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출산 그리고 육아를 거쳐 오면서 남편의 존재는 빠질 수 없는 존재였다. 빠져서도 안 되고.
나를 웃게 해주는 것도
나를 울게 하는 것도
또 내 입에서 욕이 작살나게 나오게끔 만드는 것도
전부 남편이 아닐까 싶다.
내 편인 거 같으면서도
어떨 때는 진짜 남의 편.
모든 걸 함께하자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우리가 부부임을 서약하고
나를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 주겠다고 그러더니 살아보니 점점 내 맘에 안 들고 이게 행복한 거냐! 하며 소리 지르고 싶을 때가 많아졌다.
연애할 때만 해도 이 사람하고 결혼해도 괜찮겠다, 재밌겠다고 생각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상하게도 요즘은 그때의 나를 정신차리게 매질을 해주고 싶을 때가 종종 생겼다.
*
우리집 남편만 이러겠나.
맘톡에서 상황을 들여다보면
나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눈치코치 1도 없다며, 그렇게 빠릿빠릿하게 해달라는 거 다 해줬던 놈 어디갔냐고 불같이 화내는 사람들이 수두룩 빽빽.
그렇게 맘톡에서 꽉 막혀있던 속을 훌훌 털어내고 풀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그리고 우리 예쁜 아이를 위해 내가 풀어야지 어쩌겠나 싶어서겠지만.
그 와중에도 안 그런 남편들도 분명 있다고 한다.
밖에서 힘들게 일하고 집에 오면 얼른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온종일 집에서 힘들었을 아내를 생각해서 쉬라고 하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한단다.
나는 그런 것을 받아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지만 그런 아빠를 둔 아가들은
그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빠 없으면 떠나가라 울거나 하는 표현 능력이 생겼다고들 이야기 한다.
아빠와 있을 땐 아빠 껌딱지가 된다고.
나도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아빠 껌딱지가 된 우리 아들.
그러려면 남편이 더 노력하거나 아이가 더 커야 가능한 상황.
솔직히 말하면 너무 부럽다.
부러워서 미치겠다.
제일 부러운 건 아빠 껌딱지가 되어간다는 말이 제일 부러웠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고 했는데, 벌써 나는 몇 번이고 패배하고 이제는 재도전도 못하고 있는 처지다.
이걸 입 밖으로 이야길 꺼내면 또 비교하네 마네 하며 싸워댈 것이 뻔해서 아무 소리 안하고 있지만 울화통이 터져버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자기 나름대로는 한다고 하면 반박해줄 말은 없지만 이 말은 꼭 해주고 싶었다.
군대가기 전에 제대한 사람들이 가서 토 달지 말고, 꾀부리지 말고 시키는대로만 하면 중간이도 간다는 말을 못 들어 봤냐고.
**
어쨌든 그날도 마찬가지로 맘톡에선 어떤 남편의 행보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이를 혼자 보는 아내에게 거짓말을 하고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오신 애기 아빠의 사연.
심지어 너무 쉽게 걸려버린 이야기.
이 모든 내용이 그날 맘톡에서 본인들의 남편이 한 거처럼 모두 그 상황에 빙의돼서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누군 안 돌고 싶냐.
나도 나가서 친구들하고 놀고 싶다.
제정신이면 그렇게 했겠나. 미친 거다. 정신 차리게 인중 컷 날려라.
살벌하고 웃긴 말들이 오고 가고 있었다.
이렇게 기분이 상한 엄마의 마음도 풀고 스트레스도 날려버리라고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해주는 것이다.
한참이고 말들이 오고가고 있는 와중에 남편 부심이 강한 엄마의 한마디.
욕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계속 보고만 있다가 이야기가 이제 마무리가 되어가는 순간 결정적인 한마디를 날린 것이다.
“아니~ 왜 다들 그런 남자 만나서 고생이야. 세상에 못된 남자들 많긴 많네.
이래서 육아하면 남편 본 모습 나온다고. 그런 말들 하는건가봐.
근데 우리 남편은 내가 힘들기라도
할까 봐 어쩔 줄 몰라 하던데~
연하 만나지 그랬어. 나한테 너무 잘해~ 아직도 내가 너무 예쁘다나 뭐라나
남편한테 잔소리 좀 해야 되겠다.”
그냥 와~ 어이가 없어서 현웃이 확 터져버렸다.
아무 말 안하고 지켜보다가 한다는 말이 저게 맞는 건가 갸우뚱했다.
잠깐 화장실만 다녀와도 백몇 개가 쌓이며 그렇게 활발했던 대화창이 저 말 한마디에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있었다.
분위기 파악 못한 저 여자의 말에 무슨 말을 할까 하다가 역시 답이 없을 때는 그냥 자연스럽게 쌩까는 것이라 쌩깠다.
