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제주시소통협력센터에서 진행하는 ‘열린 모임’ 지원사업에 지원해 1월 한 달간 <워킹맘 비즈니스 트립>이라는 제주 여행 프로그램을 기획 및 운영했다.
그때 난 제주맘의 자기 계발을 주제로 하는 네이버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평소에 ‘일’, ‘워킹맘’, ‘여행’, ‘비즈니스’ 등의 키워드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지원사업의 주제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정했다.
워킹맘이라는 키워드는 ‘힘겨움+피곤함+견딤’ 혹은 ‘경력 단절+육아’ 등의 이미지와 함께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워킹맘의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는 말이기는 하지만, 나는 언제나 ‘그저 견디면서 힘겹게 일하는 엄마’보다 ‘자기 일을 사랑하면서 더 행복하게 일하는 엄마’이고 싶었다. 워킹맘이 안으로는 자신의 비즈니스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밖으로는 좋은 자극을 받아 함께 성장했으면 했다. 그러면 일도 즐겁게, 인생은 더 즐겁게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제주는 ‘비즈니스 인사이트 + 여행’을 함께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자신의 인생과 일을 잘 버무려서 살고 싶어 이주한 사람들이 많고, 그런 사람들이 운영하는 인사이트풀한 공간도 많으며, 이런 공간의 주위는 다 아름다운 바다고 오름이고 그렇다. 그러니 이런 환상의 섬 제주에서 핫플만 찾아 다니며 음식 사진, 꽃 사진, 바다 사진만 찍는 흔해 빠진 여행에서 벗어나 일과 쉼, 그리고 비즈니스 인사이트까지 얻는 여행을 한다면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더 큰 활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화에서는 <워킹맘 비즈니스 트립> 때 기획했던 여행 일정 중에서 몇 개를 추려 <뚜벅이라서 더 좋은 제주 원도심 워케이션>을 구성해 보았다. 흔히 제주 하면 차 없으면 이동이 힘들다고 생각하는데 걸어서도 여행이 가능한 곳이 바로 원도심이다. 제주의 옛 시내 중심가를 구제주 혹은 원도심이라고 하는데, 최근에 이곳이 갈수록 핫해지고 있다. 이곳에 가면 뷰 좋은 곳에서 커피 마시고 밥 먹는 거 말고 좀 더 특별한 제주 여행을 할 수 있다. 천천히 걸어서 여행하는 제주, 관광지와 거주지의 특징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곳, 그래서 잠깐이라도 제주에 살아보는 듯한 느낌의 여행이 여기서는 가능하다!
➡ 탠저린 맨션 카페성지(카페인 수혈 & 포토존) ➡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감성과 오감 충전) ➡ 디앤디파트먼트 제주(로컬 상품의 진수) ➡ 미친부엌(맛도리 중의 맛도리) ➡ 산지천(밤 산책) ➡ 고요산책(스테이 & 북라운지) |
➡ 탠저린 맨션 카페성지(카페인 수혈 & 포토존)
탠저린 맨션은 예술 작품 속에 머무는 즐거움을 주는 아트 스테이 문화공간이다.
제주목 관아에 위치한 정자 귤림당에서 영감을 얻어 탠저린 맨션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다고 한다.
1층은 컬쳐 스테이션으로 패션 & 라이프 스타일을 담은 독특한 아이템 편집숍과 건강한 먹거리 브랜드 카카오패밀리가 입점했다.
2층은 커뮤니티 라운지인 하이드 아웃인데 릿 브레드(베이커리 & 브런치 카페), 카페성지, 그로 라운지(와인 그로서리샵), 미디어 라운지(강연/공연 커뮤니티 공간)로 구성되어 있다.
말 그대로 제주 복합문화공간이다. 서울이나 다른 대도시에는 워낙 이런 복합문화공간이 많지만 제주에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제주까지 와서 무슨 복합문화공간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제주의 복합문화공간은 또 그만의 매력이 있다.
