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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엄마인가요?’

결혼하고 출산을 앞두기 전까지는 막연히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며 좋은 엄마라는 것은 막연한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라는 하나의 이름표를 얻으면서 스스로가 ‘이렇게도 인내심이 없는 사람이었나.’, ‘이렇게 화와 짜증이 많은 사람이었나.’ 스스로 놀랄 때가 많았습니다.

마치 내가 아닌 새로운 사람이 제 몸속에 들어온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엄마인 제 모습이 낯설고 어색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고 납득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커갈수록 육아의 고민은 점차 커졌습니다. 

육아2 (育兒)  

[명사] 어린아이를 기름.

육아의 사전적 의미는 어린아이를 기르는 것입니다. 사전적 의미만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인 것처럼 보입니다. 엄마라면 아이를 기르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특별한 것이란 생각을 하기 어렵습니다.

‘어린아이를 기름’이라는 일곱 글자에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겪지 못한 수천 가지의 이름 모를 감정들의 폭풍우를 자주 경험할 수 있다’라는 것은 설명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마치 모성애는 그냥 주어지는 것처럼 치부되기도 하고 말입니다.

저만의 마음 사전에서

‘육아’는 이렇습니다.

‘매일 그리고 매 순간

아이들로 인해

간장 종지만 한 마음 그릇을

강제로 넓히고 키워가는 것.

매우 힘들지만

매우 행복하기도 함.’

아이를 낳기 전에는 이렇게 고군분투하는 일상은 생각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냥 좋은 엄마가 되는 줄 알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엄마가 그렇듯.

세상에 중심이 나 자신으로 돌아갔던 미혼과는 다르게 엄마가 된 뒤부터 내 몸이 아파도, 아이를 위해 내가 못 먹어도, 아이를 위해 나보다 더 아이를 위해 살았고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엄마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그 무게는 감당하기 정말 힘들었습니다. 많은 선택을 ‘아이를 위해’라는 이유가 자연스럽게 붙어버렸습니다. 막중한 책임감이었습니다. 가끔은 ‘아이만을 위한다’는 것이 저를 더 성장하게 한다고 생각했고, 엄마가 되기 위한 당연한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장실 거울에서 낯빛이 노랗고, 초점을 잃은 눈빛의 무기력한 제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제 이야기가 오늘도 고군분투하며 아이를 기르는 세상의 모든 엄마들 마음을 따뜻한 손길로 토닥여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6남매의 막내. 상대적 무관심.

시골 마을. 내성적인 아이. 

학교에서 돌아와도 혼자인 시간이 많았다. 막내이지만 귀여움을 받기보다 형제들 사이에 묻혀 존재감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7살에 학교에 들어갔고, 유치원을 다니지 않았던 나는 더딘 아이였다. 인정받고 싶었던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첫 상장을 받은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밤늦게 오시는 부모님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생애 첫 상장을 자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껏 들뜬 마음에 집에 도착한 부모님께 상장을 보여드렸지만, 반응은 싸늘했다. 지금 떠올려 봐도 상처 받은 기억이 선명하게 맺힌다. 아마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던 나였다. 

그렇게 사랑이 고픈 어린아이는 그 뒤로 자연스럽게 그 감정들을 드러내지 않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래야 상처 받을 일도 없을 테니. 그런 어린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고 결혼해 임신하고 출산의 과정을 겪는 동안 내면에 ‘엄마’라는 색깔은 조금씩 선명해져 갔다.

따뜻한 엄마,

옆에서 늘 지지해 주고

표현을 잘해 주는 엄마.

언제든 아이가 감정을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안전 기지가 되고 싶었다. 내 아이들에게 만큼은 그런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살고 싶었다.

내가 받지 못한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랬다. 나처럼 상처 받는 아이들로 키우고 싶지 않았다. 친구하고 싸우면 그 속상한 감정도 함께 나누고 싶었고, 잘한 일이 있으면 손뼉 치며 기뻐해 주고 축하해 주고 싶었다. 함께 살면서 웃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엄마라면 누구라도 가졌을 만한 평범한 소망이었는지도 모른다. 순한 기질의 딸과의 육아에서는 그런 방향성이 너무나도 잘 맞았고 의사소통, 친밀한 대화법 그 안에서 나만의 육아 만족도도 나날이 상승곡선을 그려갔다.

하지만 문제는 아들과의 육아가 시작되고 부터였다. 아들이 태어나기 전 딸과 놀이터를 갔을 때 만났던 아들 엄마들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었다.

