만병실에서 삼봉이에게 책을 읽어주다 친구들 참여수업 사진온 걸 보며 울음이터졌던건 서러워서 였을까  같이 함께 못한 안타까움때문이였을까그와중에 빨리 책 마저 읽으라던 너의 성화때문이였을까엄마가 우는데도 자기할말하는 널보며 유전자가 내것이 더 많이 갔구나 아빠유전자가 더 좋은데 잠시 생각했단다그럼에도 엄마는 삼봉이를 사랑한단다제발 아프지말고 앞으로도 무럭무럭 잘 자라서 팔봉이가 되거라산넘고 바다건너 또 산을 넘다보면 우리도 건강해질거야따지고보면 집안 내력인데 할머니의 엄마가 약해서 할머니가 약하게 태어나고 할머니가 약해서 엄마가 약하게 태어났고엄마가 약해서 너를 단단하게 낳지못했지만너라도 건강해져야하지않겠니 그래도 아빠는 건강하니 엄마보다는 건강할거야집안 내력은 접어두고 우리 같이 많은 산을 넘어서 강해지자구나병원에서 링겔선꽂고도 종횡무진 달리는 너를보며 얼마나 기특하던지 몰라 엄마는 늘 달리기를 꼴찌했는데 너는 달리기 꼴등은 아니겠구나 병실만 아니라면 드넓은 초원에서 얼룩말이 달리듯집앞마당에서 병아리가 종종걸음으로 걷든산 위에서 멀리 훨훨 나는 독수리처럼연못에서 살짝살짝 뛰는 개구리처럼 울타리 위에서 꼿꼿히 버티고 서있는 꼬꼬닭처럼 너가 다니는 그 어느곳에서 즐겁게 놀아도 엄마는 언제든다 안아주고 널 지켜줄께제발 입원만 하지말아다오 삼봉아너도 아프고 싶어서 아프겠냐만 원래 어릴때 많이아프면커서 덜 아프다는 속설이 있대엄마는 원래 미신을 안믿지만 너가 아플때마다 그말만은 믿고싶더구나  너의 앞날에 엄마가 따뜻한 햇빛이 되줄께 사랑한다 내아가야♡
#아이병원
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