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진짜 모습을 보여줘!

36개월 감정의 결이 다양해지는 시기

우리 아이의 바른 화풀이를 위한 놀이를 함께 해 봤어요.


본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화를 적절히 조절하며, 타인의 감정을 수용하고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아마 세계 4대 성인의 뒤를 이을 자리에 자신의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감정이라는 영역은 미지의 세계 같다.

시간의 흐름은 모든 사람을 표면상 어른으로 만들지만 불행하게도 생물학적 성장이 곧 인격의 진일보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나에게도 어려운 감정의 영역에 대해 마치 잘 아는 척하기를 포기해보았다. 나도 아이와 함께 4세로 돌아가서 후들거리는 어설픈 손으로 ‘기억’부터 ‘이응’까지 삐뚤삐뚤 함께 써내려 가보고자 했다.

‘화’란 무엇일까? 대체 어디서 올까? 도대체가 어떤 것이기에 저 4세 아이의 자그마한 가슴에서 화산 폭발음과 찢어지는 벼락 소리가 터져 나오게 하는 것일까? 본인이 왜 화가 나는지도 모르는 상태도 답답한 파열음만 내는 저 속은 얼마나 아수라장일까.

역시나 우리아이의 성장과정에서 가장 어려워했던 부분은 감정이다. 그중에서도 화, 짜증, 분노 라는 감정을 마주했을 때이다.

나의 어릴 적을 생각해보면, 아이는 부모에게 혼나는 것(지금 생각하면 분노였던 것 같다)이 당연했고, 아이의 감정에 대한 존중이 오늘날에 비해 미약했던 것 같다.

아이는 36개월이 지나면서 이전보다 또렷한 감정들을 쏟아 냈다.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내고자 하는 의지와 호기심,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하는 신체 조작 능력 사이의 간극은 특히 화, 짜증, 분노 등으로 표출되곤 했다. 엄마도 사람인지라 ‘소중한 내 아이니까 참고 기다려줘야지’라는 다짐만으로는 참기 힘든 순간들이 있었다. 어떻게 하면 화를 예쁘게(?) 낼 수 있는지, 본인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줄 필요가 있었다.

아이는 노는 것을 좋아한다. 놀이를 통해 규칙을 배우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키운다. 따라서 놀이와 대화를 통해 아이가 본인의 감정에 대해 말하는 습관을 들이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아이가 본인의 감정을 관조하게 된다면 그것은 참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했다.

특히 아이가 가장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감정인 ‘화’를 놀이로 풀어보았다.

📌 1.  필요한 것

색연필, 스케치북, 거울, 종이 상자

📌 2.  놀이 방법

Step1. 화 들여다보기

놀이에 앞서 아이와 ‘화’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아이가 내뿜는 감정에 모양과 색깔을 부여하여 ‘화’에 대한 관심을 높여보았다.

나는 아이가 짜증내고 화내는 목소리를 ‘까만소리’ 라고 이름 지어 주었다. 그리고 까만소리를 할 때의 기분을 삐죽삐죽한 기분이라고 이야기 해줬다.

삐죽삐죽한 기분이란, 재미있는 놀이를 할 때와는 전혀 다른 기분이다.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잔뜩 생기는 기분이다. 엄마아빠의 말을 들어주고 싶지 않고, 마구마구 소리를 지르고 싶고, 약속을 하지도 지키고 싶지도 않은 기분이다. 이유 없이 눈물이 나오기도 하고, 싫다는 말만 하고 싶은 기분일 수도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Step2. 화 괴물 소환하기

거울이나 휴대전화 카메라를 보면서 화난 표정을 지어본다. ‘화가 난 나의 표정은 이렇게 생겼구나.’ ‘화가 났을 때 내 모습을 이렇게 무섭구나.’를 생각해본다.

내 기분이 뾰족뾰족할 때의 모습을 떠올리며 아이와 함께 화 괴물의 그려본다. 색깔과 표정을 함께 그려 넣는다. 자못 기괴하고 우둘투둘하며 심술이 가득한 존재가 나타난다.

도화지에 꺼내 진 화괴물을 보고 어떻게 하면 뾰족뾰족한 화괴물의 마음을 달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본다.

‘화 괴물이 너무 화가 난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마음을 풀 수 있을까?’

엄마의 물음에 잠시 고민하던 아이는 ‘안아주면 좋겠어’라고 대답한다. 아이는 본인이 화가 났을 때 엄마가 꼬옥 안아주면 기분이 조금 나아진다고 한다.

