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챌린지
어린이집 첫 등원
쭌찌맘
9달전

  보통 어린이집 신규반 개설은 주로 3월에 하지만, 요청하는 엄마들이 있어 10월에 0세반이 만들어졌다. 추석연휴가 끝난 10월의 첫 날인 10월 4일. 아이와 어린이집 첫 등원을 했다.

  아침부터 아이 머리를 정성스럽게 빗겨 주었다. 가정보육을 할 때는 아이 머리를 신경 쓰지 않았다. 더운 여름에도 묶어줄 생각을 못했다. 머리가 묶을 만큼 길지 않은 이유도 있었지만 굳이 단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에 보내기 전날 나는 무엇을 준비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아이의 머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직은 머리가 짧아서 잘 묶이지 않았지만 요리조리 만져보며 층층이 묶는 방법을 찾았다. 머리를 묶어주니 꽤나 단정해보였다. 아이도 머리를 예쁘게 묶어주니 소중하게 사랑받는 아이처럼 보였다.

 그 다음은 아이 옷 입히기. 나는 거의 모든 아이의 옷을 다른 사람에게 물려받아 입혔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기도 했고, 계절마다 아이가 입는 옷 사이즈가 달라졌기에 새 옷을 사는 게 아깝기도 했다. 다른 엄마들처럼 내 아이가 입는 옷이니 조금 부담스럽더라도 돈 주고 사서 깨끗하고 깔끔한 새 옷을 입히자는 마음은 처음부터 들지 않았다. 아직 자아를 표현하는 기능으로서의 옷의 개념을 모르는 어린 아이에게 돈 주고 새 옷을 사주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다. 지금 옷을 사줘봤자 다 내 취향이고 내 욕심일 텐데. 가계도 어려우니 아이 옷 살 돈을 모아서 나중에 아이가 원하는 옷을 사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토피가 있는 아이들은 새 옷에서 나오는 알레르기 물질 때문에 일부러 헌옷을 구해 입는 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아토피성 피부가 있는 내 아이에게 헌옷을 입히는 것은 가정경제도 살리고 아이의 피부도 보호하는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결론 지었다.

 그래서... 아이의 옷은 후줄근하거나 촌스럽거나 여기저기 얼룩이 묻어 있거나 사이즈가 맞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린이집에 보낼 때는 옷이 화려할 필요는 없지만, 활동하기에 편하고 깔끔한 옷을 입혀 보내고 싶었다.

  이전과 달리 일찍 일어나 어린이집이 보내려면 정신이 없을 수 있었다. 며칠 동안 입을 아이 옷을 상하의로 맞춰 두었다. 내가 엄마가 되고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는 퍼즐 조각 같은 아이 옷을 완벽하게 맞추었을 때다.

  차에서 내려 아이 어깨에 배낭을 걸어주었다. 아이는 거부감 없이 배낭을 메었다. 내 아이가 아직 어렸을 때, 먼저 태어난 다른 집 아이들이 그렇게 배낭을 메고 어린이집 입구에서 엄마에게 손을 흔드는 모습이 다 큰 것 같아 내심 부러웠다. 나는 언제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드디어 오늘 아이가 배낭을 메고 어린이집으로 아장아장 걸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이의 가방을 엄마가 어깨에 메고 오거나 손에 들고 오는 엄마도 있었다. 나도 아이에게 배낭을 메어주면서 혹시나 이 배낭이 아이에게 무겁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조금 들었다. 그래도 내가 들지 않고 아이가 들게 했다. 처음부터 내가 들어주면 아이가 그걸 당연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였다.

   ‘그래. 이 정도 무게는 네가 짊어도 될 것 같아. 아직 한 번도 어깨에 무얼 져 본적이 없는 네가 느끼기에는 조금 무거울 수도 있지만.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 각자 자신의 삶의 무게를 지고 나아가야 하니까. 오늘 너에게 필요할지도 모를 기저귀 2장과 여벌옷, 손수건과 물티슈를 합한 무게 정도는 조금 무거워도 네가 짊어질 너의 무게라고 생각해.’

 독립. 나는 양육의 목표가 독립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자식은 독립할 존재이기에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스스로 혼자 잘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돕는 거라고. 그래서 나는 이제 20개월이 된 아이에게 웬만한 건 다 시켜본다.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워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 혼자 손을 씻는 것. 기저귀를 가져오게 하는 것. 입을 옷을 골라오게 하는 것. 신발을 신고 벗는 것. 물티슈로 아이가 어지른 식탁이나 바닥을 닦게 하는 것. 이런 저런 단어들을 많이 알려주려 노력하는 것. 아이가 자기 빨래를 빨래 통에 넣게 하는 것 등등. 아이가 서투른 몸짓으로 혼자 바지를 입으려 할 때나(매번 바지 다리 한 쪽에 두 다리를 넣어 버려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지만...) 양말을 혼자 신어 보려고 할 때도 말리지 않는다.

