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화가 많으신가요?
우리 집 아저씨는 화가 많아요. 집에서만 많다고는 해요. 뭔가 일이 꼬여서 답답할 때도, 내가 힘들어 보여서 안쓰러울 때도, 애들이 넘어져서 아플 때도….. 무조건 화를 내요.
그 모습이 정말 이해가 안 가고 힘들었지요. 저는 화가 많은 사람이 아니거든요.
이것은 인격의 문제라기보다 부정적인 감정 중 어느 것이 대표적인가의 문제인 것 같아요. 화가 적은 저는 대신 자주 슬프답니다. 남편은 저를 우울한 성향의 사람으로 바라보지요.
저의 우울은 아이를 낳고 키우며 많이 중화되고 감춰졌지만, 남편의 화는 아이를 낳고 키우며 점점 더 증폭되고 있다는 차이가 있네요. 그래서 우리 집은 아이들도 아빠가 화를 내서 힘들다는 호소를 한 번씩 토해내고는 합니다.
‘화’, ‘분노’에 대한 부분이 그리하여 저와는 무관하지만, 저의 육아에는 아주 커다란 문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관련 그림책들도 주의 깊게 봐 왔는데 이 ‘으르렁 아빠’라는 무서운 표지의 그림책이 읽으면서 이러한 우리 집 아저씨가 이해가 가는 포인트가 있었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화가 비단 아빠들만의 문제일까요?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엄마들이 대부분일 거 같은데 좀 어떠세요? 화를 많이 내시나요?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나도 모르던 나의 ‘화 주머니’를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정말 화를 못 내던 사람이었거든요. 오죽하면 앞에서 말한 화가 많은 제 남편이 결혼 10년쯤 되니 이런 농담을 합니다.
남편: 부부는 서로 부족한 걸 채워주며 사는 거지.
저: (나는 실제로 많이 채워 드렸고요…) 오빠는 내가 부족한 뭘 채워 줬는데?
남편: 화
…… 그렇습니다. 저는 남편과 살며 그나마 화가 많아졌나 봐요. 그러다 보니 옆에서 보기에는 아이들에게 화 안 내고 잘 참는 편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결혼 전에는 안 내던 수준으로 내기는 해요.
💌 이 세상 모든 으르렁 아빠, 으르렁 엄마들에게
이 그림책에는 모두가 무서워하는 으르렁 늑대가 나와요. 항상 으르렁대는 검은 늑대, 으르렁 늑대는 다정한 아내, 사랑스러운 아이들에게도 겁을 주곤 했죠. 심지어 가족들이 불안해하는 모습을 즐기는 것 같았다니까요?! 으르렁 늑대는 집에서도 검은색 장화와 장갑을 절대 벗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이 작당하고 아빠가 잠들었을 때 장화와 장갑을 벗겼는데, 시커먼 그것들 안에는 초록색, 분홍색 발과 노란색, 파란색 앞발이 나왔어요. 아이들은 알록달록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아빠의 장화와 장갑은 구덩이를 파 던져 버렸지요. 으르렁 늑대는 잠에서 깨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알록달록한 네 발을 보고 깜짝 놀라요. 발들을 검은 페인트에 담그자, 꼬리가 알록달록하게 변하고, 꼬리를 까맣게 그을리자 두 귀가 빨간색으로 변했어요. 검은색 귀 가리개를 붙이자, 발들이 다시 알록달록한 색으로 변했고요. 으르렁 늑대는 이제 더 이상 괴물들이 자신을 무서워하지 않을 것 같아 겁이 났어요. 항상 남에게 겁을 주다 처음으로 자신이 무서움을 느낀 거죠. 집에 돌아와 태어나서 처음으로 울고 있는데, 울면서 숲에서 가장 알록달록한 늑대와 결혼한 것을 제발 후회하지 말아 달라고 했는데 다정한 아내는 이렇게 말해요.
“여보, 이 아름다운 색깔들 때문에 지금 당신이 얼마나 부드러워 보이는데요.”
그렇게 늑대 가족은 처음으로 하나가 된답니다.
