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여유
휴직이 너무 길었던 탓일까요? 생각보다 적응이 힘들었어요.
출근과 동시에 한나절이 휙, 수업과 계속되는 수행 평가와 채점, 계속 깜박대는 업무 메시지만 처리해도 정신 없었죠.
부장 교사라는 보직까지 맡았어요. 인성교육, 인문학, 학부모회, 학생 봉사, 다문화, 세계시민, 대토론회, 분리수거까지 업무와 처리할 공문이 매일 쌓였죠.
공문서와 교과서를 챙겨서 퇴근했고, 업무 파악과 수업 준비를 하느라 한 학기는 집안일과 육아는 뒷전이었어요. 워라밸을 지키며 살겠다는 바람은 절대적인 시간 부족으로 자주 좌절이 됐죠. 다 나은 줄 알았던 포도막염도 가볍게 두 차례 앓았고요.
그렇게 한 학기를 이 악물고 버텼습니다.
아이들도 힘들었겠죠. 둘째가 막대에 눈에 찔리는 사고가 났어요. 다행히 눈동자와 시신경은 비켜갔지만 그 순간 너무나 아찔했죠.
아이는 새빨간 눈과 누런 콧물, 덥수룩한 머리로 엄마가 워킹맘인 티를 팍팍 냈어요. 큰 맘 먹고, 한 시간 일찍 조퇴했습니다.
안과 진료를 받으려 했는데 대기자가 많아서 결국 집에 왔어요. 아이를 데리고 약 타러 병원에 갔고, 동시에 미용실도 예약했죠.
진료가 끝난 아들을 미용실 의자에 앉힌 후 저는 또 옆 건물 내과로 달려갔어요. 직장에 제출할 ‘결핵 무보균자’ 서류를 떼야 해서 후닥닥 엑스레이를 찍었죠.
학교를 오래 쉬었더니 추가로 제출할 서류도 많더라고요. 그리곤 약국으로 달려가 약을 타서 미용실에 갔어요. 혼자 있을 아이가 눈에 밟혀 가슴은 자꾸 콩닥콩닥 뛰었어요.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집에 왔는데, 웬걸요. 약봉지에 가루약 더미가 없더라고요. 길바닥에 통째로 떨어졌나봐요. 휴우. 참 정신 없죠?
일한다고 아이 육아와 집안일이 줄어드는 건 아니니까요. 때문에 워킹맘에게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은 필수 자원이에요. 쉽지 않지만요.
암튼 적응하기 벅찼던 한 학기 동안 아이도 안쓰럽고,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만 하는지 늘 고민이 됐죠.
그렇게 한 학기가 지나고 드디어 여름 방학이 왔어요. 교사는 수업 교체가 힘들어서 틈틈이 연가를 쓸 수가 없어요. 방학이 돼야 한숨 돌리죠.
몇 주에 걸쳐 2학기에 수업 준비를 마쳤고, 에듀테크와 IB에 대한 연수도 듣고요. 그리고는 제 책 <사교육 대신 제주살이>를 펴냈어요. 여유를 회복하고 삶의 우선순위를 재정비해야 하니까요.
어쩌면 이 책은 다시 워킹맘이 될 저를 위해 썼나 봐요. 이 녀석이 삶의 중심을 잡도록 수시로 용기를 주거든요. 운동과 집밥, 해독주스 마시기, 일과 글쓰기보다 아이를 우선시하기, 틈새의 여유 누리기 등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종종 감성이 살아있는 제주가 참 그리워요. 그곳과 이곳의 삶의 온도가 너무 커서 당황스럽기도 하고요. 하지만 지금 제가 직면한 과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엄마와 다정한 선생님’으로 사는 거에요.
힘들다고 회피하지 않고, 일과 인간관계라는 단단한 장벽을 과감히 뚫고 나가야죠. 이런 모습을 아이와 학생들에게 보여주면서, 진실한 멘토로 살고 싶거든요.
모두가 행복한 삶을 꿈꿉니다. 하지만, 매번 여행과 힐링만 하며 살 수는 없어요.
그렇다면 진짜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요?
<아주 보통의 행복>의 저자 최인철 교수는 행복이란 일상을 위한, 일상의 의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그저 살기에만 급급한, 행복이 실종된 사회를 살고 있어요. 하지만 행복은 거창한 무엇이 아니에요. 일상의 속살로 더 깊고 당당하게 들어가 보람 있는 하루하루를 사는 게 아닐까요?
