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변했다

사춘기 아들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아들 뽀뽀 한 번 해도 돼?”
“안돼.”

아이들에게 뽀뽀를 퍼붓는 편이다. 큰아들이 어릴 때는 허락도 받지 않고 아들의 얼굴, 손, 발 할 것 없이 여기저기 뽀뽀를 해 댔다.

무뚝뚝한 큰아들은 막내와는 달리 나에게 자발적으로 뽀뽀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저 체념한 듯 가만히 있었다.

큰아들이 4학년이던 어느 날, 아들은 나에게 뽀뽀 금지령을 내렸다.

생각해 보면 갑자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어느 날 부턴가 내가 뽀뽀를 하면 인상을 쓰며 볼을 손으로 닦기 시작했다.

“왜, 더러워?”
“응.”

속마음을 먼저 잘 드러내는 법이 없는 아들은 내 질문에는 솔직하게 답하는 편이다. 내 요리가 맛있냐는 질문에 신혼 시절부터 지금까지 늘 일관되게 눈치 없이 솔직히 대답하는 남편의 유전자가 큰아들에게 몰빵 된 모양이다.

“엄마 이제 뽀뽀 그만할까?”
“응.”
“뽀뽀 금지령이야?”
“응.”

괜한 질문을 한 것 같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얘기해 본 건데. 이제 아들에게 뽀뽀를 마음껏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럴 때도 됐지. 아직도 가끔씩 습관적으로 아들에게 뽀뽀를 해 버릴 때가 있다. 아들은 왜 물어보지도 않고 그러느냐며 역정을 낸다. 뽀뽀를 한 번 해도 되겠냐고 물어본다. 어차피 안 된다고 한다. 그래. 잠잘 때 하면 되지 뭐. 나이 서른이 다 되어서까지 엄마한테 뽀뽀해 달라고 하는 것보다 제때 끊는 게 훨씬 낫지.

육아 전문가들은 부모가 아이를 어른으로 대하면 아이도 어른답게 행동한다고 했다.

평생 아기처럼 대하면 나이 서른이 되어서도 그저 엄마의 귀염둥이 아들로만 살려고 할 수도 있겠지. 스무 살이 되면 내 품을 떠나 사회에 나가야 할 텐데.

아쉽지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일일테니까.

“야 임마, 네가 왜 가운데 눕냐고?”
“아니 누울 수도 있지.”
“엄마가 가운데 누울게”

행복한 일인 줄 몰랐다. 나를 두고 아들 둘이 서로 내 옆에 눕겠다고 언쟁을 벌이는 것이 행복한 일인 줄 그때는 미처 몰랐다. 그저 육퇴를 늦게 만드는 방해 요소 중 하나일 뿐이었다.

큰아들은 이제 내가 어디에 눕든 말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큰아들이 상관없어지니 신기하게 막내도 같이 상관이 없어진다. 전투력이 사라졌나 보다. 서로 옆에 눕겠다고 싸울 때는 언제고, 갑자기 없어도 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서로 내 손을 잡겠다고 혈투를 벌이더니.

육퇴 시간이 단축되어 기쁘기도, 아들의 마음속에 내 공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서운하기도 하다.

“엄마, 나가.”
“응? 왜?.”
“엄마 설거지해야 한다며.”
“아, 같이 누워서 얘기 안 해도 돼?”
“응.”

급기야 아들은 나에게 나가라고 했다. 겁이 많은 아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잠이 깊이 들 때까지 나를 나가지 못하게 했다. 인기척을 내면 잠든 줄 알았던 아이가 눈을 번쩍 떠버려서 크게 낙담했던 때가 얼마 전인 것 같은데. 눈도 말똥말똥한데 잠자기 전 할 일이 있는 건가. 왜 나가라고 하는 거지.

서운함과 궁금함을 뒤로하고 잘 자라고 말하며 아들 방을 나선다.
‘나는 솔로’ 보려면 10시 30분에는 아이들을 재워야 하는데. 영식씨가 옥순씨한테 뭐라고 말했는지 궁금한데. 잠들지 않는 아이들에게 내일 학교에 가니까 얼른 자자며 조바심 내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영식씨, 옥순씨의 마음 말고 내 아이의 마음을 더 궁금해했어야 하는 건데.
누워서 도란도란 얘기 좀 더 나눌걸.

“큰아들, 학교 잘 다녀와.”
“…….”

아이들의 초등학교에는 스쿨버스가 있다. 처음 제주에 내려왔을 땐 아침마다 스쿨버스 정류장에 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하교 할 때도 버스 정류장에 가서 아이들을 기다리곤 했다. 당시 4학년이었던 큰아이는 내가 스쿨버스 정류장에 마중 나가는 게 싫은 눈치였다. 손을 세차게 흔들며 인사하는 동생과 달리 큰아들은 나를 반기지 않았다. 엄마는 동생 맞이하느라 나가는 거야. 그래도 손은 한 번 흔들어 줄 수 있는 거 아니니?