‘왜 저렇게 무뚝뚝하고 무섭게 말하는 거야?’ ‘과정을 왜 설명하지 않고 명령부터 하지?’ ‘애들도 말하면 다 아는데 왜 화부터 내는 거지?’

세상에나. 나의 오만함에 미안하다고 붙잡고 사과라도 하고 싶어질 판이다. 아들 키워보지 않은 자 말하지 말라고 했던가. 그때는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런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고만 생각했다. 그런 말들이 칼날처럼 차갑고 아이를 아프게 한다고 느껴졌다. 그렇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게 주는 마음의 상처가 1mm씩 깊어지고 있을 것이라 단정했다.

하지만 내가 막상 남자아이를 키워보니 아이의 상처보다 나에게 정말 실망스러웠다. 그야말로 내가 생각하고 소망했던 ‘마음의 안전 기지’가 되고자 했던 엄마의 모습은 오간 데 없고 그저 윽박지르고 명령하고 단호하게 요구하는 나의 모습. 안전 기지 운운했던 엄마는 어디 가고 이렇게 다른 얼굴을 하고 있나 싶어서 스스로 어이가 없었다.

원하는 엄마의 모습을 하지 못하는

나에 대해 스스로 손가락질하는 모습,

나는 그렇게 자신을 거세게 비난했다.

아마 그때부터였다. 그늘진 어둠을 찾아 들어가기 시작했던 때가… 그렇게 나의 얼굴은 웃음을 잃어가고 집에서 아이를 재우고 나서 내가 만든 감옥에 나를 가두기 시작했다.

감옥의 주인은 온전히 나 혼자였다. 마음의 감옥 안에서 그날의 잘못된 점 하나, 하나를 다시 끄집어냈다. 검열하고 비난하고 판단하고 평가하는 일련의 반복되는 과정들 속에서 나의 마음은 나를 ‘못된 엄마’로 낙인 찍었고 내가 그리는 이상적인 엄마에게서 점점 더 멀어져 갔다. 나는 그렇게 나를 가둬갔다.

짜증과 훈육의 일상이 반복되던 날 중 어느 날. 잠자리에서 아이들에게 물었다.

“엄마가 왜 좋아?”

“그냥 좋아. 다 좋아. 너무 좋아.”

딸이 말했다.

누나에 이어 동생인 아들이 말했다.

“맞아, 맞아.”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유를 찾지도, 이유를 생각해 보지도 않고 나오는 자연스러운 아이들의 말에 나는 순간 얼음이 되었다. 코가 시큰거리고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그 울컥하고 먹먹한 마음을 붙잡고 울음을 참고 겨우겨우 아이들을 잠재우고 나왔다.

엄마들은 알 것이다.

‘나쁜 엄마’라는 자괴감에 몸서리칠 때

아이들이 해맑게 ‘엄마 좋아’ 라고

말할 때의 감정을. 

그랬다. 나쁜 엄마라고 생각하는 것은 온전히 나 혼자였다. 육아 퇴근 후 감옥의 수감자였던 나는, 현실에서도 수감자 옷을 벗지 못하고 일상을 감옥처럼 생활했다. 그런 생활에 익숙해지며 점점 웃음과 눈빛에 초점을 잃어가는 나를 돌보지도 못하고 아이들의 눈에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지냈는데… 그런 나를 좋다고 하는 아이들의 순수한 말에 죄책감과 미안함이 공존했고 동시에 나를 향한 맑디맑은 아이들의 사랑이 느껴져 가슴이 미어졌다. 

그날 이후 깨끗하고 맑은 아이들의 사랑이 나의 차디찬 수감자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어 줬다. 아이들은 ‘어떤’ 엄마가 좋은 게 아니었다. 그건 내 안의 아이가 가진 ‘엄마’라는 환상이었다. 아이들은 ‘엄마’라는 나의 존재로 그저 좋은 거였다.

엄마인 내가 아이들의 존재로 소중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엄마의 사랑이 누가 더 크다고 했던가. 나는 그 말에 반대한다. 엄마의 사랑 못지않게 아이들의 엄마에 대한 사랑도 크다.

“아이들의 사랑이 내 사랑보다

훨씬 더 크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인 나는 그렇게 스스로의 감옥을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

아이를 낳기 전,

어떤 엄마가 되고 싶었나요?

육아하는 지금 어떤 엄마인가요?

당신이 바라고 원했던

엄마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나요?