손님이 직접 고른 원두를 분쇄해서 시향하게 하고 정성껏 내린 드립 커피를 설명 카드와 함께 내어주는 곳.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정성을 다하는 서비스가 천천히 걷는 제주 여행의 시작과 어울린다. 탠저린 맨션의 맞은편에는 관덕정이 자리 잡고 있는데, 관덕정은 옛 제주를 다스리던 목사가 거주하며 일하던 곳이다. 카페성지의 큰 통창으로 관덕정이 훤히 내려다보여서 이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는 사람들이 많다. 푸른 기와를 얹은 관덕정과 카페성지 천장에 매달린 화려한 샹들리에가 한 프레임 안에서 무척 우아한 느낌을 자아낸다. 제주의 창밖 배경이라고 하면 으레 바다 아니면 귤밭을 떠올리기 쉬운데, 나름 제주의 이색 포토존이다. 여행 일정이 허락한다면 카페성지를 나와 관덕정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옛 제주 목사가 제주를 어떻게 다스렸는지도 알아보고 여러 문화프로그램에도 참여해 보면 여행에 더 큰 재미를 줄 것이다.
➡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감성과 오감 충전)
커피로 가볍게 몸과 마음을 깨웠으면 이제 본격적으로 감성 사냥을 하러 갈 차례다. 그동안 정신없이 일하며 가족까지 돌보느라 미처 돌보지 못했던 내 감성, 이제 찾으러 가볼까나.
아라리오뮤지엄 탑동시네마.
국내 최고의 미술품 컬렉터 (주)아라리오 김창일 회장의 뮤지엄 프로젝트 중 하나로 2005년에 폐관된 시네마극장을 영화라는 추억에 미술을 담아 뮤지엄으로 재탄생시킨 곳이다.
애들 데리고 박물관과 전시회 여기저기 안 다닌 곳이 없지만, 나 혼자 이렇게 예술 작품 앞에 조용히 서서 감상했던 적이 거의 없다. 이 고요함이 너무 어색하지만, 저쪽 구석 어디에선가 우리 애가 “엄마!” 하며 와다다다 뛰어올 것 같아서 긴장되지만, 그래도 왠지 입꼬리가 씰룩대며 기분 좋은 웃음이 흘러나온다. 이 순간 나는 엄마, 아내, 직업인에서 벗어나서 소싯적의 자연인이었던 나로 돌아간다. 우리에게 이보다 더 귀한 재생의 시간이 있을까.
예술을 잘 알지 못해도 혼자 천천히, 여유롭게 작품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너무 예술적이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주위 눈치 보며 조용히 시켜야 하는 아이도, 내키지 않아도 시간 맞춰 같이 이동해야 하는 다른 일행도 없다. 좋으면 좋은 대로, 이해가 가지 않으면 가지 않는 대로 그냥 즐기면 되는 시간.
잘 몰라도 그냥 막 좋은 시간. 말랑말랑해진 마음으로 그동안 잊고 지냈던 나 자신을 만나고 나면 왠지 새로 태어난 기분이 든다.
tip+) 제주 아라리오 뮤지엄은 총 세 곳이다.
탑동시네마에서 도보 15분 거리에 아라리오뮤지엄 동문모텔 1과 2가 있다. 탑동시네마에서 티켓팅할 때 함께 티켓팅할 수도 있고, 직접 가서 따로 할 수도 있으니 참고하시길.
➡ 디앤디파트먼트 제주(로컬 상품의 진수)
아라리오 탑동시네마 바로 옆 건물이다.
롱 라이프 디자인의 가치를 지닌 상품을 찾아내 적극적으로 소개하는 디앤디파트먼트는 일본의 유명한 편집숍이다. 제주의 디앤디파트먼트는 (주)아라리오가 일본 건축가 나가오카 겐메이와 협업해 탄생했다.
디앤디파트먼트는 시간이 증명한 디자인, 생명이 긴 디자인, 즉 롱 라이프 디자인의 가치를 지닌 상품을 찾아내 소개하고 상품, 음식, 출판, 관광을 통해 ‘지역다움’을 새롭게 바라보는 활동을 추구하는 곳이다.
그래서 1층은 제주 로컬 식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식당이다. 음식 맛이 괜찮다고 입소문이 꽤 나 있다. 특히 공항에 가기 전에 여기서 조식을 먹는 여행객들이 많다고 한다. 2층은 디앤디파트먼트의 디자인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제주 상품들이 가득한 스토어다. 제주에는 많은 소품숍이 있지만, 디앤디파트먼트의 상품에는 각각의 스토리가 있다. 롱 라이프 디자인의 관점에서 풀어낸 제주 로컬의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장바구니 가득 물건을 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실생활에 유용한 상품들이 많아서 좋았고, 그중에서 친환경세제가 특히 좋았다.
