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
문센에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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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센에서 생긴 일

집에서만 있어야 하는 길고 긴 시간을 지나, 어느 정도 아이가 커 주자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겼다.

합법적이자 공식적인 외출.

일명 문화센터. 즉, 문센이다.

수업이라 하지만 아이들의 오감을 자극해 줄 수 있는 최고의 놀이터이자, 엄마들이 와글바글 모여 많은 것을 공유하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 아가가 4개월이 되었을 무렵부터
아이의 오감 발달을 위해 관련 강좌를 선택하여 문화센터를 다니게 되었다.

사실 친목질 하나는 자신 있었던 나는 코시국에 조동* 하나 없는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문센을 다니기 한참 전부터 불타오르는 전의를 다지고 있었더랬다. 

(*조동: 조리원 동기)

*

막상 첫 수업에 참석하니, 뭐랄까.
다들 한걸음 뒤로 물러나 있는 기분이랄까.

아무래도 혼자 온 엄마들이 많으니 어색한 공기가 흐를 수밖에 없겠지…
그래도 시작하면 나아지겠지… 생각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수업이 시작되자
더 어색해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집에서 아이와 함께 놀아줄 때는 체조를 하든 박살 내며 놀든 온 힘을 다해서 놀아주었는데, 무슨 일인지 문센선생님이 시키는 아기 체조, 아기 놀이, 집중훈련, 촉감놀이 등을 짧은 시간에 따라하려고 하니 몸치도 아닌데 뚝딱거렸다. 

다행히 나만 그런 건 아니였나보다.

참석한 엄마들의 행동이 비슷했는지 문센선생님은 “나와 내 아이가 함께 노는 것만 기억하고 행동해주세요.”라고 중간중간 끊임없이 공지해주셨다.

그런 상황에서도 내 나름대로는 하이에나처럼 틈을 노렸다가 엄마들 마음으로 비집고 들어가려고 했다.

아마도 거기 있는 모든 엄마가 똑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삼삼오오 모여서 온 엄마들이야 누구와 친해지든 그렇지 않던 간에 속한 무리가 있으므로 아무렇지 않았겠지만, 혼자 온 엄마는 혼자 온 엄마들끼리 내가 속할 무리를 만들어 다음 시간에는 인사하고 안부를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을 것이다.

더욱이 조동 하나 없는 이 시국에 외로이 하는 육아를 탈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처럼…

**

타고난 건지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낯선 곳에 가서 모르는 사람들이 득실거려도 말 걸기 하난 자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혼자 온 엄마들 중 조용해 보이는 엄마 한 명을 타깃으로 정해 다가갔다.

처음에는 댕그란 눈을 하고 당황해했지만,
곧 질문에 곧잘 대답해 주었다.

“우와 아가 몇 개월이에요?
혼자 앉아 있는 거 너무 신기해요!”

“이제 5개월이요.”

“세상에! 5개월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요렇게 앉아요?
엄청 빠른 거다~ 와, 대박”

“아? 그런가요?
이정도야~ 이제 기본이죠.
아기 몇개월이에요?”

“이제 막 4개월이 되었어요!
4개월도 받는다길래 집콕하기 싫어서 얼른 등록했어요! 산책은 같이 다니는데도 집에 있는 시간이 더 길다 보니 너무 힘들어하는 거 같더라구요!
저 혼자 오는데, 우리 친하게 지내요~!”

“좋아요!
안 그래도 혼자 뭔가 뻘쭘했거든요.
특히, 체조할 때요. 하하”

아이 칭찬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고,
그녀와의 첫 만남이 성사되었다.

그날 저녁, 남편에게 랜선 동지 아니고
이제 실물 육아 동지 생겼다며 애처럼 들떠서 자랑했다. 

***

그로부터 5주나 흘렀고 수업을 벌써 5번이나 들었을 때였다.
오감 수업 때문에 그리고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서 아이의 발달은 점점 순탄하게 진행되기 시작했다(우리 아가는 새로운 자극을 제대로 받았는지 문센 수업 2번 정도 나갔을 때부터는 혼자 앉을 수도 있었다).

시간이 흐른 만큼 나는 첫 만남에 이어 여러 만남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문센에 다니는 모든 엄마 하고 안부와 인사를 나눌 정도는 되었다.

그래도 이상하게…
첫 번째가 뭐라고 유난히 신경 쓰이고 챙기고 싶었다.
항상 그녀 옆자리에 앉았고, 아이 칭찬도 빼놓지 않고 했다.

그때까지 문센에 가는 날이
아이도 좋고 나도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매번 이런 기분으로 신나게 다니고 있었다.

나와 아이는 사람을 만나 에너지를 충전하는 파워E였으니 더 즐거웠다.

****

하루는 아이가 낮잠을 한번 더 자고 싶어 했는데, 결국 그날은 지각하게 되었다.

10분 늦게 도착한 문화센터.
좋은 자리는 이미 가득 찼고 당연히 그녀의 옆자리도 쟁취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각했다고 해도
그녀의 옆자리가 아니여도
여전히 문센은 나와 아이에게 즐거운 놀이터였고, 그날따라 유난히 수업이 너무 신났다.

그날 문센수업 코스튬 옷이 너무 예뻐서 촉감놀이를 하다가 친해진 우리 아이의 친구들을 모아 놓고 사진도 찍고 놀기도 했다.

수업이 끝나고 정리해서 나오니 엘리베이터 앞에 그녀가 서 있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옆으로 다가가 아는 체를 했다.

“안녕하세요! 안녕~!
오늘은 늦었더니 옆자리에 못 앉았네요!
근데 오늘은 뭔가 엄마들이 더 재밌는 수업 아니였어요? 헤헤”

“네!”

