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
그럼 그 증거를 보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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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 증거를 보여줘

이 세상에 별별 성향들과 성격들이 모여 살아가고 있으니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겠다 싶은 요즘.

그래서 각자 서로서로 이해하고 더 배려하며 관계 유지에 힘쓰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무리에서 꼭 하나씩 있는 또라이들은 자기가 또라이인지 모르면서 상대방 마음에 상처를 주거나 화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이번엔 우연히 알게 된 동네 엄마들 사이에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정도를 넘어서고 선을 넘는 경우가 많아지기도 했다.

나는 친구 외에 사람은 별명을 부르거나 그 사람을 나타내는 특정 단어로 부르지 않는다. 혹시나 그 사람과 대화하다가 무심결에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동네 엄마들 사이에 어떤 한 명을 증거충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남편이나 친구, 엄마한테 얘기해줘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그 증거충 있잖아.” 하며 얘기를 시작한다.

내가 들어가 있는 맘톡은 대략 5개 정도 되는 거 같다.

물론 들어갔다 나갔다 정리도 하고 마음 맞는 곳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다. 

그 중에 같은 지역의 엄마들로 구성되어 있는 맘톡이 있었는데, 아기들의 개월 수는 천차만별이었다.

*

우리 아이가 6개월때 있었던 일이다.

우리 아가의 발달은 잡고 서서 옆으로 가는 거까지 딱 6개월에 끝내버렸다.

우리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엄청 빠르다며 되게 신기하고 부러워 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우리 아가는 성격이 급하고 빨리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서 계속 도전하고 도전했기 때문에 빠른 거라고 생각한다.

약간 목 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듯 끊임없이 하고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런 저런 이유를 둘째치고 제일 중요한 건 요즘 아기들은 다 빠른 거 같기도 하다.

“우리 아가 오늘 잡고 섰어요!”

나는 그날 너무 기쁜 나머지 먼저 자랑했다.

개월 수가 빠른 선배 아기들이 잡고 서는 모습이 너무 좋아 보이고 부러웠는데, 그걸 짜잔 하고 해버리니까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소식을 얼른 알렸다.

맘톡의 멤버들이 다 같이 칭찬도 해주고 함께 기뻐해 주었으면 했다.

이상하게 맘톡에서 이런 반응들이 나올 때 기쁨도 2배, 행복도 2배가 되는 거 같다.

“언니~ 근데 동영상 있어요?”

“응응! 당연히 기록해놔야지!”

“보여주세요!
못 믿는게 아니라 보고싶어서 그래.”

잉? 저렇게 말을 하는 게 이미 누가 봐도 벌써 못 믿는 거 같은데 어쩌지…
속 알맹이가 훤히 보이고 있는데……

저 말에 나는 긍정적인 반응을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아니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고 싶었지만, 카톡 속에서 느껴지는 말투는 지극히 불편함을 잔뜩 느끼게 하는 말들이었다.

짜증은 나고 그냥 모른척해 버리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내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마음이 동요했으니 동영상을 얼른 보내주고 말았다.

**

역시 동영상을 본 단톡의 엄마들은 아까보다 더 큰 리액션으로 하나같이 함께 기뻐해 주었다.

동영상 속에서 놀라는 내 목소리를 듣고 다들 놀리기 바빴다.

근데 또 그런 반응을 보고 있자니 내가 단순한 건지 나빴던 기분은 다시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무엇이 행복이겠냐 이런 게 바로 행복함이구나 싶었다.

기분 좋게 아우 내 새끼 잘한다. 우쭈쭈를 함께 하고 있었다. 

“언니 근데 이거 잡고 서는 거 맞아요?”

“맞아, 누가 봐도 잡고 서는 건데
왜 그래.”

“그럼 우리 애기도 이거 하는데?”

“너희 아기 아직 앉지도 못하지 않아?”

그들의 대화를 차근히 지켜 보고 있었다.

아니 뭐 어쩌라는 거야. 진짜.
그냥 기분 좋게 칭찬은 못해주는 건가.

내가 자랑한다고 베알이 꼴리는 건지 진짜 엄청 야박스럽다고 느껴졌다.

그러다가 자꾸 그 어린 아가가 한다고 하니 영상을 보내라고 하니까 영상은 없다고 답변을 해왔다.

대신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을 보니 아이가 스스로 서는 게 아니라 그냥 엄마가 일부러 세워둔 게 확실했다.

나는 왜 이런 거 보면 그냥 지나가면 되지 꼭 한마디를 하고 싶을까.