스토어 위층은 디앤디파트먼트의 상품을 인테리어 소품으로 배치해 쇼룸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숙소 ‘D룸’이다. 다음 원도심 걷기 여행에서 꼭 혼자 조용히 묵어보고 싶은 곳이다.
➡ 미친부엌(맛도리 중의 맛도리)
늦은 오후 5시 반. 땡! 하고 오픈런으로 입장해도 금세 위아래층이 손님으로 가득해지는 곳.
일 마치고 삼삼오오 술을 곁들인 저녁을 먹으러 온 도민들도 많고, 미친부엌의 유명세를 듣고 찾아온 관광객도 많다. 자리 잡기가 힘들다고 해서 진짜 오픈런으로 들어갔는데 순식간에 자리가 가득 차서 우와, 하고 손뼉을 쳤던 곳이다. 다양한 식사와 안주 메뉴가 있는데, 정말 하나같이 다 맛있다. 적당히 어두운 조명에, 남이 차려준 너무 맛있는 밥상에, 알딸딸하게 술 한잔까지. 크, 이게 여행의 맛이지! 하는 말이 절로 흘러나온다. 발그레해진 얼굴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곳.
➡ 산지천(밤 산책)
기분 좋게 배를 채웠으면 소화도 시킬 겸 밤 산책을 나서보자. 제주는 밤에 즐길 거리가 별로 없다. 시내 중심가를 제외한 읍면 지역의 가게들은 대부분 문을 일찍 닫고 자연 풍광 역시 네온사인 간판을 달고 있는 게 아니니 암흑천지인 곳이 많다. 그런 제주에서 산지천은 드물게 밤 산책을 할 수 있어 고마운 곳.
산지천은 제주에서 유명한 전통시장인 동문시장 입구 맞은편에 흐르는 하천이다. 하천을 따라 산책로와 공원, 음악 분수대가 조성되어 있고 다양한 문화행사와 공연이 자주 펼쳐진다. 행사 일정에 맞춰서 가도 좋지만, 동문시장이나 주변 원도심 관광지를 들렀다가 잠깐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다.
➡ 고요산책(스테이 & 북라운지)
제주 자연과 마을 여행 콘텐츠를 발굴하여 관광객, 주민, 여행지 모두가 행복한 공정여행을 만드는 (주)착한여행이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원도심에서 숙박을 한다면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을 정도로 개인적으로도 아주 좋아하는 공간이다.
고요 스테이는 따뜻함과 편안함이 느껴지는 감각적인 인테리어가 훌륭하고, 1층 북 라운지인 고요산책은 책을 읽고 일을 하거나, 혹은 다른 무언가에 집중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낮에는 일반 방문객이 시간제 요금으로 사용할 수 있고 투숙객은 24시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북 라운지다.
북 라운지의 묘미는 다름 아닌 새벽 시간이다.
새벽에 일어나 아무도 없는 북 라운지에서 커피 한 잔 내려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 숨어있던 내 안의 감성이 마구 살아난다.
아침이 밝아오면서 점점 환해지는 창밖을 보며 내 마음에 착붙하는 책들과 문장으로 채워가는 시간. 새벽의 고요는 정말이지 완벽하다.
뚜벅이라서 더 좋은 제주 원도심 워케이션 코스, 혼자 혹은 마음 맞는 친구 몇 명이 색다른 느낌의 제주 여행을 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서두에서 밝혔듯이 이 코스로 워킹맘 비즈니스 트립을 했을 때 참가자들의 후기가 매우 좋았다. 걸어서 하는 제주 여행이 아주 신선했고, 잠시나마 자신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누린 것 같아서 행복했다고 했다.
살면서 갈수록 가슴에 와닿는 것이 있는데, 바로 뭐든 직접 느낀 것만 오롯이 내 것이 된다는 사실이다. 일하고 아이 키우며 사는 게 바빠서 정작 나 자신은 오감을 잃은 채로 살기가 쉬운데 일상을 벗어나서 여행할 때 그 오감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 내 인생을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보고 느낀 것들로 채워나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정말로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건 그런 거니까.
그러니까 1박 2일이든 반나절이든 한나절이든, 나를 위한 워케이션은 반드시 하는 걸로.
💊 박영미 앰버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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