 가능한 아이가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기술과 능력을 빨리 습득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야 부모로서의 내 역할도 빨리 끝날 수 있을 것 같아서일까. 빨리 빨리 다음 단계를 알려주면 나도 아이의 새로운 모습을 보며 신이 날 때가 있다. 아이가 금방 금방 크는 것 같아서. 그 모습이 신기해서. 이것도 알려줘 보고 저것도 알려줘 본다.

어린이집 대기를 걸어 놓고 기다리는 동안 혼자 보육이 어려울 때는 종종 시간제에 맡겼었다. 시간제에 맡길 때는 내가 학부모라는 느낌이 없었다. 그러나 어린이집 입소 소식을 듣고 나는 내가 학부모가 된다는 생각에 들떴었다. 초등학교도 아니고 무슨 어린이집을... 그럴 수 있지만 그래도 나는 아이의 첫 사회생활을 바라보는 학부모가 된 심정이었다. 생각만 해도 가슴 어딘가가 두근거리고 몽글몽글했다. 아이가 사회를 향해 조금씩 발을 내딛을수록 부모는 이런 마음을 느끼게 되는구나... 첫 등원을 하니 어린이집 공지사항을 확인하는 어플도 안내 받고, 입소관련 해서 작성해야 할 서류도 받았다.

  어린이집 첫 등원. 적응기간이기에 나도 아이와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있었다. 아이의 적응 정도에 따라 적응이 필요한 기간이 달라진다고 한다. 언제 아이와 분리를 시작할지는 모르겠다. 빨리 끝나서 나만의 자유 시간을 갖고 싶기도 하고, 나 없이 어린이집에서 하루의 8시간을 보낼 아이가 걱정되기도 한다.

  집에서 나 혼자 아이를 볼 때는 죄책감이 많이 들었다. 아이의 요구에 제때 반응해주지 못할 때도 많고, 힘들 때는 아이를 방치하거나 미디어를 보여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자책하며 나와 있는 것보다 아이를 빨리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아이에게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와 함께 어린이집에 있어보니, 집에서 내가 아무 말 없이 아이 옆에 있어주는 것도 아이의 정서적 요구를 채워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가 내 배에 올라타거나 안아 달라고 하거나 아이가 편한 자세로 내게 기댈 때도 거리낌 없이 해줄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어린이집 선생님한테는 아이가 그런 걸 해달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엄마가 아니기에. 선생님에게 할 수 있는 스킨십의 범위는 제한적일 것 같았다. 또한 내 아이 말고 2명의 아이가 더 있으니. 선생님이 내 아이에게 쏟을 수 있는 에너지는 그만큼 적어지겠지. 아이가 집에서 나와 있었던 장면은 내가 엄마이기에, 나와 1:1로 있기에 가능한 모습이었다.

  아이는 앞으로 엄마가 없는 어린이집에서의 8시간을 어떻게 느낄까. 엄마 없이 8시간을 있을 아이가 안쓰럽기도 하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다니면 1년 내내 아픈 걸까. 정신적인 스트레스나 정서적 결핍이 면역력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

  이런 고민 때문에 나는 내 자유와 아이의 행복 사이에서 오늘도 저울질을 한다. 아이에게 좋은 선택을 하려면 내 자유를 포기해야 할 때가 많다. 내 자유를 찾자면 아이에게 조금 덜 좋은 선택을 해야 하기도 한다. 돈도 체력도 사랑도 지혜도 도와줄 사람도 많은 엄마라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가진 자원의 한계가 많기에 어쩔 수 없이 선택도 하고 포기도 해야 한다.

  아이를 임신하고부터 아이와 나 사의의 균형을 잡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이만 위할 수도 없고, 또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면 적절한 좌절 경험이 필요할 아이에게도 한계 상황은 필요했다. 나는 엄마이기 이전에 내향적 기질을 갖고 있는 사람이기에, 충전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절실했다. 또한 임신과 출산, 육아로 단절된 사회적 커리어를 다시 이어나갈 준비를 위해서 아이 없이 집중할 시간이 필요했다.

  어린이집에 다녀와서 아이와 육아종합지원센터에서 하는 교육을 받으러 갔다. 때마침 센터에서 어린이집에 처음 보내는 부모를 대상으로 교육을 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낮잠 잘 생각도 없이 똘망똘망했다. 강의가 시작되고 아이가 소리를 내었다. 과자로 달래보려 했지만 과자 5개가 넘어가자 슬슬 아이도 배가 부른지 과자에 흥미를 잃었다. 나는 강의에 방해가 될까봐 아이를 데리고 조심스럽게 나왔다. 그러자 강의실에 있던 직원 한 분이 나와서 자기가 아이를 봐줄 테니 강의를 들으라고 했다. 나는 그분이 신분도 확실했고 인상도 좋아보여서 아이를 맡기기가 꺼려지지는 않았다. 아이도 ‘이리와’ 하는 그 직원분에게 흔쾌히 두 팔을 벌리며 안겼다. 나는 감사하다고 말하고 그 직원 분께 아이를 맡겼다.