초등학교 1학년 때 나와 헤어지며 울먹이던 큰아이가 떠올랐다. 교실 앞문에 서서(코로나 이전에는 입학 후 며칠 동안 교실 앞까지 아이를 데려다 줄 수 있었다) 맨 앞줄에 앉아 있던 아이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 주고는, 뒷문으로 가서 아이를 지켜보았다.

엄마가 간 줄 알고서 손으로 눈물을 훔치던 큰아이.

혹시 엄마가 있나 싶어 뒤를 돌아본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왕초보 학부모는 마음이 저려왔다. 잔뜩 긴장한 아이를 향해 웃으며 화이팅을 외쳤다. 그 시절 아이에게 엄마란 어떤 존재였을까.

이제 아이의 등하교 길에 더 이상 내 자리는 없다.

**

“엄마, 나 머리 떴어?”
“응. 이리와 봐. 고데기로 눕혀줄게.”
“아 진짜, 더 떴잖아.”
“…미안.”

늘 머리에 커다란 새집을 짓고 등교하던 아이였다. 머리에 커다란 새집이 있어도, 눈에 눈곱이 꼈어도, 코에 코딱지가 있어도 전혀 개의치 않던 아이였다.

그랬던 아이가 달라졌다.

아침마다 머리 상태를 체크한다. 엄마는 도와주고 싶다. 뜬 머리를 고데기로 눕혀준다. 어설픈 엄마는 아들의 머리에 새집을 허물고 높다란 웨이브를 만들어 주었다. 물 뿌리고 말려 줄 시간이 없다. 스쿨버스 시간이 다 되어서 말이다. 아이는 씩씩거리며 뛰어나간다.
생전 안 보던 거울을 들여다보는 아들. 좋아하는 여자친구라도 생긴 건가?

“그 책 무서워서 읽기 싫어.”
“그래? 무슨 내용인데 그래?”
“요괴 이야기야.”

큰아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겁이 많았다. 요괴 이야기 책은 무섭다며 읽지 않았다. 불 꺼진 밤이면 귀신이 나올 것 같다고 걱정했고, 넓지도 않은 집인데 밤에는 화장실까지 가기 겁난다며 같이 가자고 했다. 집에 혼자 있는 것을 힘들어했고, 가끔 집에 혼자 있을 때면 수시로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서 귀찮을 정도였다.

그런 아들이 작년 어느 날 빅스비를 부르더니 “하이 빅스비! 무서운 이야기 해줘.”라며 자발적으로 괴담을 듣기 시작했다. 반복해서 듣더니 내용까지 다 외웠는지 따라 말한다.

작년 겨울부터는 빅스비를 불러 이야기를 듣는 대신 요괴 책을 읽기 시작했다. 10권 짜리 책을 몇 번 반복해서 읽었다. 아들은 이제 귀신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다. 귀신을 무서워하는 대신 본인의 팔 근육을 좀 보라며 억지 근육을 만들어 내고, 복근을 좀 만들어 봐야겠다며 런닝까지 벗고는 윗몸일으키기를 해 댄다.

어쩜 이렇게 많은 것이 한꺼번에 변할 수 있는 걸까. 불과 몇 개월 전에는 분명 귀신 이야기에 잔뜩 겁을 먹던 어린이였는데.

자꾸만 아들의 몇 개월 전 동영상을 찾아보게 된다.

**

“아들 이거 한번 해볼래?”
“뭔데.”
“봐, 이거 네가 좋아하는 분야 같은데.”
“신청 해.”

아들은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힘들어하는 편이다. 집에서는 유튜브를 보며 기타를 독학하고, 2시간이 넘게 꼼짝도 않고 한 자리에 앉아 종이접기를 하는 아들이다. 관심 분야의 수업을 제안하는데도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기 싫다고 하던 아들. 하고 싶은 게 없는 건 아닌데 새로운 환경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요즘 아들이 변하고 있다. 방과 후 수업도 알아서 신청하고, 혹시나 싶어 창의 과학 수업을 제안했더니 대뜸 하겠다고 했다. 다른 학교 아이들도 잔뜩 모이는 수업인데 말이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엄마인 나. 육아를 해오며 온통 후회스러운 것들 투성이인데. 억지로 등 떠밀지 않고 기다린 건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한 주가 시작됐다. 나는 더 이상 스쿨버스 정류장에 나가지 않는다. 현관에서 아이들을 배웅한다.


“잘 다녀와.”
“(눈을 맞추고 꼭 안으며) 엄마 사랑해. 다녀올게. ❤❤.”
“가오(노룩/ 학교에 간다는 뜻).”

전혀 다른 모습으로 집을 나서는 아들 둘. 열둘 첫째와 아홉 살 막내의 2023년 7월의 모습. 나는 전혀 다른 모습의 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멀어지는 중인 열둘 첫째가 다시 살가워지는 때가 오기도, 아홉 살 막내가 나에게서 멀어지는 때가 오기도 하겠지.

후회하지 않고, 그리워하지 않고, 지금을 잔뜩 즐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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