이 그림책을 읽은 후로부터 아이들이 아빠가 화를 낼 때마다 말해요. “으르렁 아빠다!!”
그래도, 이게 우리 아빠 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에 위안받는 걸까요?
아이를 키우며 아이의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도 많아졌어요. 물론, 심리학을 배우기도 했고요. 그런데도 가장 이해하기 힘들고 불통인 대상이 저에게는 배우자인 것 같아요. 도대체 이 사람은 왜 이렇게 화가 많을까? 왜 이렇게 감정 교류가 안 될까?
그런데 이 그림책에서는 강해 보여서 무섭지 않으려고 하는 이 아빠 늑대의 마음이 이해는 가거든요.
가장으로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아니면 개인적인 상처로? 불안이 높아서?
💌 남편 또한, 아이를 키우기 전까지는 알지 못하던 것들
연애하던 시절, 언제나 당당하고 자기 의견이 확실한 남편을 보며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서로의 생각이 다른 지점에서 저를 통제하려고 하고 미성숙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며 자존감이 높지 않아 자존심을 세우는구나… 깨달은 지점이 있었죠.
상대방보다 강해서 내가 휘둘리고 싶지 않은 마음,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익숙한 권위적인 남성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거죠.
한 번 무너진 이 아빠의 자존심은 어떻게 감추려 해도 계속 다시 무너집니다. 애초에 단단한 자존감으로 세우지 않은 그 마음은 모래밭에 세운 성 같은 거지요. 그것을 지키기 위해 센 척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침범한다고 느끼면 화를 낼 수밖에 없었던 으르렁 늑대 아빠를 보며 우리 집 으르렁 아빠를 돌아봅니다.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바라보고 사랑하기’ 많은 아이와 엄마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인데요, 당연히 아빠들에게도 너무도 필요한 일이겠지요? 이러한 안전 기지를 검은 늑대에게 선물해 준 것은 바로 친절한 엄마와 네 마리 아이입니다.
그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한 순간, 으르렁 늑대의 가족들은 서로를 껴안고 보듬게 됩니다. 책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나지요.
“으르렁 아빠와 아내는 함께 아이들을 꼭 껴안아 주었어요.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빠 품에서 마침내 늑대 가족은 처음으로 하나가 되었답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빠라니. 앞에 나왔던 늑대의 행동들을 보면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아빠도 결국 우리랑 똑같은 한 존재일 뿐이었어요. 그렇다면 아빠가 알아서 바뀌도록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를 비난하지 않는 안전한 집을 만들어 주고, 천천히 무장하고 있는 갑옷을 벗어낼 수 있도록! 그때 나오는 민낯이 우스꽝스럽고 형편없게 느껴지지 않도록 지지해 주고, 강하고 무서운 것이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도록…
💌 으르렁 아빠의 장갑 안에 숨겨져 있던 것은?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여전히 아이들을 수업하다 보면 “남자는 우는 거 아니죠.” 이런 식의 말을 하는 남자아이들을 봅니다. 아이들의 귀여운 허세가 귀여우면서도 우리 때의 문화가 답습되는 것 같아서 약간의 우려가 곁들여지기도 하는데요.
이 으르렁 아빠가 알록달록한 손발을 숨기게 된 배경에는 어떤 문화가 숨어 있었을까요?
늑대는 강해야 한다? 강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이러한 사회문화적인 배경, 원가족의 분위기를 논하지 않고 개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면 아빠들도 억울할 거예요. 그래서 언젠가는 이 그림책을 아빠들 집단과도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혹시 우리는 ‘엄마는 이래야지’, ‘아빠는 이래야지’와 같은 프레임을 가지고 있지는 않나요?
저도 자라며 가지고 있는 원가족에 대한 상처에 저의 이상적인 아버지상, 어머니상이 투영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저에게 엄마는 나의 마음을 잘 알아주고, 자상하며 힘든 일이 있을 때 기댈 수 있는 존재… 아빠는 잘 놀아주고 나에게 좀 허용적인 존재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 아빠는 아빠 상이 없는 분이었어요. 할아버지가 6·25 때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아빠를 임신하신 채로 피난을 오셔서 평생 아버지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으신 유복자셨거든요.
