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나’를 알고 싶어 선택했던 미술 상담 특별활동을 시작으로 내 인생은 ‘심리학’으로 가득했다.
심리학과에 진학한 후 ADHD 아동 교육봉사활동에 학교 밖 청소년 상담, 상담교사 교생실습 등 심리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을 돕는 삶을 살았다.
‘상담’에 매력을 느껴 대학원에 진학해서 상담전공자가 되었고 전공을 살린 직업을 가진 이후에는 나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인생을 위로하는 사람으로 사는 게 더 익숙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연애하고 직업을 갖는 등 인생의 여러 발달 과업을 지나오며 막연히 언젠가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져 ‘육아’를 하는 ‘엄마’의 삶을 살게 될 거라는 생각은 종종 했다.
하지만 몇 번의 이별을 경험하며 하나둘 나이만 먹게 되면서 좋은 아내 좋은 엄마로 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 했을 뿐 단 한 번도 엄마가 되었을 때의 내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사람 마음’에 대해 10년이 넘게 공부해 왔음에도 엄마가 되는 과정에서 나 스스로의 마음은 다루지 못했고 치료하는 사람의 위치에만 있다가 ‘산전 우울증’을 겪게 되면서 임신과 출산까지 너무 어둡고 힘든 시기를 보냈다.
지금은 벌써 아이가 9개월이 되었고 나는 돌잔치를 준비하는 엄마가 되었다.
산전 우울증으로 매일 아침 눈뜨는 것이 무서웠던 모습이 이제는 어색할 정도로 많이 밝아졌고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다.
산전 우울증을 겪으며 일어난 사건들로 인한 상처는 남아있지만 내가 한 행동들에 대해 책임지는 제법 의젓한 모습도 생기면서 누군가에게 다시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괴롭고 힘든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그때의 나를 마주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의 경험이 한 명의 엄마에게라도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내 산전 우울증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여느 날과 똑같이 회사에 출근해서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켰다.
오늘 업무를 정리하려 화면을 보는데 속이 울렁거렸다. 최근에 일이 많기도 했고 승진 준비에 11월 들어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몸이 안 좋을 때가 된 것 같았다.
울렁거림을 참으려 고개를 젖히고 눈을 감고 잠시 쉬려는데 참을 수 없는 구토감이 올라왔다.
최대한 티 내지 않고 화장실로 뛰어가 변기를 붙잡고 아침에 먹은 것들을 확인하면서 ‘아 이맘때면 늘 장염으로 고생했었지.’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참아보려 했지만 자꾸만 속이 울렁거려서 부서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내과로 향했다. 내과에서도 내 증상을 듣더니 장염인 것 같다며 약을 처방해 주었다.
아무래도 집에 가서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계장님께 전화로 병가를 낸 다음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는데 ‘이번 달 생리할 때가 지나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번뜩 스치고 지나갔다.
혹시나 정말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 본 임신테스트기에 선명한 두 줄이 나온 것을 보고 심장이 바닥으로 쿵 내려앉는 기분과 함께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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