“아구아구 오늘 우리 아가 예쁘게 하고 왔네요!”

“그렇죠? 근데요~”

“네?”

“저희 아가 발달 왜 이리 빠른 거죠?”

“네?”

순간 나를 당황하게 하는 질문이었다.
뜬금없이? 맥락도 없고 앞뒤도 없이, 그런데 꼭 답이 정해져 있는 것 같은 질문.

아니, 빠르면 빠른거지. 무슨 의도를 가지고 물어보는 건지 도대체 왜 이러나 싶었다. 

“아니~ 원래 개월 수에 맞춰서 발달해야 하는데, 우리 아가는 너무 빠른 거 같아요.
근데 이것도 은근히 걱정이라…….”

정말…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당황했다.

사회생활 하면서 온갖 또라이는 다 만났고 대응하는 방법도 너무 잘 알고 있었는데…

이건 무슨 신개념 빌런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자꾸 말이 어버버하게 되면서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속으로는 ‘하, 뭐 이런 애가 다 있나’ 싶었지만, 눈빛에서 칭찬해주길 바라는 거 같아 그냥 대충 웃고 넘어가자 싶었다.

그래서 그냥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 했다. 

“이제 6개월 넘어가는데 벌써부터 배밀이하고~ 진짜 미치겠어요.”

“빠르면 좋은 거 아닌가요?”

“그래도 애들이 천천히 커 주고 그러면 얼마나 좋아요.
슬비씨 애기는 천천히 커서 보는 맛도 있고 좋겠어요~”

응? 갑자기?

신박한 개소리를 이렇게 눈 한번 깜빡이듯 쉽게 하는 게 1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날 욕하는 건 상관없는데, 왜 갑자기 내 새끼를 끌어들여서 욕하는 건지

가슴 속에서 욱하고, 성질이 파도처럼 밀려 올라왔다.

지금, 본인 아가 자랑하려고 내 새끼를 깔아뭉개는 것 같은데…

이걸 그냥 보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어 열받고 짜증나기 시작했다.

그 짧은 순간,
오만가지 나쁜 생각이 펼쳐져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나는 기본적으로 타인과 친목하고 얘기하는 것을 너무 좋아하지만,
언쟁할 일이 생겨서 싸울 때는 절대 지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다보니 그때부터 들리는 모든 말이 예민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언제부터 사람 말이 송곳이었지?!

조금 더 가까운 사이였거나, 아이 때문에 만난 사이가 아니라면 벌써 따져 묻고도 남았겠지만, 그러지 못하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말로라도 조지고 싶은데…
마음대로 못하고 가만히 듣고만 있으려니 성격상 미치고 환장해서 팔짝 뛰고 싶었다.

원래 내 성격대로면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대응해야 하지만, 그러다가 진짜 말릴 수 없는 싸움으로 번질 거 같아서 꾹 참고 TMI로 대응했다. 

“근데 배밀이*는 우리 애도 해요.
이쯤 되면 배밀이는 기본 아닌가요?”

“네? 에이,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죠.”

“보지도 않고 왜 그런 말씀을 하시죠?”

그녀가 웃으면서 말하길래 날카롭게 말을 쳐냈다.

(*배밀이: 배를 바닥에 대고 기어가는 일)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그녀.
눈길 하나 안주고 그대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아무 말 하지 않고 화를 삭이며 앞만 보고 있는데, 그녀가 굳이 말을 건냈다.

“기분이 안 좋으신가 보네.”

“아뇨. 그냥요. 애기 우네요.
기저귀라도 갈고 오시던가요~
먼저 갑니다.”

그렇게 대꾸하며 그 넓은 엘리베이터 옆자리를 절대 내어주지 않았다.

자기 자랑을 하든 애기 자랑을 하든 별로 상관없었다.

그런 사람들이야 뭐, 그럴 수 있지… 평소에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 엄마는 뭐에 뿔이 난 건지, 원래 못돼 처먹은 건지.
정말 말도 안되는 짓을 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옆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단 한 번도 우리 아이에게 칭찬해주지 않았던 게 떠올랐다.

아우 열불나. 열통터져!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내내 우리 아기가 더러운 말을 들은 거 같아서 귀를 탈탈 털어주었다.
해맑은 내 새끼는 이것도 놀이인 줄 알고 방긋 웃는 걸 보니 마그마 같은 내 마음이 순간 빙수처럼 사르르 녹았지만, 너무 속상했다. 

*****

집에 돌아와서, 아기를 재우고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하소연했다.

또라이를 훌훌 쉽게 털어 버리고 싶을 때는 이 방법만 한 게 없다. 

“야, 별 또라이다. 빠르면 좋은 거지 무슨~ 하여간 자랑질은 어휴.”

“내 말이~ 하, 매주 봐야되는데 넘나 싫은 것. 눈인사나 해야지.”

“눈인사는 무슨 눈인사야. 멍충아.
너는 거기서 연애하냐?
됐다. 그냥 쌩까라.”

맞다. 우리 아이까지 들먹이며 그랬는데, 내가 굳이 사정 봐줄 이유는 없지.

나는 그 다음주부터 바로 그 엄마를 모른 체 했다.
말을 걸어오면 대충 넘기듯 대답하고
우리 아이와 다른 엄마들과 신나게 놀았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멀어지게 되었다.

진짜 좋은 사람들도 많은데,
내가 굳이 이런 사람을 옆에 두고 상처받을 필요도 없다.

더군다나 내 아이의 친구 엄마가 이런 사람이라면 언젠간 내 아이에게 또다시 상처 줄게 뻔하니 어서어서 쳐내버리는 게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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