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엄마는 제주 워케이션 중 

나는 결혼이나 아이에 대한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 

사회가 정한 결혼 적령기가 될 때까지 오래 만난 연인이 있었고, 그 사람과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결혼하는 것이 정해진 순서였다. 결혼을 좀 더 늦게 하거나, 혹은 안 하거나 할 이유는 없었다. 아니, 그런 건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건 그냥 마땅한 순서였다. 때가 되었으니 자연스럽게 따르는 게 맞았다. 

결혼한 지 14년이 지난 지금에야 ‘결혼 말고 네 인생에 다른 플랜을 생각해 볼 순 없었니? 이 아름다운 것아?’ 라는 생각을 하지만, 그때의 나에겐 그게 당연했다. 

💊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없다


우리 부부는 허니문 베이비로 아이를 가졌다. 내가 아이를 가졌다는 게 참 신기했다. 감사한 일이고 축복이었다. 그런데 내가 결혼하기 전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결혼과 동시에 제법 오랜 시간 남편이 내 곁에 없을 운명이라는 사실이었다. 남편은 갑작스러운 이직으로 결혼을 코 앞에 두고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었고, 나는 직장을 그만둘 수 없었기 때문에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 혼자 계신 시어머니와 단둘이 살게 되었다. 

보통 이런 전개라면 친정 부모님이 시어머니께 “아유~ 땡땡 서방도 없으니, 둘이 살림 합칠 때까지 우리 애는 저희가 데리고 있을게요오호호호호~~~”할 텐데, 드라마 보면 다 그렇게 하던데, 옆집 친구네도 그렇게 하던데, 우리 엄마 아빠는 달랐다. 

“결혼했으니 그 집에 드가서 사는 게 맞제.”

난 그렇게 하기 싫었지만, 결혼이란 게 참 이상하더라. 결혼을 하면서 부터 친정과 나 사이에 뭔가 결계 같은 게 생긴 기분이었달까. 그 결정이 싫었지만 그렇다고 떼쓸 수는 없었다. 그렇게 뭔가 반강제적인 정신적, 육체적 독립을 하고 시댁살이를 시작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힘들게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아침저녁으로 매우 바쁘셨다. 일은 안 하셨지만 워낙 사회활동이 활발하셔서 서로 마주칠 일이 별로 없었다. 나도 직장 생활에 바빴고 워낙 혼자 잘 노는 스타일이라 결혼하기 전처럼 지냈다. 

하지만 그 ‘결혼하기 전처럼’이 문제였다. 아니, 나 결혼했는데? 왜 아직도 ‘결혼하기 전처럼’ 지내는 거지? 왜 아직 혼자 놀아? 이런 생각이 점점 날 괴롭혔다. 게다가 임신까지 하지 않았나. 친구 누구누구처럼 밤중에 자는 남편 깨워서 “자기야, 땡땡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는 버터 발라 구운 알감자가 먹고 싶어”라든지 “한겨울에 미안하지만, 하우스 딸기라도 좋으니 어디 알이 이따만큼 큰 딸기 없을까?” 이런 멘트까지는 아니라도 그냥 같이 밥 먹고 산책하고 병원 검진도 같이 다니는 소소한 일상을 나눌 남편이 곁에 있으면 했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걸로는 부족했다. 그때 나는 계약직으로 직장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얼른 계약기간이 끝나서 남편이 사는 곳으로 이사를 했으면 했다. 그럼 임신 후반기부터는 우리 둘이 알콩달콩 살 수 있겠지. 그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드디어 남편과 살림을 합쳤다. 

아, 나는 이제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는 행복한 임산부야! 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생각지 못한 남편 귀가 시간과의 전쟁이 벌어졌다. 남편은 당시에 교대 근무자였다. 그리고 내 생각보다 사회적 인간관계를 훨씬 더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오랜 연애 기간을 거치며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결혼 생활은 또 다른 문제였다. 너와 나에 대한 새로운 발견의 시작이랄까. 남편과 같이 살기 시작하자 하나부터 열까지 코가 막히고 기가 막히는 일들이 벌어졌다. 

