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를 가장 잘 보필해주는 것 3가지가 질문의 의도이지만. 무인도에는 내가 지금 가장 잘 사용하는 것들을 가져갈 수 없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을 것 같아서다. 지금 내가 없으면 못 사는 건 휴대폰, 노트북, TV인데. 전기가 없는 무인도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전기를 빼고 생각한다면 내 머릿속에서는 너무 뻔한 대답만 나와서 재미없었다. 사람들은 무인도에 어떤 걸 들고 갈까 궁금했다. 검색을 해보니 가장 일반적인 대답은 물, 불, 칼이었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물과 음식을 데우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여차 하면 호신용으로도 쓸 수 있는 불, 그리고 나무 등을 다듬거나 사냥 도구로도 쓸 수 있는 칼. 생각해보면 문명이 발달하기 전에 인간이 생존했던 삶의 방식을 떠올리는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지속가능한 도구를 생각한 사람들은 전기 없이도 사용 가능한 브리타정수기나, 계속 불쏘시개를 만들어낼 수 있는 파이어스틱을 생각해냈다.
이것보다 더 재미있는 답변은 관점을 완전히 전환한 물건들이었다. 첫째는 배. 그래, 배가 있으면 언제든 무인도를 벗어날 수 있는데. 그때의 무인도는 갇혀 있어야만 하는 섬이 아니라 휴양지로 변할 것 같다. 내가 쉬러 들어가서 나오고 싶을 때 언제든 나올 수 있는. 두 번째는 캠핑카. 무인도라고 현대 문명적 아이템을 가지고 가지 못한다는 조건은 없으니까. 사람들이 불편할 거라고 예상했던 벌레나 추위로부터 완벽하게 막아주는 건 텐트나 침낭보다 캠핑카가 더 완벽해보였다. 세 번째는 도라에몽 주머니였다. 원하는 건 무엇이든 꺼낼 수 있는 도라에몽 주머니. 사실 도라에몽 주머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틀도 없고 한계도 없는 백지 같은 질문을 던지면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대답은 비슷하기도 하고, 완전히 다르기도 하다. 사람 사는 모습이 어느 정도 닮아 있으면서도 그 누구도 같은 삶을 살지는 않기 때문일 것이다.
무인도에서는 무엇이 가장 힘들까. 살아보지 않으면 무엇이 힘들지 상상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언뜻 생각하면 먹고 입고 자는 신체적 어려움이 가장 클 것 같지만. 무인도에 불시착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 캐스트 어웨이를 보면 주인공이 가장 힘들어 보일 때는 배구공에 얼굴을 그리고 대화하는 장면이었다.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지금은 관계가 때론 버겁고 아프고 귀찮을 때도 있지만, 사람이 없는 무인도에서는 필수템이 '시리'나 '빅스비'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