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8년 차지만, 제주의 풍요로운 자연을 만끽하며 지낸 건 사실 출산 이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남편과 단둘이 보냈던 제주도 분명 아름답고 즐거웠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지난 제주살이를 떠올려보라 하면 남편에겐 미안하지만, 그와의 시간보다는 아이와 함께했던 제주의 모습들이 훨씬 다채롭고 풍요로운 기억으로 떠오른다.
제주살이, 제주 육아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기본옵션이 바로 바다다.
에메랄드빛 제주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전국에서 가장 예쁜 바다 색깔을 가지고 있는 곳이 바로 여기가 아닐까 싶은 생각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잔잔한 음악까지 틀어놓고 한량처럼 여유를 즐기고 있다 보면, 어느 때엔 정말 해외가 부럽지 않을 만큼 황홀할 지경의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제주 바다.
이런 바다에 아이를 풀어놓고 키운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혜택이다.
실제로 나는 제니(우리 딸의 영어 이름)를 돌이 지나자마자 곧바로 바다에 데리고 나갔다.
제니는 5월에 태어났는데, 이즈음 제주 바닷물은 따뜻해지기 시작할 때여서 아이를 데리고 가기 좋은 최적의 시기라고 판단했다.
아이에게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기에 여름이 되면 더 자유롭게 놀길 바라는 나의 바람대로 5월 끝자락의 바다는 제니를 두 팔 벌려 환영하듯 파도와 모래로 품어주었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에서 우리 가족이 자주 찾고, 아이와 함께 가기 좋은 바다 다섯 군데를 소개해본다.
제니의 첫 바다, 색달 해수욕장.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로 에메랄드 빛깔의 바다까진 안 되지만 날이 좋을 땐 청록색의 푸른 바다 빛깔을 볼 수 있다. 쉼 없이 철썩이는 큰 파도 소리는 그야말로 힐링 ASMR이 따로 없고, 드넓게 펼쳐진 해안선에 비치는 석양을 바라보면 힘들었던 하루도 잊힐 만큼 아름답다.
제주의 다른 바다들과 다른 점은 가파른 내리막길을 제법 한참 내려가야 해변에 닿는다는 건데, 그만큼 도로나 건물 또는 상가들과 떨어져 있고 높은 암벽으로 둘러싸여 오롯이 해변을 만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곳은 전국에서 서핑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대표적인 서핑의 성지이기도 하다.
시원시원하며 구릿빛 몸을 드러낸(?) 멋진 서퍼들이 많으므로 제주의 다른 바다와는 다른 이국적인 색다른 풍경도 한몫한다.
게다가 이곳은 다른 바다와 다르게 아이들이 모래놀이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모래 빛깔이 갈색을 띠는데, 조금만 모래를 파보면 금세 촉촉한 모래가 나와서 모래 창작물을 만들기 쉽다. 그래서 거대한 모래성을 만들거나, 모래를 파다보면 물길이 트이는 곳이 있어서 스케일이 제법 큰 모래놀이도 가능하다.
사실 모래를 밟는 것조차 싫어하는 아이가 있다고들 하고, 아이보단 엄마가 모래를 치우고 씻기는 게 힘들어서 바다에 데려가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그런데 아이가 싫어하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이가 모래를 밟는 걸 싫어하는 건 아이가 첫 모래를 접할 때 혹시 너무 뜨거운 여름날, 한참 태양에 달구어진 모래사장을 밟게 했던 건 아닌지, 모래 치우기가 너무 힘들어지는 수영복을 입힌 건 아닌지 살펴볼 필요도 있다.
제니가 처음 이곳에 갔을 때 모래사장에 앉혀뒀는데, 다행히 제니는 낯설어하는 기색도 없이 모래를 만지고 느끼고 모래사장에서 원 없이 기어 다녔다.
제니가 모래놀이하고 싶다고 할 때마다 즐겨찾는 바다가 이곳인데, 제니와 닉(제니아빠)이 아주 좋아하는 곳 중에 하나다.
우리 성인들도 첫인상이 중요하고, 첫 경험이 나중에 계속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아이들도 첫 경험이 어떠냐에 따라 모래와 바다를 좋아하는 아이가 될 수도 있고, 모래 때문에 바다를 싫어하는 아이가 될 수도 있다.
모래사장에 발 닿는 것조차도 싫어하고 바다를 싫어하는 아이가 된다면 에메랄드 빛 바다가 사방천지에 깔린 제주 여행(또는 제주살이)이 얼마나 아쉬울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제니가 아장아장 걸음마를 하던 때에 데리고 가서 물속에서 걷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경험하게 해주고, 물에 닿는 발의 촉감과 바닷물 속의 모래를 밟는 촉감을 고루고루 경험하게 도와주었던 금능 바다.
이곳은 제주에서 에메랄드 빛깔 덕분에 가장 유명한 바다 중 하나인 협재 해수욕장 바로 옆에 있는 바다이다.
보통 많은 사람이 예쁜 바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 협재로 가고, 관광객이 너무 많이 몰리기 때문에 우리는 그 옆에 있는 금능 해수욕장으로 갔다.
인지도가 높은 협재에 비해 사람이 덜 하기도 하고, 사실 이곳이 물높이가 낮아서 아이가 놀기에 최적화된 바다이다.
물이 빠지면 초록초록한 미역도 많이 볼 수 있고 모래가 하얀빛인데, 나는 개인적으론 협재보다 금능이 훨씬 예쁜 것 같다.