내가 꿈꿨던  알콩달콩 신혼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남편과 같이 살면서도 여전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리고 출산 막달에 남편이 또 이직하게 되면서 고향으로 급히 이사하게 되었다. 집을 구하고 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시댁에서 잠시 지내기로 했고 그때부터 내 독수공방 육아 생활이 시작됐다. 언제나 바쁜 남편, 그 못지않게 바쁜 시어머니. 그리고 역시 장사하시느라 바쁜 친정 부모님. 애는 낳아놨는데, 뭘 어찌해야할 지 도통 모르겠는데, 옆에서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그저 본능에 따라서, 육아 책 몇 권에 나온 행동강령에 따라서 움직였다. 외롭고 지쳤지만 아이는 예쁘니까 열심히 키웠다. 

결혼 전부터 나는 아이가 돌만 지나면 일을 시작할 생각이었고 정말 그렇게 했다.

큰아이가 17개월쯤 됐을 때인가, 안 떨어지려고 우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일에 복귀했다.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고, 마침 기회가 왔기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즈음 남편은 또 이직을 했다. 무려 제주로. 그리고 곧 둘째가 태어났다(그 와중에 또 사랑을 했다). 

아직 큰아이도 어리고 나도 일을 하는데 둘째를 낳으면 정말로 아이를 봐 줄 사람이 없어서 친정 부모님을 설득해서 친정으로 이사했다. 큰아이는 어린이집에 보내고, 둘째는 엄마에게 맡기고 오전, 오후 강의를 하고 돌아와 저녁에는 아이들을 돌봤다. 

아이들은 눈부시게 예뻤지만 내 몸과 마음은 대책 없이 무너지던 시절이었다. 

내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이 날 불안하게 만들었고, 매일 같이 날 덮치는 열등감과 열패감에 자주 울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남편과는 점점 제대로 대화하기가 힘들었고 두려움으로 뒤범벅된 미래를 바라보며 각자의 자리에서 지쳐만 갔다.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었고 부담이었다. 원망하고 화내고 싸우는 날의 연속이었다. 

나는 어쨌든 남편과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이 문제들이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도 아빠가 필요했고, 내겐 시집이나 친정집이 아닌 내 집에서 남편과 서로를 이해할 시간이 필요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그곳이 남편이 있는 제주라면, 나는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날 괴롭히는 모든 것에서 도망치는 심정으로 제주로 향했다. 바다 건너 푸른 섬으로. 

💊 제주에 살앙, 좋수깡?


제주로 이사한 후, 난 비로소 내 가족과 우리들만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여전히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이 산재해 있었지만, 결혼하고 처음으로 마음의 안정을 느꼈다. 날 옥죄던 관계들에서 벗어나 홀가분했다. 제주가 주는 물리적 거리감이 내게 준 선물이었다. 

그때의 난 일보다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게 중요했기에 남편에게 3년만 육아에 전념하겠다고 양해를 구했고 아이들에게 온 마음으로 집중했다. 너무 귀한 시간이었고,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된 날들이 너무 감사했다. 

제주는 차가 없으면 이동이 힘든데 나는 운전을 못 해서 아이들과 근교로 자주 놀러 가지는 못했다. 지인들은 내가 제주로 이사 가서 천혜의 자연환경을 다 누리고 사는 줄 알았지만 난 여느 관광객보다 제주를 더 몰랐다. 하지만 나는 동네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노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온종일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아이들이 잠든 시간에는 책을 읽으며 자기 계발을 하거나 언제가 돌아가게 될 일터에 잘 적응하기 위해 공부했다. 

아이들은 감사하게도 무탈하게 잘 컸다. 3년의 육아 집중 시간이 끝나고 큰 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쯤에 일터로 복귀했다. 강의와 번역, 인하우스 통역사 등으로 일하다가 3년 전에 권고사직(회사가 문을 닫는 수순을 밟고 있었다)으로 직장을 그만둔 후부터는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는 프리랜서가 되어서 온라인에서 이것저것 시도하며 살고 있다. 

