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챌린지
인생2막 나의 발견
June
8달전

[1. 나의 발견]

“안녕하세요. 시민아이디어 구현 운영사무국입니다.OOO시민작가님의 사전 인터뷰 질문지 송부드립니다. 질문지 확인하시고 인터뷰는 촬영팀과 조율해 연락드리겠습니다.”아이 둘 키우는 평범한 내가 인터뷰라니! 촬영이라니! 대박!!! 상금도 이백만원이란다. 로또에 당첨되면 이런 기분일까? 2021년 그러니까 첫째가 8살, 둘째가 7살 되던 해에 서울시에서 주최로 한 ‘공공미술 시민아이디어 구현’ 공모전에 7년간 썼던 육아일기를 추려서 낸 적이 있다. 2014년 첫째를 가지고 쓰기 시작했던 태교 일기가 육아로 지치고 힘든 마음을 어디가 하소연 할 데가 없어 자연스레 육아일기로 이어졌고, 본의 아니게 2015년 15개월 차이로 연년생으로 둘째를 낳기 시작하면서 육아가 힘들면 힘들수록 육아일기를 쓰는 횟수도 많아졌더랬다. 육아는 같이 한다지만 종일 남편도 회사에서 듣기 싫은 이야기 내내 들었을 텐데 내가 힘들다고 말하는 것도 어느 정도여야지. 나라도 하나에서 열까지 듣기 싫겠다. 아이들이 어릴 땐 그래도 저녁밥을 먹이고 목욕만 시키면 8시 반이나 9시면 잠드니 그때 밀린 집안일을 하고 나면 졸리고 피곤해도 매일매일 찍은 아이들 사진이며 그날의 나의 생각을 잊어버리기 전에 블로그 글로 적어 내곤 했다. 물론 육아는 잠과의 싸움이건만 잠보다 글쓰고 사진을 올리고 올린 글을 다시 읽어 나가면 육아 스트레스가 이상하게 해소 되는 기분이랄까.

[2. 나란 사람]

12년 전 내 나이 36살이던 해의 12월 (한달 넘기면 37살이 될 뻔) 에 난 결혼을 했다. 당시 나는 친구들에 비해 결혼히 상당히 늦은 편이였고 아이는 낳으려 생각했지만 잘 가져지지가 않았다. 그래도 감사하게 첫째가 생겨 하던 일을 그만두고 온전히 육아 본선에 뛰어 든 건 38살 여름.나 밖에 모르는 일명 ‘현이 바보’ 남편도 있겠다(누구나 신혼땐 그랬겠지만)  ‘육아 까짓거 별거 있겠어. 난 여전히 꽃길만 걸을 거야.’ 라고 육아에도 자신만만했던 나이다.(지금 돌아보면 얼마나 교만했던지. 아마 그 생각 때문에 육아가 더더욱 녹록지 않았던 거일수도)하아....육아.. 왜 누구도 이렇게 힘들다고, 이렇게까지 마음대로 안 된다고 이야기 해주지 않았을까. 육아를 하면서 너무도 큰 배신감에 매일 매일이 서글펐고, 육아 힘들다는 동네맘들을 만나도 나처럼 힘든 사람은 없는 거 같은데. 다들 힘들대. 아이 하나 키우는데 힘들다고, 또 들어보면 친정이나 시댁이 옆동네여서 맡기고 한숨도 돌리면서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나만, 나의 육아가 힘드니 누구 탓을 찾기 바빴다.늦게 결혼한 내 탓, 친정과 시댁이 지방인 탓, 친정 부모님은 연로하시고 아프시고, 시아버님은 돌아가시고 시어머님은 일 하시고 ,왜 나만 도와줄 사람이 없이 혼자인거야. 외로웠다.첫째 6개월때 둘째가 바로 들어섰고, 첫째 돌 때 이미 배가 불러서 볼록 나온 배 위에 징징대는 첫째를 아기띠로 안고 다녔다. 아이들은 왜 이렇게 이유 없이 아픈지. 장롱면허였던 그땐 아이 둘을 데리고 택시를 타고 병원을 다녔다. 연년생을 혼자 악착같이 키우다 보니 산부인과 쪽 염증과 장염과 감기는 한 세트가 되어 한 달에 한번씩은 꼭 거쳐가고, 내가 아파서 링거맞으러 병원을 가려해도 아이 둘을 데리고 다녀야 하니 세상에서 난 가장 불쌍한 여자였다. 근데 이상하게 이렇게 힘들어도 ,아파도 ,이런 나의 모든 감정들을 글로 표현 할 때 만큼은 너무 행복했다. 육아 스트레스를 풀 데가 있어야 한다던데 나의 그 스트레스 돌파구는 글이였던 것 같다. 그렇게 한해 두해 쓴 나의 일기와 사진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 ‘2021 공공미술 시민 아이디어 구현‘ 공모전의 시민 스토리에 당선이 되었고 우리 아이들의 육아일기를 바탕으로 한 건축물도 설치되었다. 누구 누구 엄마 , 누구 누구 어머니가 아닌 ’OOO‘이라는 내 이름으로 시민작가님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내 인생이 업그레이드 된 느낌이였다. 서울시청누리집에 실릴 인터뷰도 했다. 가문의 영광이였다.