금능 바다는 모래사장 인근에 화장실과 손발 씻을 수 있는 수도시설이 있어서 아이들을 씻기기에도 매우 쉬워서 제주시 쪽 바다를 갈 때에는 거의 대부분 금능으로 향하는 편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물에 익숙해지고 나면, 물이 빠지는(썰물) 시간에 아이가 엉덩이나 허리까지 몸을 담그고 걸어 다니면서 물을 즐길 수 있는 프라이빗 자연 비치 풀까지 만들어지기도 하는 마법 같은 곳이라 우리 가족이 아주 애정하는 곳이다.
함덕 해수욕장은 제니에게 올해 여름에 바다 물놀이 물꼬를 틔운 곳이다.
이곳은 제주 동부지역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는 대표적인 제주 바다.
에메랄드빛부터 아주 푸른 바닷빛까지 시간에 따라 변하는 바다색이 정말 아름답다.
다른 해수욕장과는 달리 함덕 서우봉이라는 오름과 함께 있어 그 풍경이 매우 이색적이며 멋지고, 해수욕장 바로 앞에는 다양한 식당과 카페 등이 즐비한데다 다양한 플리마켓이나 실력 있는 버스킹 행사도 종종 있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핫플 중 한 곳이라 볼 수 있다.
우리집에서 정 반대 위치에 있는 곳이라 거리가 상당해서 자주 찾지는 못하지만, 근처에 산다면 아마 제일 자주 가지 않을까 싶을 만큼 좋아하는 곳이다.
특히 먹거리를 충분히 준비해가지 않았을 때도 아이와 물놀이 이후에 주변 식당이나 가게에서 먹거리가 손쉽게 해결된다는 점, 근처에서 포장해 먹기에도 쉽다는 점이 다른 바다와의 차별점이다.
우리는 함덕 해수욕장에서도 해변의 동쪽 끝부분 사람이 별로 없는 곳에서 데려가는데, 물 높이가 정말 아이에게 최상의 천연풀장이라서 널리 알리고 싶지 않은 아끼고 아끼는 곳 중에 하나다.
감히 제주의 골드코스트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아주 드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진 곳이다.
다른 해수욕장과 조금 다르게 모래가 단단한 느낌이랄까?
뛰어놀기에 참 좋은 바다다. 그리고 해 질 무렵 노을을 바라보기에도 참 아름다운 곳이다.
제주시에 볼일이 있어 올라갔다가 제니가 모래놀이 또는 공놀이가 하고 싶다고 할 때 항상 찾는 바다 중에 하나이다. 워낙 모래사장이 크다 보니 사람이 많아도 많지 않게 느껴지는 효과가 은근히 있다.
특히 축구공으로 공놀이하는 것을 좋아하는 제니에게 이곳은 안성맞춤이다.
뛰다가 넘어져도 모래 덕분에 크게 아프지 않고, 모래에 익숙한 탓에 정말 드넓은 들판에 풀어놓은 말처럼 이 해수욕장에서 마음껏 뛰어다닌다.
근래에 유료주차장이 생겨서 주차비 때문에 잘 안 가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은데, 다른 해수욕장처럼 주차하기가 어려워 빙빙 돈다거나 한참 기다리거나 할 필요 없고, 붐비지 않아 마음 편히 주차할 수 있는 게 오히려 나는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해수욕장 중 제주도 북서쪽에서 대표적인 곳이 금능, 남쪽에서 대표적인 곳이 색달이라면, 동쪽으로는 표선을 빼놓을 수 없다.
표선 해수욕장 역시 에메랄드빛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 곳 중의 하나로 서귀포에서 가장, 아니 사실은 유일하게 아름다운 바다 빛깔을 가진 바다이다.
바다의 빛이란 게 사실 주관적이지만 에메랄드 빛의 바다는 대부분 제주시 북쪽에 분포되어 있고, 남쪽인 서귀포시에는 청록색이나 짙은 바닷빛이라 보통 제주를 떠올리는 바다색과는 거리가 있는 편이지만, 그 중에 유일한 에메랄드빛은 바로 표선이란 거다.
사실 도민들에게 제주의 동쪽은 실제로 거리도 멀고, 표선은 가장 외진 곳으로 인식하여 심리적으로도 아주 멀게 느끼기 때문에 잘 가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표선에서는 가장 한가로운 바다 즐기기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씩 찾아갈 때면 먼 거리의 수고로움이 잊힐 만큼 생각보다 아주 만족스러운 곳이다.
일단 정말 끝도 없이 펼쳐진 바다와 아주 긴 모래사장의 규모가 대단하다.
물이 빠지고 나면 그 자리에 500여 미터의 어마어마한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바닷물이 빠진 시간에 찾는다면 바닷물을 만나러 한참을 들어가야 한다는 단점이 있을 만큼 규모가 크다.
물 높이도 성인의 무릎 정도로 아이들이 놀기에 아주 적당하고 바닥에 돌이 아닌 고운 모래가 깔린 바다라 미끄러지거나 발바닥이 아픈 걱정을 덜 수 있다.
다만 바닷물 속 모래의 깊이가 제법 깊어 푹푹 발이 빠지는 모래라 오래 걷기엔 힘이 들 수 있지만, 그만큼 물이 빠진 뒤 모래놀이에는 제격이기도 하다.
🏖️
소개한 제주 바다를 통해 바다를 좀 더 사랑하고, 바다를 시작으로 자연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이 키워지는 아이들이 되길 바란다.
제니와 나는 종종 바다에서 플로깅하고, 그 바다 쓰레기를 업사이클링하는 비치코밍도 즐겨한다. 마침 제주에선 비치 플로깅이 많이 확산하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바다에서 놀이뿐만 아니라, 플로깅도 접해봄으로써 아이들이 환경과 기후 위기에 대한 의식의 씨앗을 마음에 심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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