 다시 들어와서 강의를 들었다. 듣다 보니 누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실수할 수도 있었겠다는 내용이 있었다.

  첫째는 CCTV에 관한 것이었다. CCTV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관리되기 때문에 보호자가 원한다 하여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 CCTV는 자녀의 안전을 확인할 목적일 때만 확인 가능하며 법에 따라 열람시기, 절차, 방법 등을 준수하여 어린이집에 요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아이가 선생님이 자신을 때렸다는 말만 듣고 부모가 경찰과 지자체를 동원하여 CCTV 열람을 요청한 사례가 있었다. 이틀 동안 60일 치 영상을 다 보았지만 선생님이 아이를 때린 장면은 없었다. 선생님이 몸을 돌리면서 팔로 아이를 치는 모습은 있었지만 그런 줄 모르고 지나간 장면 하나가 있었다. 아이가 ‘때렸다’고 표현했지만 선생님은 미처 모르고 지나간 순간이었던 것이다. 부모는 아이를 믿고 수용하는 존재이지만, 아직은 상황 판단이 미숙할 수 있는 나이이기에 아이 말이 사실과는 틀리거나 다를 수도 있음을 염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는 선생님에 대한 신뢰 부분이었다. 양육자가 어린이집과 교사를 신뢰하지 않으면 불신이 아이에게 전해져서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오늘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놀다가 선생님이 아이에게 “저기 가볼까?”하면서 아이를 번쩍 들었다. 그 때 나도 모르게 갑자기 불안이 쑤욱 딸려 나왔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아이가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조금 예민하고 불안이 높은 엄마이기에 마음을 잘 다스려야 겠다 다짐했다.

 셋째는 휴일에 쉬라는 내용이었다. 평일 내내 어린이집에서 긴장 속에 생활하는 아이에게 주말만큼은 가정에서 편안히 아이와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고 했다. 나는 평일에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적으니 주말에는 아이와 놀러 다니면서 추억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야외 활동이 오히려 아이에게 무리가 갈 수 있다니... 몰랐다면 주말마다 빽빽하게 일정을 잡아 놓았을 것 같다.

 강의가 끝날 무렵 강사분이 내게 아이가 어디 있는지 물어봤다. 나는 직원분이 봐주고 있다고 했다. 강사 분은 아이가 엄마와 분리되어도 불안을 느끼지 않는 걸 보니 애착이 잘 형성된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칭찬이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머쓱했다. 내가 아이와 애착이 잘 형성될 만큼 충분히 좋은 엄마는 아니었던 것 같아서였다. 그래도 아이가 엄마 없이 잘 놀고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내는 걸 보면 어린이집 적응도 무리 없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가 끝나고 아이를 봐주신 직원분에게 갔다. 아이가 너무 예쁘다면서 잘 놀았다고 해주셨다.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배려해주신 직원분께 연거푸 감사 인사를 드리고 아이와 집으로 향했다. 아이는 오늘 하루가 고단했는지 집에 오는 아기 자전거에서 잠에 들었다. 집에 도착해 잠든 아이를 침대에 눕혔다. 아이의 얼굴을 보며 조금 전에 들었던 강의 내용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매스컴에 오르내렸던 일부 안 좋은 사건 이후로 부모들이 어린이집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것 같다. 요즘 아이를 하나 낳아 귀하게 키우는 경향도 있는 것 같고. 이전과는 달리 조금 더 예민하고 불안한 양육자의 성향도 있는 것 같다.

  아마 매스컴에 나오는 어린이집에 양육자가 분노하는 이유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기분이어서가 아닐까. 내게 가장 소중한 아이를 믿고 맡겼는데 학대라 부를 수 있는 환경에서 아이가 지낸 것에 분개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프레임이나 고정관념으로 정말 아이를 사랑으로 대하는 좋은 선생님들까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불신하는 경우가 안타까운 것 같다. 아이가 좋아서 교사가 되었지만 이제는 아이 관련된 일은 절대 하고 싶지 않다는 사례도 들었었다.

   집에 가져 온 강의 자료를 정리하며 읽어보는데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있었다. ‘교사들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어린이집의 규칙을 잘 지켜주는 부모, 권리도 주장하지만 그에 적절한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부모가 최고입니다.’

  어린이집과 양육자의 관계가 마치 아슬아슬한 공생 관계 같다. 어린이집이 내 아이를 돌보아주는 고마운 공동 양육자이면서 내 아이가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할까봐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마음이 동시에 드는. 나도 예민하고 불안이 높은 엄마로서, 조심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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