성공한 디지털 노마드라면 자신의 분야에서 경제적 자유를 이뤄서 장소와 돈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고 생활하겠지만, 나는 아직 장소에만 구애받지 않는 디지털 노가더이다. 하지만 디지털 노마드와 제주, 이 두 개의 키워드가 내 삶에 들어오면서 난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가치관과 생활 양식 그리고 미래에 대한 꿈까지 모두 변했다. 나는 지금 중국어 영상 번역가로 일하면서 매일 제주의 일하기 좋은 공간을 탐색하고 직접 가서 경험하며 그 주변에 펼쳐진 제주의 자연환경에 감탄하며 살고 있다. 도망치듯 왔던 제주에서 벌써 9년 째, 이제는 매일이 감사하다. 

💊 몰랐는데, 나는 이미 워케이션중이었다


결혼 전후로 프리랜서와 인하우스를 왔다 갔다 하는 직업인으로 살았지만, 인하우스로 일하지 않는 경우에 대부분은 집에서 일했다. 아이들이 어리니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지만 원래 집순이이기도 해서이다. 어디를 나가려면 신발 신는 순간까지 백 번 고민한다. 아, 귀찮은데 나가지 말까. 이게 내 머릿속 단골 멘트다. 친구와 만나자고 약속해 놓고도 약속 전까지 ‘만나고 싶은데 나가기는 싫다’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게 나다. 그런데 제주에 살면서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집 밖으로 조금만 나가도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는데 집에만 있을 도리가 있나. 

직장 생활을 할 때는(그사이에 운전도 배웠다!)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든 갔다. 제주는 어딜 가나 늘 새롭고, 아름답고 경이로웠다. 그렇게 콧구멍에 바깥바람 쐬는 재미를 하나씩 알아간 데다 온라인으로 여러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인간관계와 활동반경이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했고, 전에 가보지 못했던 공간에 가는 일이 늘어났다. 

그러면서  ‘공간’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늘 집에서 혼자 일하다가 낯설고 새로운 공간에 가서 일을 해 보니 완전히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늘 하던, 그래서 어떨 때는 지겹기도 했던 일이 새로운 공간을 만나니 뇌 안에 신선한 바람이 통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공간마다 특징이 있어서 어떤 곳은 리프레시하기에 좋고 어떤 곳은 집중이 잘 돼서 좋고 어떤 곳은 복잡한 생각이 정리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기에 좋았다. 마음에 꼭 드는 공간에서 잠깐이라도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내 취향의 공간을 검색한 후 직접 가서 일을 해보고 나면 SNS에 후기를 남겼다. 그러다 보니 좋은 정보를 알려줘서 고맙다는 댓글이 종종 달렸다. 온라인이나 SNS에 제주 여행에 관한 정보는 넘쳐나지만, 나처럼 일하기 좋은 공간을 찾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정보는 아직 많지 않다. 내가 좋아서 찾아다니는 공간에 대한 정보가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된다니, 참 기분 좋은 일이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재택근무가 늘고 여행이나 휴가와 일을 겸하는 형태의 워케이션이 유행하면서 working에 특화된 공간이 전국 곳곳에 생기고 있다. 제주도 마찬가지다. 제주는 휴양지이자 관광지이기도 하니 워케이션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워케이션이라는 단어를 온라인에 검색해 보면 대부분 높고 파란 하늘 아래 파도 소리를 들으며 드넓게 펼쳐진 백사장에 배를 깔고 엎드려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사진이 나온다. 비키니에(부러운 거 아니다) 선글라스도 끼고 있다(노트북 화면이 잘 안 보일 텐데). 아마 많은 사람이 워케이션이라고 하면 바로 떠올리는 장면이 이런 것일 테다. 멋진 휴양지에 가서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밀도 있게 일하고 일이 끝나면 바다나 산으로 뛰어가는, 그야말로 멋진 그림 말이다. 그리고 워케이션 중이거나 워케이션을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를 읽다 보면… 부럽다.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나도 조금만 더 어렸어도, 아니 애만 없었어도, 아니 결혼만 안 했어도 저렇게 살 수 있는 건데! 싶은 생각이 막 든다. 이제 내 평생에 저런 워케이션은 없을 거야…싶다.

