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혼이나 아이에 대한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
사회가 정한 결혼 적령기가 될 때까지 오래 만난 연인이 있었고, 그 사람과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결혼하는 것이 정해진 순서였다. 결혼을 좀 더 늦게 하거나, 혹은 안 하거나 할 이유는 없었다. 아니, 그런 건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건 그냥 마땅한 순서였다. 때가 되었으니 자연스럽게 따르는 게 맞았다.
결혼한 지 14년이 지난 지금에야 ‘결혼 말고 네 인생에 다른 플랜을 생각해 볼 순 없었니? 이 아름다운 것아?’ 라는 생각을 하지만, 그때의 나에겐 그게 당연했다.
우리 부부는 허니문 베이비로 아이를 가졌다. 내가 아이를 가졌다는 게 참 신기했다. 감사한 일이고 축복이었다. 그런데 내가 결혼하기 전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결혼과 동시에 제법 오랜 시간 남편이 내 곁에 없을 운명이라는 사실이었다. 남편은 갑작스러운 이직으로 결혼을 코 앞에 두고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었고, 나는 직장을 그만둘 수 없었기 때문에 결혼식을 올리고 나서 혼자 계신 시어머니와 단둘이 살게 되었다.
보통 이런 전개라면 친정 부모님이 시어머니께 “아유~ 땡땡 서방도 없으니, 둘이 살림 합칠 때까지 우리 애는 저희가 데리고 있을게요오호호호호~~~”할 텐데, 드라마 보면 다 그렇게 하던데, 옆집 친구네도 그렇게 하던데, 우리 엄마 아빠는 달랐다.
“결혼했으니 그 집에 드가서 사는 게 맞제.”
난 그렇게 하기 싫었지만, 결혼이란 게 참 이상하더라. 결혼을 하면서 부터 친정과 나 사이에 뭔가 결계 같은 게 생긴 기분이었달까. 그 결정이 싫었지만 그렇다고 떼쓸 수는 없었다. 그렇게 뭔가 반강제적인 정신적, 육체적 독립을 하고 시댁살이를 시작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힘들게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아침저녁으로 매우 바쁘셨다. 일은 안 하셨지만 워낙 사회활동이 활발하셔서 서로 마주칠 일이 별로 없었다. 나도 직장 생활에 바빴고 워낙 혼자 잘 노는 스타일이라 결혼하기 전처럼 지냈다.
하지만 그 ‘결혼하기 전처럼’이 문제였다. 아니, 나 결혼했는데? 왜 아직도 ‘결혼하기 전처럼’ 지내는 거지? 왜 아직 혼자 놀아? 이런 생각이 점점 날 괴롭혔다. 게다가 임신까지 하지 않았나. 친구 누구누구처럼 밤중에 자는 남편 깨워서 “자기야, 땡땡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는 버터 발라 구운 알감자가 먹고 싶어”라든지 “한겨울에 미안하지만, 하우스 딸기라도 좋으니 어디 알이 이따만큼 큰 딸기 없을까?” 이런 멘트까지는 아니라도 그냥 같이 밥 먹고 산책하고 병원 검진도 같이 다니는 소소한 일상을 나눌 남편이 곁에 있으면 했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걸로는 부족했다. 그때 나는 계약직으로 직장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얼른 계약기간이 끝나서 남편이 사는 곳으로 이사를 했으면 했다. 그럼 임신 후반기부터는 우리 둘이 알콩달콩 살 수 있겠지. 그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예전부터 영미님의 위트있고 생생한 글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번 글도 너무 잘 읽었어요👍👍
담담하게 감정을 절제해서 써내려간 글들이 그 상황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게 되고 몰입하게 되네요ㅎ
앞으로 연재할 글들이 기대되고 진심 응원합니다🧡💛❤️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희수님. 제 이야기가 머릿속에 그려진다니 감동이에요 ㅎㅎ
응원 너무 감사드려요, 앞으로 연재 될 글도 기대해 주세요! ^^
너무 꿈만 같은 일상이예요~ 아이를 낳고 보니, 할 수 있는 일, 시간의 제약, 공간의 제약... 너무 많더라구요. 앰버서더님은... 그러한 환경을 긴 시간을 통해서 구축 해 놓으셨네요. 저의 로망 같은 일상이라... 다음편도 너무 궁금해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지연님 :)
엄마들의 일상에는 참 제약이 많죠, 그런데 그 제약 덕분에 엄마들의 맷집이 더 강해지는 것 같아요! ㅎㅎ
육아도, 나의 일과 꿈과 미래도, 그 맷집으로 잘 견디며 야무지게 키워나가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