내가 하려고 하는 찰나에 다른 엄마들이 이미 신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어머 어머 안 그런 척 하면서도 이 엄마 도치력이 어마어마하네.”

“그러게~ 저건 스스로 잡고 서는 게 아니긴 한데, 조만간 곧 서겠다!”

“그지 그지, 엄마들 도치력 똑같지 뭐.”

“ㅋㅋㅋㅋㅋㅋㅋ우리 모오두 도치이마암!”

이렇게 이야기가 일단락되고, 다시 평화로운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증거충맘이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삐쳤는지…

그 이후에 엄마들이 본인 아가들이 예쁘게 나온 모습의 사진을 슬슬 올리고 있었다.

다들 예뻐 죽겠다고 조카사랑이라고 열심히 떠들어댔는데, 증거충 맘은 딱 자기를 지적한 사람들의 사진들만 빼고 다른 사람들의 사진에 반응을 보였다.

소심한 복수처럼 보였다.

어린 사람이 그렇게 하는  그 정도를 복수라고 한다면 복수겠거니.

언니들은 그런 것도 그냥 감수하고 받아 줄게 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

그러다가 SNS 알림이 울렸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이 SNS가 문제다 싶다.

알림이 울려 가보니 스토리가 올려져 있었다. 증거충맘의 스토리.

‘배신감. 내가 지들한테 어뜨케 했는데.’라고 쓰여 있었다. 

순식간에 아, 나 애 엄마 아니고 고딩인가. 저격 글을 받아보는 것도 진짜 오랜만이네.

우리 때는 페북으로 그런 걸 받긴 했는데, MZ세대답게 인별 스토리로 저격받으니 뭔가 오! 하고 젊어진 기분에 오히려 신나졌다.

타격감은 전혀 없었다.

다른 언니들도 그걸 보고 하나둘씩 개인 톡이 오기 시작하더니 원래 있던 방 외에 새로운 단톡방이 생겼다.

“우리 저격?”

“ㅋㅋㅋㅋ나 저격.”

“아니 언니 저격. ㅋㅋㅋㅋ”

우리는 타격감 없이 또 이렇게 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증거충맘이 있는 방에서 그게 불편했던 다른 사람에게서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얘, 이거 우리 보라고 해둔거야?”

****

아~ 걔한테는 그렇게 반응해 주는 게 걔가 제일 바라는 건데 아유 아유

“아닌데요?”

“아 그래? 아니면 말고”

“히히 언니 찔렸어요? 히히 뭘 찔리고 그래, 잘못한 거 있어요?”

“적당히 하자.”

“있잖아,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하나만 우리가 얘기할게.
솔직히 우리 아가들은 시기에 맞는 발달을 하는 거거든?
근데 그걸 기쁘게 나누자고 하는 건데. 너는 계속 우리를 거짓말쟁이로 만들더라.
그리고 중요한 건 너네 아가는 4개월밖에 안 되었는데 그렇게 바락바락 따라오려 하지 않아도 아이는 할 거야.

아이한테 스트레스 주지 말자.
분위기도 흐리지 말자.
그리고 네가 재수 없게 느꼈으면 나는 어쩔 수 없어. 알지?”

“제가 언제 분위기를 흐렸어요?”

“응 지금.
그리고 맘에 안 들면 그냥 나가.”

*****

지나치게 행동하길래 짜증 나서 총대 매고 혼구녕 아닌 혼구녕을 내주니까 줄줄이 다른 사람들도 얘기해주기 시작했다.

그 친구가 무엇 때문에 그런 행동들을 하고 있는지 너무 잘 안다.

누구나 내 아이가 다른 아이처럼 제대로 발달 했으면 좋겠고 빨랐으면 한다.

거기에 덩달아 빠르다는 얘기도 듣고 싶겠지.

그런데 다른 아가를 깔고 뭉개면서 그렇게 하거나 본인 아가가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데 억지로 시키면서까지 그렇게 하는 거를 보니 보기 좋지 않았다.

만약에 그 아이가 진짜 했을 때 그래서 말도 안되는 자랑을 했어도 우리는 엄청난 칭찬을 해주면서 빠르다고 잘한다고 입이 닳도록 비행기를 태워줬을 것이다.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얘기 하니 그 친구는 조용히 방을 나갔다.

그리고 그 친구의 SNS에 새로운 스토리들이 올라오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거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았다.

진짜 관심밖이라.

중요한 건 하나도 안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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