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
방긋 아기씨: 노력했는데 뭐가 잘못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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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가 행복해야 한다는 말조차 힘겹던 그 시절

아이를 낳고 키우며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지.’라는 말이었던 것 같아요. 시기적으로 너무 힘들 때는 그 말을 듣고 어쩌란 건가, 더 화가 나기도 했지요. 첫째를 키울 때는 아무래도 나도 남편도 엄마, 아빠가 처음인지라 고군분투했던 시간이 있었거든요. 그 와중에 갈등이 심해서 잠시 무료 부부 상담을 간 적이 있었는데 저보고 글쎄, 스트레스가 많은 거 같으니, 운동을 해보라는 거예요. 네? 독박 육아 중이고 남편은 맨날 새벽에 와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있는데 운동이라니요? 했더니 그래도 남편 오고 나서 놀이터에 나가서 줄넘기라도 하라고…

지금도 내 마음속 최악의 상담사로 자리잡은 그 분이 무슨 의도로 그렇게 말한 건지는 너무 잘 알고 있어요. 다만, 물리적으로 엄마들이 멘탈을 챙기기 매우 어려운 시기가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장성한 후에도 잊지 않으려고요. ‘라떼 is horse’가 어느 정도는 이 망각과 왜곡에서 나오는 것 같기도 하거든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멘붕에 빠졌던 날들이 아직도 생생해요. 임신까지는 태교니, 뭐니, 정보가 많더니만, 출산 후의 몸조리나 모유 수유, 그리고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까지는 배운 적이 없는데 척척 해내야 하는 미션처럼 다가오더라고요.

특히, 사랑.

아이를 낳으면 자동으로 사랑이 뿜뿜해서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먹이고, 재우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을 차릴 수가 없더라고요. 몸이 너무 힘드니까 아이가 예쁜 줄도 모른 채 가버린 시간도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늘 “난 다행히 좋은 사람들과 공동육아 하듯 키워서 산후 우울증은 없었어.”라고 말해왔는데 지금 쓰면서 돌이켜보니 우울할까 봐 미친 듯이 사람들 곁으로 갔었나 봐요. 감정에 빠져들 틈이 없도록 바쁘게 사는 방식으로 우울함을 극복했지, 싶어요.

💌 아름다운 왕비님의 외로움

그림책 ‘방긋 아기씨’를 보면 아이가 아주 어릴 때, 어떻게 사랑하는지 모르던 저의 모습이 떠올라요.

그나마 저는 궁전이 아니라 마을에서 아이를 키워서 조금 나았던 것 같은데… 코로나19 시절에 첫 아이를 낳아 키우신 엄마들은 더 이런 마음이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암 투병으로 당시 5세 아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신 고 윤지회 작가님의 이 그림책 서문에는 ‘엄마가 웃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한 딸이 엄마에게 드립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요.

이 그림책을 쓰고 엄마와 화해했다는 작가님이 이렇게 세상을 엄마보다 먼저 떠나게 되어 참 마음이 아팠답니다.

이 그림책은 아름다운 왕비가 사는 궁궐에서 시작이 되어요. 크고 화려한 궁궐이지만 마음 둘 곳 없던 왕비의 얼굴도, 몸도… 차가운 푸른빛이네요. 몇 해가 지나고 예쁜 아기씨가 태어났어요. 왕비님은 아기씨를 너무 사랑해서 무엇이든 다 해 주고 싶었답니다. 그런데! 이 아기씨는 웃지를 않는 거예요. 고민하던 왕비님은 값비싼 아기 옷을 지어도 보고, 가장 맛있는 요리상을 차려 내고, 이름난 광대들을 불러 공연도 열었어요. 하지만 매번 아기씨는 말똥말똥 왕비님만 바라보았답니다. 여전히 웃지 않는 얼굴로요. 

이 아이를 보며 뭔가 울컥하게 되네요. 이 아이의 눈에는 어떤 엄마가 비치고 있었을까요?

결국 이 소문을 들은 한 의시가 어찌어찌 왕비님을 깃털로 간질이게 되고 왕비는 웃고 또 웃어요. 아기씨의 눈에는 환하게 웃는 왕비님이 비쳤어요. 그러자 방긋, 아기씨가 웃었답니다.

이 장면에서 푸르딩딩하던 왕비님이 살구색으로 바뀌어요.

정말 감동적인 장면 아닌가요?

💌 대물림, 혹은 부모님의 유산

저는 정말 희생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어요. 저희는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6인 가족이었지지요. 할아버지께서는 6.25에 돌아가셨고 아버지가 외아들이셔서 결혼과 동시에 할머니와 합가했지요. 그렇게 어머니는 긴 시집살이를 시작하십니다. 게다가 IMF를 맞이하며 엄마가 본격적으로 경제적 가장까지 하게 되었지요. 그렇게 ‘엄마’라는 영역을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엄마는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었어요. 직장에서도 인정받고 승승장구했고, 할머니께서 편찮으실 때 병시중을 어찌나 잘 드셨는지 아직도 효부상이 있다면 엄마가 받아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아빠와도 절대 싸우지 않고 순종과 희생을 미덕으로 삼으셨답니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행복하셨을까요?

저에게 엄마는 굉장히 힘들고 짜증스러운 모습으로 기억됩니다. 자식들보다는 어른들이 우선인 정말 조선시대에는 칭찬받을 만한 그런 며느리이자 아내였지만 우리는 좀 힘들었겠죠?