아이는 그림 속 화 괴물을 꼬옥 안고 쓰다듬어 주었다. 그 다음으로는 조금 온화해진 화 괴물의 모습을 다시금 그려본다.

‘화괴물이 아가가 된 것 같아!’ 아이는 본인의 포옹에 의해 나타난 변화를 살피며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화 괴물의 화를 더욱 잠잠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방법들을 이야기해본다.

‘화괴물아 심호흡을 해봐. 나처럼! 흐읍- 후-‘

심호흡을 하면 마음이 정돈되고 편안해진다는 사실을 벌써 아는 것 같아서 기특했다.

그리고 한층 행복해진 표정을 짓는 토끼(화 괴물의 본 모습은 사실 토끼였다)를 그렸다.

‘우리 OO이가 알려준 방법대로 했더니 화 괴물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네? 어? 이 친구 누군지아니?’

아이는 ‘토끼!’라고 대답하며 신나했다.

어떤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라도 방향성을 잃고 분출하는 분노에 휩싸여 있을 때에는 무시무시해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Step3. 편지 쓰기

아이와 함께 화 괴물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보았다.

혹시 화 괴물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지를 묻고 해당하는 내용을 함께 편지지에 적어 본다.

‘화 괴물아! 화가 날 때는 잠깐 멈춰줘. 그리고 잠시 심호흡을 하고 기분 좋은 생각을 해보렴! 힘들다면 엄마나 아빠에게 안아달라고 이야기하면 언제든 안아주실거야. 네 원래 모습은 아주 귀엽고 예뻤어.’

편지를 곱게 접어서 종이상자를 우편함 삼아 아이와 함께 부쳐본다.

그리고 그날 저녁, 미리 준비한 답장을 종이상자에 넣어두었다.

아이에게 화 괴물이 보낸 답장이 왔다며 호들갑스럽게 이야기한다. 아이는 하던 일을 멈추고 본인에게 돌아온 답장을 보기 위해 달려왔다.

‘안녕 OO아? 화가 무지무지 많이 나는 날이었는데 네가 알려준 방법대로 심호흡을 하고 엄마, 아빠에게 안아달라고 했더니 마음이 편해졌어! 내 원래 모습을 예쁘다 말해주어서 정말 고마워!’

편지의 내용을 들으며 본인이 화 괴물을 도와주었다고 신나하던 아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후에도 아이와 감정에 대해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독서를 하며 아이는 본인의 불편함을 엄마와 아빠가 이해할 수 있는 말들로 설명해주는 습관을 키워갔다. 아이는 이따금씩 놀라운 방식으로 엄마와 아빠를 위로해주는 귀한 인격체로 성장해 있었다.

🎁 아이가 43개월이 되던 2021년 12월의 이야기이다.

나의 외할머니가 소천하셔서 아이와 함께 급하게 장례식장에 가게 되었다. 장례식장의 분위기를 처음 느낄 아이와 조카들이 걱정스러웠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큰조카는 왕할머니께 드릴 편지를 쓰고 왕할머니를 위한 노래를 불렀고 우리 아이는 그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어른들의 시각으로 아이들을 제지하고자 했으나 아이들의 대답은 어른들의 마음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왕할머니는 우리가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것을 좋아하셨어요. 아마 왕할머니가 보고 계시면 엄청 예뻐해주실걸요?’

아이들이 지닌 순수한 마음을 어른들이 만든 정성과 형식을 초월하는 힘이 있다.

급한 일을 처리하고 뒤늦게 장례식장에 온 남편이 저녁 시간에 아이를 돌보고 있었다. 아이들이 뛰고 소리를 지르는 상황이 불편했는지 남편이 아이를 붙잡고 ‘OO이가 아빠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서 속상하다. 뛰면 위험하고 다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자 아이도 ‘나도 화가 나요. 아빠가 이상하게 자꾸만 화를 내서요!’라고 응수했다.

아이에 대한 걱정보다 본인의 예민함이 먼저 튀어나와 아이를 다그쳤다는 점에 아차 싶었던 남편이 아이에게 사과하였다. 마음과 다르게 무섭게 화를 낸 것에 대한 사과였다. 그러자 아이가 이야기했다.

‘아빠, 우리 화를 버려요.’

‘화를 버릴 수 있어? 어디에 버려야 할까?’

‘아빠, 화는 일반쓰레기통에 버려야해요. 절대 재활용하면 안되거든요.’

생각하지도 못했던 말에 남편은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는 아이가 했던 이야기를 전해주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리가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아이에게 배우는 것이 더 크다는 사실을 깨달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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