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과 출산
임신 당뇨,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고로 내 잘못도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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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 임신 당뇨,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고로 내 잘못도 아님


임신 당뇨가 뭐예요? 애매하고 모호한 임신 증상 중 특히 이해 안 됐던 임신 당뇨.  임신도 생소했던 나인데 당뇨라니… 가족력도 없는데 어째서 걸렸을까. 병원에서도 뚜렷한 원인을 얘기해주지 않았다. 그냥 호르몬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 입덧을 심하게 했던 당시 젤리를 많이 먹었는데 임신 선배들이 ‘임당’을 조심하라고 말했을 때 그건 나와는 멀고 먼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그래서 임신 당뇨를 체크하러 병원에 가서 그 주황색 시약을 먹을 때까지만 해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블로그를 찾아보니 임신 당뇨 검사를 위해 여러 가지 준비하는 임산부들도 많았지만, 난 필요성, 심각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임신 당뇨라니… 

140을 넘지 말아야 하는 수치가 147이 나왔다. 무지했던 나는, 뭐 다음에는 정상으로 나올만한 수치 아닌가? 생각했다. 재검을 하고, 결국 임신 당뇨 판정을 받았다. 임신 당뇨의 위험성과 지켜야 할 식단에 대한 교육을 들었다. 교육을 들으면서도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동안 엄청나게 마르지는 않았지만 또 엄청 뚱뚱하지도 않았던 나이기에 식단쯤이야 패스트푸드 좀 덜 먹는 것쯤으로 안일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임.신.당.뇨라는 증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게 아니었다. 여러 가지 합병증 같은 게 나타날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아기가 고혈당에 노출된다는 것. 그리고 태어나자마자는 오롯이 본인의 혈당 수치를 가지기 때문에 저혈당 쇼크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출산 때까지 나는 음식을 조절하게 되었고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처절하게 알게 되었다. 

우선, 매일 뭘 먹는지 적었다. 이게 참 기분이 그랬던 게 뭘 먹었는지 적은 걸 정기 점진 때마다 주치의 선생님께 점검받았다. (주로 혼났다.) 우리 선생님은 친절하게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보다는 팩트 중심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냉정하게 해주시는 분이었다. 더군다나 아이가 너무 빠르게 크고 있다며 이대로 가면 안 된다고 말씀을 들을 때마다 그런 죄책감이 없었다.(나중에는 내가 살이 빠지는데도 아기가 커지니까 원래 애가 큰 아기였나보다고 미안하다고 하셨다.) 언제는 몸무게를 좀 줄여서 전달해 달라고 간호사 선생님께 부탁한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미련했다. 먹은 음식 리스트를 적는 책자를 병원에서 줬는데 출산하자마자 꼴 보기 싫어서 버려버렸다. 

96, 125, 120, 117… 가끔 145. 당뇨는 기본적으로 혈당 수치를 관리해야 한다. 그래서 바늘로 손가락을 찔러 피를 낸 후 기계에 핏방울을 흡수시켜 수치를 체크해야 한다. 나는 아침 먹기 전, 후, 그리고 점심과 저녁을 먹은 후 등 하루에 총 네 번 손가락을 찔러 피를 봤다. 앞선 숫자는 내가 주로 보던 혈당 수치. 가끔 145와 같은 수치가 나와 있으면 나를 째릿하게 쳐다보시던 선생님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다행히 나는 공복 혈당은 정상인 편이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찔러대던 바늘은 왜 점점 크게만 느껴지는지 찌를 때마다 고통이었다. 볼펜 심을 뺄 때 튕기는 것처럼 ‘탁’ 소리를 내며 내 손끝을 찌르는 바늘, 핏방울이 기계로 들어가 수치를 보여주기까지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 수치가 크게 높아지면 밀려오는 죄책감 등이 모두 섞여 고통이 되었다. 

다이어트를 본격적으로 해본 적이 없는 나는, 먹는 걸 제어하고 관리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래도 빡세게 식단 관리를 하는 와중에 기쁨이 있었다. 혈당 수치를 올릴 것만 같은, 왠지 먹으면 죄악일 것 같은 음식들이 혈당을 올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임신 당뇨인 카페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내 혈당 수치를 안전하게 지켜줬던 음식 Best 3: 햄버거, 만두, 구구크러스터. 너무 감사하다. 이 음식들의 존재 자체가. 주로 현미밥, 구운 채소, 구운 고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야 했던 내 식단에 단비와 같은 음식들이었다. 가끔가다 샌드위치… 물론 햄버거와 만두는 좋게 좋게 이야기해보면 3대 영양소, 그러니까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 고루 들어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내 뇌피셜로는 채소, 고기, 밀의 구성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내 혈당을 지켜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꼭 수치를 확인 후 지속해 섭취해야 한다.) 