지금의 업무와 육아라는 소용돌이를 지혜롭게 뚫고 나가야 5, 60대가 됐을 때 아이들에게 당당하고 또 후배들에게도 나눠줄 지혜와 여유가 생길 테니까요.
쓰나미같은 육아와 일이 버거운 지금의 3,40대는 진짜 행복을 위해 ‘돌파’라는 단어를 매일 가슴에 새겨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교권이 무너졌어요. 교사의 역할이 위축되다보니, 학생들이 교실에서 말썽 피워도 저지할 힘이 없어요.
학생들의 폭언에 교사들도 상처 받을 때가 많고요. 단단한 울타리가 없으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안정감을 가질 수 없습니다.
교사가 행복해야 교실에 여유와 사랑이 흘러갈 텐데, 갈수록 삭막해지는 학교 현장이 가슴 아파요.
제가 복직해서 제일 잘한 일은 행복습관노트(칭찬감사일기)를 만들고 아침마다 방송을 하며 1,100명의 중학생과 쓰는 거에요.
저희 집은 둘째 아이가 세 살 때부터 함께 감사일기를 썼어요.
사람은 불평과 부정적 생각이 긍정과 감사보다 3배 더 강렬하게 기억한대요. 또 만족은 끝이 없죠.
그러니 수시로 감사와 칭찬거리를 찾으려 노력하지 않으면, 행복한 모든 순간을 놓치고 맙니다.
행복의 열쇠는 감사에 있고, 힘들수록 감사일기를 쓰다보면 긍정적인 기운도 생기거든요.
긍정적인 말과 생각은 자신감과 함께 자존감까지 높이고요. 이 좋은 것을 우리 가족만 하는 게 아쉬웠어요.
요즘 청소년들도 밤늦게까지 학교와 학원, 숙제와 수행평가에 치여 사느라 힘듭니다. 경쟁과 외모, 친구 문제로 걱정과 불안이 많은 학생들에게 스스로 마음 다독이는 법을 알려줘야 해요.
가까운 어른들이 관심을 갖고 마음을 읽어주며 비전과 긍정적인 태도를 갖도록 하면 좋겠죠. 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인성과 가치관이 무너지고 학생들은 게임과 영상에 중독 돼고 경쟁에 지쳐 있죠. 방관인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해요.
긍정 언어가 학교에 자리 잡도록 해야합니다. 어둠은 아무리 물리쳐도 사라지지 않아요. 빛의 힘으로만 어둠을 밝힐 수 있죠.
학교에는 성실하고 착한 학생들도 많아요. 그들은 문제 피우는 동급생의 욕설과 수업 방해를 오롯이 견뎌야 하죠. 그들이 선한 목소리를 내고, 긍정 언어와 생각으로 따스한 힘을 발휘하도록 도와야 해요.
행복습관노트 쓰기와 방송으로요. 이 감사 운동이 국공립 학교에도 전파돼서 우리 학생들이 바른 가치관과 태도를 갖고, 긍정적인 분위기에서 공부하면 정말 좋겠어요. 학교는 가정 다음으로 학생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니까요.
때문에 저는 매일 새벽마다 요가와 묵상으로 하루를 열어요. 따뜻한 방송 멘트를 쓰죠.
저 역시 칭찬감사일기를 쓰면서 마음을 다독입니다. 그래야 딱딱한 말투와 표정이 아닌 다정하고 친절한 선생님이 될 수 있더라고요.
학교에 따스하고 선한 빛을 전하는 은하수반짝이 되고 싶거든요. 저를 믿고 따르는 예쁜 학생들이 많이 생겼어요.
그러니까 당당하게 매일 정면 승부하기!
이것이 제 삶의 여유이고 행복입니다. 진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좋아하지 않은 행정 업무와 따가운 눈총, 또 집안일도 견뎌야 해요.
시간이 부족해서 울화통이 치밀 때도 많지만 이 ‘워킹맘의 여유와 행복’을 놓지 않고 버티렵니다.
“불가능도 가능케 하리라”는 믿음의 주먹을 불끈 쥐어보려고요.
“행복이란 오로지
일상을 위한, 일상에 의한, 일상의 행복이다.
행복에는 사교육도 신비로운 묘약도 없다.
행복은 그저 일상의 삶을 잘 살아가는 것.
밥을 먹고, 일을 하고, 대화를 나누고…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사소함 속으로
더 깊이, 온전히 들어가는 것이 곧 행복이다.”
– 최인철, 《아주 보통의 행복》-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앰버서더에게 응원 및 소감글 작성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