그래서 아마도 아빠 역할을 한다는 것이 매우 막연하셨을 것 같습니다. 이래서 가족 상담에서는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3대를 봐야 한다고 하는가 봐요.
우리 집 으르렁 아빠의 장갑 안에는 뭐가 있냐고요? 이 늑대는 어릴 때부터 굉장히 마르고 왜소했거든요. 그래서 남자들 사회에서 센 척해서 자신을 지킬 일이 많았나 봐요. 그리고 남동생만 있는, 아들 둘 집에서 가부장적인 아빠에게 엄청나게 반항하며 자랐어요. 그래서 그럴까요?
조금만 아이들이 토를 달거나 뭘 물어봐도 자신을 공격한다고 느끼면 방어라는 착각 아래에서 공격한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죠.
“얘가 말을 안 듣잖아!!!”
💌 그래서 화가 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런데 아이들에게 화가 나는 이유는 정말 아이 때문일까요? 아이가 나를 화나게 한 걸까요?
으르렁 아빠가, 우리 집 아저씨가 ‘불안’이 높아서 그것을 방어하고 감추기 위해 화를 낸다면 저의 화는 저의 컨디션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느낍니다.
저는 명확히 피곤하면 화가 나요. 할 일이 많을 때는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던 질문이나 매달림이나 징징댐에도 벌컥 화가 올라옵니다.
그 배경에는 분명, 이런 상황에서 화를 내셨던 피곤했던 우리 엄마가 있겠죠. 저희 엄마는 정말 열심히 일하신 워킹맘이었죠. 그래서 퇴근하고 집에 오시면 저희를 굉장히 성가셔하셨습니다. 그러시려고 한 건 아니겠지만요. 그래서 그저 엄마에게 그날 있었던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인데 시끄럽다고, 네가 얘기하면 머리가 아프다고… 혼났던 기억들이 있어요.
정말 엄마같이 키우지 않으려고 애를 썼는데, 내가 화를 내는 포인트를 짚어보면 그 화의 원천이 엄마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이렇든 저렇든 분명해지는 건, 화의 원인은 상대가 아닌 내 안에 있다는 거겠죠.
요즘은 화가 날 때 인지행동 치료적으로 내 화의 정도를 적어보고, 왜 화가 났는지, 그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적어보라는 훈련도 많이 소개되지요.
같은 상황이라도 생각보다 사람들이 화를 느끼는 포인트도, 표출하는 방법도 모두 다릅니다.
최근에 엄마들 모임에서 ‘소피가 화가 나면, 정말 정말 화가 나면’이라는 그림책을 같이 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소피가 화를 해소하기 위해 밖으로 달려 나가 달리다 울다 나무에 올라갔다 하며 감정을 해소하는 부분이었는데요. 즉각적으로 대화하고 소통해서 감정을 해결하는 사람들은 이 그림책이 매우 불편하다고 말했습니다. 소피가 감정을 혼자 해결하고 집에 왔을 때 누구 하나 그 감정에 관해서 물어보거나 이야기하는 가족이 없거든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 불편한 거죠. 분명 마음이 상한 사람이 있었는데 말이에요.
그런데 반면 동굴형, 즉, 화가 나면 거리를 두고 혼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사람은 소피의 방법을 너무 긍정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누구나 감정을 해소할 저런 안전기지나 공간, 시간이 필요하지 않냐면서요.
이런 단편적인 입장들만 살펴봐도 우리가 우리와 다른 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오해하며 살아온 시간이 떠오르지 않나요?
으르렁 아빠도 마지막에 자기가 멋진 검은색이 아니어서 아내가 결혼을 후회하지는 않을까? 눈물로 사과하는 장면이 있지요. 사실 아내는 검은색 옷들 때문에 항상 화난 것 같은 남편 때문에 결혼을 후회했었는데 말이죠. 이유를 알고 보면,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아, 내가 생각한 것처럼 나쁜 의도는 아니었구나.
나와는 이 상황을 다르게 바라보고 있었구나.
그래서 우리 남편이 맨날 화가 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 여지민 앰버서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앰버서더에게 응원 및 소감글 작성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