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챌린지
나를 뛰게하는 존재의 힘
행복자
7달전

첫 눈에 반한 것도 아닌데 선 본지 한 달 만에 결혼하고 27년 살아온 고향을 떠나 타지로 와서 산 지 어언 22년. 뒤돌아 보면 눈 깜짝할 사인데 어느덧 내 옆엔 2남 2녀의 듬직한 자녀들과 한결같이 울타리가 되어준 착한 남편이 내 편이 되어있다. 허니문베이비로 찾아온 첫째 딸은 육아가 처음인 나를 웃고 울게 만들었다. 밤새 열이 나면 나도 밤을 세우고 아이의 자그만 반응에도 크게 반응하며 정말이지 금이야 옥이야 키웠다. 지금은 예쁜 숙녀가 되어서 옷도 나눠입는 친구가 되었지만^^첫째가 동생을 기다릴 무렵 4년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 난임 센터도 가보고 산부인과에서 날을 받으면서 기다리고 기다리다 5년이란 공백을 뚫고 보물처럼 찾아왔다. 아 이제 됐다...둘이면 됐다...여동생이니 친구처럼 지내겠지? 그런데 예기치 않게 들어선 연년생 남동생...어렵게 낳은 둘째라 셋째까진 생각도 않았는데 불쑥 찾아오니 당황스러웠지만 딸딸이 아빠라는 소리가 싫었는지 남편은 입이 귀에 걸려있었다. 년연생은 거의 쌍둥이처럼 손이 많이 가고 힘들었다. 병원을 가도 마트를 가도 업고 끌고 주변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끌 수밖에 없었다. 내 꽃다운 젊음이 사그러져 가는지도 모르고 자라나는 새싹에 물을 주며 꽃이 피는 기쁨과 행복으로 30대를 다 보낸 거 같다. 아이가 셋이지만 다들 성품이 온순해서 몸은 힘들었지만 큰 마음고생 없이 육아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생은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마흔의 나이에 늦둥이가 들어선 것이다. 첫 번째로 남편의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다. 이제 간신히 내 시간을 갖는 여유를 되찾았건만 다시 육아를 시작하려니 자신이 없었다. 아기띠 및 육아용품도 주변에 다 나눠줬는데 도로 찾아와야 할 판이었다. 시어머님이 병원에 가서 현금주면 기록 없이 뗄 수 있다며 조용히 권하셨다. 아이 셋만 해도 생활비에 학원비까지 남편외벌이로 만만치 않은 터였기에 그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친정 부모님 두 분 다 폐암으로 투병하시다가 소천하신지 불과 오래 되지 않아 찾아온 임신소식은 내게 기쁨이기보단 근심이고 수없는 갈등이 되어 뱃속에 아이에게 참 미안한 마음이 많았다. 병원에서도 아이 심장소리를 들려주지 않았다. 들으면 마음이 약해질까봐...이 아이가 태어나면 얼마나 많은 희생이 따를지 계산하면 엄두를 낼 수 없었지만 지우고 나서 내 마음이 편안할 자신도 없었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남편이 결정을 내려줬다. 찾아온 생명을 우리가 선택할 권리가 없으니 받아들이자고...그렇게 나는 불혹의 나이에 다시 육아를 시작했다. 요즘은 결혼연령이 늦어져 마흔 넘는 출산율이 높지만 그 때만 해도 노산이라 각종 기형아검사로 추가비용이 많이 발생했었다. 첫째 아이 때부터 몸조리를 다 해 주신 친정엄마 생각에 눈물도 많이 흘리고 태교보다는 푸념하고 울었던 기억이 많다. 주변에서 축하한다고 육아용품을 챙겨주고 응원과 격려를 듬뿍 받기도 했다. 비록 내 작은 자유와 모처럼 되찾은 여유를 다 반납해야만 했지만. 뒤늦게 동생이 생긴 사실을 안 아이들은 모두 기뻐서 어찌 할 줄을 몰랐다. 첫째 딸과는 띠동갑이라 태어나면 자기가 업어 키울테니 엄마는 편안하게 몸조리 하시라며 위로를 건네고 서로서로 젖병 물리겠다고 다투다보니 자연스럽게 넷째 육아는 분업화가 되었다. 나이가 많아 제왕절개를 원했지만 의사선생님의 극구 반대로 결국 넷 다 자연분만으로 저렴하게 출산할 수 있었다. 넷째 왕자는 전무후무한 상남자로 우리집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누나와 형의 엄청난 사랑과 관심 속에서 다소 버릇없이 자라 혼내기도 많이 했는데 금 새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 축구에 흠뻑 빠져 지낸다. 2017년에는 대전광역시 저출산 극복을 위한 출산장려시책에 기여한 공로로 시장님으로부터 표창장을 수여받았다. 엄마가 건강해야 아이도 건강하다는 생각에 뜻을 같이 한 엄마들이 모여 공동육아커뮤니티를 만들어 부모소통교육을 위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만들어 비영리민간단체 활동을 하면서 육아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주위에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다문화엄마들과 모임을 형성해 알림장이나 아이들 숙제도 함께 봐주며 엄마가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시끌버끌 북적북적 늘 시끄럽고 바람 잘 날 없지만 나는 감히 말 할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아이 한명을 낳고 교육시키는데 몇 억이 든다고 아예 출산을 포기하고 금쪽이 같은 아이가 태어나서 감당 못할바엔 강아지나 기르면서 편하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참 많다. 그들이 추구하는 행복은 당장의 편안함이고 당장의 여유있는 삶일지 모르지만 부모의 희생과 사랑과 눈물이 거름이 되면 그 따뜻한 심장을 가진 젊은이들이 결국 이 사회를 건강하고 밝게 만들어갈 것이라고 믿기에 이 세상의 모든 부모는 위대하고 존경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제3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내 사랑을 듬뿍 머금은 자녀들을 볼 때면 마음 한 켠이 뿌듯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함에 있어 큰 힘이 된다. 대학생, 중학생, 초등학생 아직 갈 길이 멀기에 뛰어야 할 일들이 많지만 뛰어야 하는 이유도 다시 뛸 수 있는 힘도 결국 사랑하는 가족이다!

#부모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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