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따라 미국에 와서 한동안 유유자적하는 삶을 살다 그래도 우리 나름의 계획이란 것을 갖고 사랑스러운 딸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산부인과를 다니며 경험한 미국에서의 출산 과정은 생각보다 한국과 많이 달라 놀라움의 연속이었지만 그래도 그 나름 재미와 장점들이 있었습니다.
산모의 몸무게 변화에 민감한 한국과 달리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산모의 정신 건강이었던 것, 출산예정일이 다가와도 유도분만을 하려고 하기 보다 최대한으로 기다리는 여유로움이 많이 달랐죠.
출산 후에도 지속적으로 출산 후 육아우울증은 없는지 수시로 간호사가 전화와서 엄마의 정신건강에 관해 체크를 하는 것도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만큼 출산 이후의 삶이 얼마나 달라지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고 그걸 잘 관리해주려는 노력이 돋보였어요.
제일 신기했던 것은 출산 직후 산모에게 주는 음식들이 말로만 듣던 어메리칸 스타일이었다는 것과 냉수였지요. ‘무조건 그래야 한다’라는 한국식 출산 스타일과는 다르게 미국 출산 경험을 통해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하는 자유로운 마인드를 갖을 수 있었던 경험이었어요.
그들도 각종 인종의 출산 스타일을 얼핏 들어 알기에, 제게 아시안-아메리칸 의료진을 배정해주어 한국식 스타일이 무엇인지 대략 알고 있더라구요.
하지만 그게 꼭 답은 아니다. ‘엄마가 편하고 행복한 쪽으로 산후기간을 보내야 아이도 행복한 것이다’라는 메세지를 전해주었어요.
덕분에 몸과 마음이 상당히 느슨해진 채로 임신 과정을 겪고 출산을 하고 행복만 바란다는 의료진들의 인사와 함께 가벼이 병원을 나섰습니다.
미국에서 출산 후 먹은 음식들 ⓒ김소담
그런데 아기를 낳고 딱 일주일 뒤, 전세계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닥쳤고 그 큰 위기에서 미국은 대공황이라도 겪는 듯 모든 편의시설들이 셧다운을 들어갔으며, 당장 집 앞 마트에서부터 생활용품이 동나기 시작하는 것들을 눈앞에서 겪기 시작했어요.
전세계인이 처음 겪는 코로나 바이러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인생에 출산이란 것을 처음 겪은 저는 말 그대로 ‘홀로 견디는 육아’ 였어요. 사람이 집 안에서만 걸어다니는 것 외에는 몇발짝 걸어 나가는 마당만 거닐고도 1년이 살아지는구나를 난생 처음 겪어보기도 했어요.
그 때 아이와 제가 집에서 할 수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지 짐작이 가실지 모르겠어요.
감옥이 있다면 이런건가 싶을만큼 갇혀 살았던 1년이었네요.
마냥 누워만 있는 아이에게 해줄거라곤 엄마의 사랑스런 말과 웃음 뿐인 것이 진심으로 미안했습니다.
남편은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이긴 했으나 일이 너무 많아 모든 육아의 98%를 제가 담당했을 만큼 참으로 혹독한 미국에서의 생활이었어요.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도 설령 도움을 누군가 주었다 해도 마음 편히 코로나로 그 도움의 손길마저 받을 수 없었어요. 바깥의 음식을 사 먹을 수도 없고, 삼시세끼 전부 한식으로 해 먹어야 하는 상황에 한인마트는 동네에서 2시간이 걸려야만 갈 수 있어 눈물겨운 생활이 지속됐죠.
그렇다고 아이에게 그 기운을 전할 수는 없었어요. 그 때 눈길이 가던 것은 한국에서 전해 받은 10권 남짓한 아기 중고 책이었어요.
1개월 아기를 눕혀 놓고 같이 누워 책을 읽혀주던 그때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분명한 것은 아기에게 책을 읽어주면 아기는 마치 모빌 보듯이 책을 정확히 인식했다는 것이었죠.
사실 엄마인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상당히 제한적이에요.
쓰는 말만 쓰고 어린 아이의 시선에 맞게 상호작용을 하며 말하는 것을 연습해본 적이 없으니, 결국 익숙한 말들이 반복됨을 느끼는 게 현실이에요.
그러니 그림책의 도움을 빌어 아이에게 조금은 엄마의 언어보다도 더 확장된 아름다운 말을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아마도 제게 미국에서 육아를 홀로 어떻게 겪어냈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그림책’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한국의 책 육아가 전집을 구비하고 전면 책장을 들이는 것부터 시작이었다면, 미국에서의 책 육아는 보통 물려받은 중고 책 몇 권으로 지루하지만 반복되게 읽어주는 것 말고는 없었죠.
하지만 저는 책과 책장으로 아이가 책을 좋아한다는 생각을 갖지 않고 시작했다는 점, 그 책들로 홀로 육아를 버텨냈다는 점이 조금은 다르다고 할 수 있어요.
그림책으로 전할 수 있는 메세지는 결국 ‘엄마의 사랑’으로 귀결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책의 가격과 어떤 전집이냐는 본질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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