그런데 임신 당뇨인 카페에서 발견한 구구크러스터는 너무나 의외의 음식이었다. 구구크러스터는 그야말로 단맛의 대명사, 단맛으로 점철된 불량식품 느낌의 아이스크림이 아니던가! 처음 먹었을 때 정말 떨렸던 것 같다. 내 혈당수치가 미친 듯이 오를 것인가, 잠잠하고 고요하게 유지해 줄 것인가… 정말 다행히도 나도 구구크러스터가 잘 맞았다. 그래서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날이면 남편과 한 통씩 클리어했던 경험이… (그래도 이건 절대 하지 말았어야 했던 것 같은데…)

내 혈당 수치를 위험하게 만들었던 음식 Worst 3: 짜장면, 라면, 월남쌈 샤브샤브. 면이야 뭐 당뇨가 아니더라도 몸에 안 좋은 음식들로 인식되어 있기에 임신 당뇨 판정을 받고 처음 먹을 때 긴장을 많이 하긴 했다. 아니나 다를까 짜장면은 딱 한 번 먹고 출산 때까지 차마 먹지 못했다. 굉장히 높은 수치가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당연히 정제된 탄수화물이기 때문에 몸에 흡수가 쉬워서 그랬겠지…. 그치만 스파게티는 그렇게 수치가 높아지지 않는 것에 비해 짜장면은 대재앙과도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스파게티는 이탈리아에서 다이어트 음식으로 꼽힐 만큼 건강식(?)이라고 한다.)

그런데 월남쌈 샤브샤브는 도대체 왜…? 친구 부부를 만나서 식사를 한 날이었다. 샤브샤브는 채소와 고기를 물에 익혀서 먹는 음식이기에 기름기도 쫙 빠지고 혈당에 전혀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복병은 월남쌈의 라이스페이퍼였다. 라이스페이퍼도 면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날 유독 포만감이 컸는데 라이스페이퍼는 혈당 수치에도 그 엄청난 위용을 드러냈다. 어마어마하게 올랐던 수치 때문에 밥 먹고 차 마시는 내내 우울했던 것 같다. 또, 내가 임신 기간 내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또 하나 추가되었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했던 것 같다. 

그때 당시에는 그냥 어찌어찌 넘어갔었는데 나는 임신 후반부로 갈수록 굉장히 다운되어 있었다. 거기에는 임신 당뇨가 매우 큰 역할을 했었다. (또 다른 큰 이유는 나중에 밝히겠다.) 매슬로우 욕구 5단계 중 생리적 욕구가 가장 낮은 단계에 있는 건 괜한 게 아니다. 이 메뉴 결정권이라는 게 내 삶에서 얼마나 큰 가치로 자리 잡고 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쨌든 이 임신 당뇨는 내 체중에 있어 두 가지 물리적 영향을 주었는데 하나는 내가 임신 중에 살이 그렇게 많이 찌지 않도록 도와줬다는 것. 나는 이 빡센 식단 관리를 통해 임신 기간 내 총 8kg 정도밖에 찌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 주치의 선생님이 아기는 계속 크고 있는데 몸무게가 안 늘어나는 걸 보고 그동안 나에게 꾸중하셨던 걸 미안하다고 말씀하시는 눈치였다.  반면에 식탐을 더 만들어 출산 이후에 폭식을 많이 하게 된 것. 뭐 이건 다른 누구의 탓도 아니긴 하지만…. 

임신 당뇨는 출산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었다. 출산 뒤 몇 개월 후, 다시 한번 재검할 때까지 식단 관리를 해야 했다. 임신 당뇨를 겪은 사람은  50%라는 높은 확률로 성인 당뇨로 이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식욕, 식탐을 멈출 수 없었다. 특히 나는 임신 7개월까지 완모(완전 모유 수유)를 했기 때문에 출산 직후부터는 늘 허기에 시달렸던 것 같다. 젖이 안 아프게 잘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기름진 걸 너무 많이 먹지 말라고 했지만, 약 3~4개월 정도를 극한의 식단 조절을 해왔던 터라 더 이상의 조절은 불가능했다. 엄마가 산후조리를 도와주신 2주일의 시간이 지나고는 매일 배달의 민족 파티를 하며 보냈던 것 같다. 아기가 배 속에 있을 때는 조금이라도 몸에 안 좋은 음식을 먹으면 그렇게 잔소리를 하던 남편도 그때는 나를 말리지 않았다. 본인도 나와 있는 시간에는 함께 식단 관리를 할 수밖에 없었으니 함께 고생했던 탓이었다. 마음 한쪽 구석에는 ‘이러면 안 되는데…’ 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육아’라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면서 내 식단까지 집중해서 챙길 여력은 없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내 혈당 수치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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