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종엄마, 내 아이의 인플루언서로 거듭나다.
🎁
“내일부터 상희와 미나는 너랑 이야기하지 않을 거야. 잘 지내, 안녕”
중학교 입학식 날, 9번이었던 너와 10번이었던 나는 단짝 친구가 되었다. 얼마 뒤 비밀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사실 초등학교 때 따돌림을 당했어.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너무 힘들었고. 너처럼 좋은 친구를 만나서 정말 행복해.”
어린 나이에는 이런 솔직함이 다시 화살이 되어 날아올 것이라 상상도 하지 못했다. ‘왜 네가 따돌림 당했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는 9번 친구의 편지를 받아 들고 하염없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얼마 뒤 한참 뒷 번호였던 키가 컸던 선영이가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선영이 또한 이내 속내를 드러냈다. 자신의 숙제를 안 해주면 같이 안 놀 거라며 과제를 들이밀기도 하였다. 자신이 푸는 학습지가 재미있어서 나에게 다 줘도 괜찮다며, 9번 친구가 놀지 말라고 시켰다는 상희의 숙제를 대신해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결국 9번 친구는 내 옆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모든 순간이 이랬던 건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전교 어린이 회장에 당선되기도 했고, 방송실 아나운서를 도맡아 전교에 내 얼굴이 나가기도 했다. 때마침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전국 최초 OO 연구 학교로 지정이 되어 교육청 방송에도 나가는 등 말 그대로 ‘관종의 시대’를 즐겼다. 나는 내가 충분히 잘났다고 생각했고, 누구나 공부 잘하는 애, 말 잘하는 애, 그리고 친해지고 싶은 애라고 여긴다고 알고 있었다.
이런 내 생각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만난 한 친구 때문이었다.
“너는 네가 잘난 줄 알지? 잘난 척 좀 그만해. 우리 다 너 잘난 척하는 거 질리거든?”
그 말을 듣고 서야 스스로 잘난 척이 심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진짜 잘난 것이 아니라 친구들의 눈에는 그저 ‘척’ 하는 아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주동자였던 친구만의 생각이었는지, 내 눈길을 피하며 동조하던 친구들의 생각도 모두 동일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나 역시 어느 날은 동조의 무리에서 또 다른 친구의 눈길을 외면하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그 힘든 시간을 경험하면서도 또 내 차례가 될까 무서워 다른 친구의 힘듦을 외면해야 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