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
빨래, 빨래하기 좋은 날

언젠가 사극 드라마를 보는데 궁에서 빨래만 담당하는 나인들이 나왔다.
돌 곁에 걸쳐 앉아 거추장스러운 치마를 적당히 동여매고 연신 방망이를 두드리고 있는 게 아닌가.

왜 하필 그런 장면은 항상 칼바람이 매섭게 불어오는 계절인 걸까?
대사를 할 때마다 연거푸 나오는 입김에 보는 사람의 손까지 시리다.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도 빨래하는 나인이 되었을까? 후덕한 외모로 보자면 옛날에 태어났으면 오히려 지금 미의 기준보다 유리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세탁기라는 신문물이 발명된 시대에 태어난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역시 그 시절에도 하나같이 여자들만 빨래하고 있는 걸 보니 옆에서 핸드폰만 보는 남편이 괜스레 얄미워 보인다.

빨래를 온전히 세탁기의 공으로 돌리는 건 억울한 일이다.
그러려면 세탁기가 알아서 빨래를 가져와 세제도 알맞게 넣어야 할 것이다. 세탁이 끝나면 한껏 무거워진 세탁물을 꺼내서 빨랫줄에 널어 준다면 빨래는 세탁기가 한다고 인정해 줄 수 있겠다. 하지만 아직은 빨래에 대한 주부의 공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자랑은 아니지만 결혼하기 전에는 세탁기 전원 버튼을 눌러 본 적도 없을뿐더러 나의 데드라인은 세탁바구니까지였다. 완료된 빨래를 엄마가 거실에 투척해 놓으면 옷걸이에 걸어놓는 정도의 효녀 코스프레를 하곤 했다. 사실 나도 그 시절에는 빨래는 세탁기가 하니까 사람의 노동이 크게 필요하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아니 아예 그런 생각조차 없었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매일 입는 양말과 속옷들은 하루 이틀 지나면 다시 서랍에 있었으니, 빨래가 완료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마 세탁기와 나는 가까워질 수 없는 철저한 사회적 거리가 있었던 것 같다.

남편은 여전히 사회적 거리를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 우리의 차이점이다.
결혼하고 처음 갖게 된 세탁기를 마주했을 때 기계치였던 나는 어떻게 다뤄야 할지 도통 감이 없었다. 오히려 기계를 잘 다루는 남편이 세탁기를 작동시키는 데 능숙했던 일이 아이러니하다. 

인생 1회 차 처음 결혼하고 처음 주부가 되어보니 겉으로만 봤던 결혼생활과는 아주 달랐고 부족한 것이 많았다.

이제 그 시절을 건너와 보니 누구나 겪는 시행착오라는 걸 알게 되었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물높이와 헹굼 추가를 조절하며 주부 9단 포스를 풍기며 세탁기를 사용하고 있다.

매일 빨래를 하고 있지만 희한하게 무릎에만 구멍을 만들어 내는 어린이의 신기술 덕분에 넘치는 상의와 몇 개 안 남은 하의의 밸런스를 유지하느냐, 마느냐로 세탁기와 나의 하루는 바쁘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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