그래서 우리 엄마가 굉장히 존경스럽고 좋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는 엄마 상이 굉장히 빈약했어요. 엄마는 아이들에게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어쨌든 늘 뭔가 부치는 바쁘고 힘든 모습이셨으니까요.

그래서 제가 받은 대물림이 뭐냐고요?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지 않아요. 저도 엄마처럼 아이들보다 제 일이, 제 학생들이 우선순위더라고요? 

그것이 슬프던 시절도 있었지만, 아이가 조금 더 커서 서로 생각을 나눌 수 있게 되자 이런 엄마의 특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더라고요. 대부분의 특징에는 장단점이 같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저는 아이들만 바라보며 행복한 엄마는 못 되지만,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엄마가 되고자 노력하려고요. 무엇보다 이미 이런저런 상황들을 아이들과 공유하고 대화한다는 것 자체가 대물림을 끊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잘하고 있다, 나 자신.

너희들이 나중에 엄마를 원망할 부분도 있겠지. 그런데 그것은 너의 몫이란다. 세상에 완벽한 엄마는 없거든.

💌 내 아이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엄마가 웃는 모습을 보고 비로소 웃는 아기를 보며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얼까 생각해 봅니다. 엄마의 사랑, 부모의 사랑이 위대하다고 노래도 부르고 하지만… 어린아이들의 엄마, 아빠 사랑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크고 위대한 것이 아닐까 싶을 때가 있거든요.

아이가 필요로 하는 건, 나를 사랑하려고 너무 힘겹게 무리하고 고군분투하는 엄마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며 행복한 엄마가 아닐까요? 나를 사랑하지만, 엄마 자신도 사랑하는, 그런 행복한 엄마가 되어 아이의 진정한 의미의 사랑을 나누면 엄마도 비로소 치유되는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 요즘은 엄마를 위한 자기돌봄 시간에 관심이 많아요. 그렇게 아이만 바라보지 않고 나에게 시선을 돌리면서 내면 아이도 발견할 수 있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새롭게 발견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찾은 나 자신은 굉장히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랍니다.

어쩌면 우리도 전통적인 어머니상에 갇혀 있는 걸지도 몰라요.

뭔가 자기 계발을 하거나 나를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아이에게 미안한 ‘이기적인’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하잖아요.

옛날에는 실제로 엄마가 자신의 삶을 온통 갈아 넣고 희생하지 않으면 아이를 키우기 어려웠을 수도 있어요. 실제로 집안일이 지금보다 더 많았고, 아이도 훨씬 많이들 낳았으니까요.

어쨌건 기술의 발달로 집안일도 조금은 간소화되었고 심지어 여성들도 남성들과 동일한 교육을 받아 일을 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그래서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여럿 키우던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었다면 감사할 일인데 뭔가 엄마 노릇을 제대로 못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요?

밥을 먹이고, 옷을 잘 입히고, 잘 재우고, 심지어 예전에 비하면 정서적인 면도 많이 챙기고 육아를 공부해 가며 열심히 키우고 있잖아요?

사회에서 요구하는 어머니상을 따르기 전에 우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아이에게 나의 모든 시간을 쏟는 것 자체가 행복인 엄마들도 분명히 있거든요. 그것이 아이도 원하는 것이라면 너무 좋죠. 그렇게 아이에게 꽉 차게 채워주는 엄마로 남으시면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너무 괴로운 엄마들도 있어요. 그분들도 똑같이 해야만 좋은 엄마일까요?

💌 돌고 돌아 인정하기: 행복한 엄마가 되어야지.

조금 부족하더라도, 아이에게 모든 것을 해주지는 못하더라도! 아이와 함께인 것이 행복한 엄마가 되어보고자 합니다.

아이는 내가 의도하고 노력해서 연출한 모습뿐만이 아니라 나도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나의 뒷모습까지 고스란히 보며 자랍니다. 

예전에 아는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었어요. 이분은 책을 한 권 내셨는데요, 아이에게 충실해지고 싶어서 아이가 잘 때만 치열하게 책을 써서 완성했대요. 아이를 기르며 전업주부가 되셨던 이 엄마는 이렇게 결과물을 내면 아이가 자신을 자랑스러워할 거로 생각하셨다는데 막상 아이는 이렇게 반응했다고 해요.

“아빠와 엄마는 별로 애쓰지 않아도 대단한 사람인데 나는 너무 별 볼 일이 없는 것 같다.”

예상과는 다르게 아이의 자존감에 좋은 영향을 못 미친 거죠. 그때 깨달으셨다고 해요. 내가 일하는 과정, 노력하는 시간을 보여주었어야 했구나.

실제로 아이들에게 나중에 제가 어떤 엄마였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하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 엄마는 바쁜 엄마였어요. 맨날 일을 하고 있었죠.”

그렇지만 언젠가는 아이들도 알겠죠. 나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모습이었다는 것을.

저도 우리 엄마를 직업적으로는 정말 존경하거든요. 단, 아이의 정서에는 양보다 질로! 관심과 사랑을 기울이기.

이 여정을 잘 걸어간다면 육아에 덧붙여 나와의 사이도 좋아질 거예요.

완벽한 엄마보다는 행복한 엄마로 아이의 눈 속에 남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어른이 되어도 재밌는 일은 많고, 사람은 계속 성장할 수 있으며 즐거운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아이도 자신의 중년을 기대할 수 있게요.

이거, 저의 욕심일까요?

💊 여지민 앰버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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