아니, 그런데 잠깐만. 워케이션을 꼭 저렇게 멀리, 길게 가야 하는 걸까? 

어리고 탱탱한 피부에 비키니를 입지 않았어도(절대 부러운 거 아니다) 바닷가에서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일할 수는 있다. 어느 숲속 산장에 모여 늦은 밤에 모닥불 피워놓고 각지에서 워케이션 온 사람들과 하하 호호 네트워킹 파티는 못 해도 어느 산속 통창뷰의 카페에 앉아 나무에 스치는 바람 소리 들으면서 일할 수는 있는 거다! 그런 생각에 미치니, 어? 그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바로 워케이션인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했고, 애도 낳았고, 아이들 등하교 시간에 맞춰 애델레라로 변신해야 하니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새벽 혹은 낮, 아니면 아예 한밤중이고, 늙은 건 아닌데 그렇다고 막 젊지도 않고, 기력도 자꾸 달리지만, 나는 이미 하루 중 반나절을 워케이션으로 보내는 사람이었다. 

뷰 좋고 분위기 좋은 카페나 워킹 공간에서 몰입해서 일하고 그 주변을 산책하며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는 워케이션을 내가 이미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충족감과 만족감이 한 번에 밀려들었다. 

됐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더 길고, 더 멀고, 더 헐벗은(아, 이건 아니고) 워케이션은 나중에 아이들 다 키워놓고 하자. 지금은 이 반나절 워케이션만으로도 너무 좋다! 

워킹맘에겐 워킹맘 – 돈벌이를 하지 않고 육아만 하는 전업 육아맘도 워킹맘이다. 육아만큼 극한 직업이 또 어디 있나! – 에게 맞는 워케이션이 따로 있다. 나는 반나절 워케이션으로 일상에 활력을 얻고, 그 활력으로 자신과 자기 일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 이 선순환 구조를 사랑한다. 내 일상이 실제로 그러하다. 그래서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낯선 공간으로 반나절 워케이션을 간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은 다른 맘들과 만나서 함께 반나절 워케이션을 즐긴다. 

앞으로 내가 맘블리에서 풀어낼 이야기가 바로 워킹맘들의 제주 반나절 워케이션 이야기이다. 매우 개인적이어서 아주 특별한 우리들의 워케이션 이야기, 이제 시작한다.

💊 박영미 앰버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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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 김*수Healerhee
    1달전

    예전부터 영미님의 위트있고 생생한 글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번 글도 너무 잘 읽었어요👍👍
    담담하게 감정을 절제해서 써내려간 글들이 그 상황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게 되고 몰입하게 되네요ㅎ
    앞으로 연재할 글들이 기대되고 진심 응원합니다🧡💛❤️

  • 앰버서더
    박영미
    24일전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희수님. 제 이야기가 머릿속에 그려진다니 감동이에요 ㅎㅎ
    응원 너무 감사드려요, 앞으로 연재 될 글도 기대해 주세요! ^^

  • 공*연
    1달전

    너무 꿈만 같은 일상이예요~ 아이를 낳고 보니, 할 수 있는 일, 시간의 제약, 공간의 제약... 너무 많더라구요. 앰버서더님은... 그러한 환경을 긴 시간을 통해서 구축 해 놓으셨네요. 저의 로망 같은 일상이라... 다음편도 너무 궁금해요~

  • 앰버서더
    박영미
    1달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지연님 :)
    엄마들의 일상에는 참 제약이 많죠, 그런데 그 제약 덕분에 엄마들의 맷집이 더 강해지는 것 같아요! ㅎㅎ
    육아도, 나의 일과 꿈과 미래도, 그 맷집으로 잘 견디며 야무지게 키워나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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