어떠한 대답이든 저는 당신에게 괜찮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질척대는 육아의 진흙탕 속에 당신이 갇혀 못 빠져나온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엄마가 처음이라 모든 것이 스트레스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지금 아이의 눈에 담긴 당신이 바로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엄마입니다. 자부심을 가지세요.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스스로가 별로인 엄마인 것 같아도, 아이는 무조건 누구보다 내 엄마인 당신을 많이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엄마로 살아가는 당신의 오늘 하루가 반짝 반짝 빛이 나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 함께 해 보아요. ❤

힐링 페이지 1단계.

오늘의 나를 칭찬하는 3줄 일기(예시)

1. 오늘 아침에 아이에게 화 낸 것을 사과한 나 스스로를 칭찬해

2. 저녁을 시켜 먹지 않고 가족을 위해 요리한 나를 칭찬해

3. 먹고 싶었던 커피와 케익을 나에게 스스로 선물한 내 마음에 칭찬해

스스로 하는게 어색하다면  인스타 피드에 올려보면서 인증해보세요. 저를 태그(@maumcoach_younghee)해주시거나, 제 메일로 (yhcoaching@naver.com)  3줄 일기를 보내주시면 제가 그 마음과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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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6
  • 김*영
    1년전

    오늘의 나를 칭찬하는 3줄일기 너무 좋은것 같아요!
    작가님 항상 응원 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 드려요^^

  • 앰버서더
    남영희
    1년전

    꼭 나를 칭찬해주기로해요^^

  • 이유진
    1년전

    나를 좋아하려고 애쓰는 나 칭찬해!
    아이에게 건강한 사랑을 주기 위해 애쓰는 것도 칭찬해 !
    아침에 아이와 붕어빵 먹으며 기분좋은 아침을 보낸것도 칭찬해 😄
    릴레이 실천해 보았어요😁

  • 앰버서더
    남영희
    1년전

    릴레이실천 이어가주셔서 감사해요~ 지금은 노력이 필요한 사랑을 애씀을 더해 실천하는게 어려워도 익숙해지면 애씀없는 사랑이 되겠죠~ 응원합니다!

  • 송이안
    1년전

    너무나 따뜻하고 친절한 글 감사합니다
    제가 아들 엄마가 아니면 어쩔뻔 했어요
    아들 엄마라서 죽겠다가도 갑자기 행복해져요
    작가님이 손 잡아주셔서요!^^ ❤❤❤

  • 앰버서더
    남영희
    1년전

    아들엄마 화이팅이요!! 극과극의 감정을 아이들로 인해 많이 느끼는것 같아요. 죽을거같음 힘듦과 행복.ㅎㅎ 응원합니다!

  • 장*
    1년전

    아무런 감정없이 하루하루를 살아냈던 저의 모습들이 스쳐가네요. 지금도 가끔씩 그렇지만요~작가님덕에 아이들깨기전에 저를 한번 돌아보았습니다^^

  • 앰버서더
    남영희
    1년전

    돌아본다는 것은, 엄마역할을 더 잘 해 내고 싶은 마음을 가졌을 때 생기는 마음인것 같아요! 그 마음을 응원합니다!

  • 공*연
    1년전

    아이를 통해~ 더 큰사랑을 배우고 있어요.

  • 앰버서더
    남영희
    1년전

    엄마 마음의 선생님은 아이들인가 봅니다. 저도 늘 제가 생각한 것보다 더 받는 느낌이예요!

  • 민*영
    1년전

    “매우 힘들지만
    매우 행복하기도 함”
    매우매우 공감이 되네요,,,
    계속 마음을 다독여 주는 글 부탁드려요!!

  • 앰버서더
    남영희
    1년전

    저도 매우 힘들지만 매우 행복하기도 하는 날이 늘어나면서 엄마의 마음도 점점 커가길 바라보아요^^

  • 김*은
    1년전

    진짜 공감되는 엄마의 이야기가 나온것 같아요 작가님🥹

  • 앰버서더
    남영희
    1년전

    엄마 마음에 공감된다니 소원성취했습니다!

  • 김*은
    1년전

    오늘의 나를 칭찬하는 3줄 일기
    둘째가 혼자 종이를 요리조리 접고 스카치테이프 로 붙인 '멀티막대기'를 자랑할때 오구오구 칭찬하트 날려준 날 칭찬해

  • 앰버서더
    남영희
    1년전

    바로실천하는 실행력! 멋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