대꾸해주면 끝이 없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무슨 말을 해주겠나. 남편 사랑 먹고 사느라 바쁜 사람한테.
눈치가 없으면 센스라도 있어야 하는데 센스도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냥 혼자 식게 내버려 두었다.
***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또다시 단톡방에서는 돌잔치 관련 이야기로 붐붐거렸다.
돌잔치에서 해야 하는 헤어, 메이크업, 드레스까지 고민하고 함께 이야기 했는데
모두 변해버린 체형에, 드레스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살을 아무리 빼려 마음먹고 소식해도 물만 먹어도 찌고 있으니 마음 쓰라린 현실이었다.
남편 자랑을 실컷 하던 그 엄마도 예외는 아니었다.
“진짜 나는 가슴이 너무 커서 맞는 게
1도 없어 눈물 난다 눈물 나
이거 사이즈 괜찮을 거라고 하면서 가져와도 다 안 맞아서 눈물 계속 날 뻔.”
유일하게 피팅까지 하고 온 그 엄마는 신세 한탄을 하듯 울고불고하길래 다들 똑같다며 힘내자고 했다.
얼마 안 남긴 했지만, 같이 살 빼자고 다짐도 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위로의 말이나 말 돌리기를 아무리 해도 결국 그 엄마로 인해서 주제가 다시 맞지 않는 드레스로 돌아왔다.
그러다 보니 함께 대화하던 사람들도 점점 그 엄마의 징징거림에 지쳐가고 있었다.
대꾸는 하고 있지만 다들 영혼이 없어지는 듯했다.
한명 한명씩 읽씹을 하는 사람도 생겨났는데, 그 와중에 나는 대꾸도 하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의미 없는 대화인 거 같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아무리 달래줘도 돌아오는 주제니까.
“왜 이리 다들 말들이 없어~
나 진짜 어쩌면 좋아~
흑흑 눈물 나.”
“언니 그만 해요. 우리 다 똑같애~”
“아니, 나는 너네보다 더하다고~”
“언니, 언니 있잖아.
요즘 세상 너무 좋아졌어.
잘 찾아보면 안 맞는 거 없다니까?
같이 찾아보자고. 이미 우리보다 더 살찐 애기 아빠도 맞는 옷들 많던데?
요즘 살짝 찾아보면 맞는 거 다 있다니까?”
“야, 나보고 남자 옷 입으라는 거야? 그러지 말고 그냥 턱시도 입으면 되겠다.
아니다, 돌잔치니까 남자 한복 내가 입어야겠네.
내가 남자 옷 입고 남편보고 드레스 입으라 해야겠다.
그리고 애기한테 나보고 아빠라고 부르라고 하면 되겠네!”
“아니 그 뜻이 아닌 거 알잖아.”
****
순식간에 단톡방이 식어버렸다.
사람들은 그런 말뜻을 가지고 이야기한 게 아닌 게 보이는데 극도로 예민한 그 엄마는 받아들이는 의미 자체가 달랐다.
똑같이 같은 주제로 우울하고 예민한 참에 혼자서 유달리 난리치는 걸 보고 있으니 적당히 했으면 좋겠다 싶었다.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우리를 대하는 데, 굳이 달래주고 싶지 않았다.
“언니~ 그렇게 자랑하던
사랑하는 연하 남편 어디 갔어?
그 남편이 옷 안 구해다 줘?
만들어서라도 줄 거 같은데~
한번 말해봐. 그렇게 우울해 하지 말고.”
라고 그냥 던져버리고 자버렸다.
부러워하라고 그렇게 자랑하던 남편한테나 징징거릴 것이지
왜 여까지 와서 히스테리 부리고 있는 건지.
이미 모두가 원하는 것보다도 더 받아줬고 함께 살 빼자고 같이 운동하자고 했는데 심해도 너무 심했다.
도저히 받아 줄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니었다. 거대 징징이었다.
*****
이 맘톡방에서 제일 나이가 연장자면서도 동생들을 포옹하지 못할망정 말실수했다고 비꼬기까지 하는 걸 보니 진짜 꼴 보기 싫었다.
본인도 마찬가지일지 모르겠지만 이미 많은 사람이 그 언니가 밉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이후는 내 말 이후로 조용해 졌고, 오히려 내 개인 카톡이 시끌벅적거렸다.
‘나이스 샷’ 이란다.
비슷한 반응으로 ‘언니 만만세’라고 한다.
또 이렇게 정의로운 육아 생활을 아니 육아맘 생활을 시전하고 있었다니 뿌듯하면서도 뭔지 모르게 마음이 씁쓸한 밤이었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앰버서더에게 응원 및 소감글 작성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