[3. 인생 제2막]

6년간 경단녀로 육아에만매달렸던 나는 지금 전시관 안내데스크 에서 일을 하고 있다. 아이를 낳기 전 일본어 통역하는 일을 했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삶을 걷고 있는 것이다. 전시관 주 이용객이 어린이와 학생들인데 여기 업무를 맡게 된 것도 치열한 육아 전선에서 얻어진 고급지고 알찬 현장 경험과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가면서 얻어진 나의 짜투리 시간을 도서관에서 종류 가리지 않고 봤던 독서와 그리고 육아 일기 쓰면서 꾸준히 말하고 쓰는 능력을 키워왔던 덕분이라고 감히 말 하고 싶다.과거 나의 초등학교 시절 특별활동 시간에 특출나게 잘하는 게 없어서 가장 인기 없는 운문부에 들어갔던 게 생각이 난다. 시를 적어 내래서 그적이니 자꾸 상을 주셨다. 그래. 그랬었다. 글쓰는 재주가 있었는지 육아일기를 쓰면서 잊었던 어릴적 나의 재능이 생각났다.육아 서적을 읽으면 펑펑 울면서 아이들에게 이러지 말아야지 새삼 마음 다 잡고 반성 하다가도 책을 덮으면 1초도 안되어 난 다시 계모 엄마로 돌아왔다. 전문가들은 육아를 하면서 아이들을 통해 느끼는 행복이 육아의 힘듬보다 커서 그래서 육아를 한다고들 한다. 근데 정말 힘든데 이 딴 말들이 귀에나 들어올까?육아는 참을 ’인‘자를 수 천번 쓰면서 나도 몰랐던 지킬앤하이드 같은 내가 드러나고, 남편에게 보이기 창피할 정도로 형편없는 나란 사람의 바닥까지 드러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내 탓을 하게 되면 우울증이 되어 돌아오지만 여기서도 장점은 있다.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바닥까지 일단 내려가 봤으니 더 이상 내려 갈 곳이 없었다. 다시 올라오면서 내 속에 잠재되어 있던 꿈틀거리는 재능을 하나하나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이런 재능을 나의 경우는 머리가 나빠서 글로 그적여야 보였다. 공모전 하나에 당선되었다고 나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지 않았지만 사회와 단절되었던 육아로 무너진 나의 자신감과 자존감에 불씨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뒤로 글쓰고 사진 찍는 공모전과 이벤트가 있으면 종종 참여해서 어떤 날은 꽃다발이 당첨이 되어 오고 맥주 한 박스가 배달되어 오고 또 어떤 날은 쇼핑몰 포인트가 지급되는 소소한 삶의 재미를 맛보고 있다. 누구누구 엄마가 되어 비로소 발견한 나의 재능으로 보상받는 이 짜릿한 기분. 현재의 육아가 너무 힘들지라도 지금의 이 시간이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내 인생의 문이 완전히 닫히는 느낌이였는데. 육아 스트레스때문에 썼던 글들이 쌓이고 쌓이니 또 다른 문이 조금씩 열리더라. 이게 이제부터 펼쳐질 내 인생 제2막의 시작인지도.

#부모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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