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로 힘들고 지칠 때 도와주고 위로가 되는 엄마들이 많다.
육아하면서 왜 동지애가 생겨나는지 너무 잘 알 거 같다.
말로만 듣던 군대에서 마치 전우애가 피어나듯.
못할 거 같았던 육아도 그런 동지들 덕에 하루하루 버티고 이겨내는 나 자신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하면서도 좋았다.
꼭 혼자라고만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가족 말고도 힘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친구도 아니고 나와 연관성도 없는 사람들이 내 정신상태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순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물론 그중에서도 관심을 넘어서 참견까지 하는 사람이 꼭 한 명씩은 있다.
웬만하면 그냥 지나치려고 하지만 항상 내가 쳐 놓은 선을 넘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
맘카페를 통해 알게 된 소수정예 오픈채팅방 한 곳에 들어가게 되었다.
엄마들이 모여 있는 소위 맘톡이라는 곳이다.
이 방이 내가 처음으로 들어갔던 맘톡방이었다.
처음에는 관심 없었는데 임신하고 뭘 사야 하는지 막막할 때, 들어가서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었다.
심지어 눈팅만 해도 정보가 어마어마하게 떨어지는 곳이라 뭐가 되든 간에 나는 여기에 꼼짝없이 붙어있어야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엄마가 있었는데, 본인을 아이 둘 엄마이자 경력맘이라고 자부하며 소개하고 있었다.
그 엄마가 출석 도장을 찍듯 매일 하는 말은 “모르는 거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봐~ 내 말대로 해서 틀린 거 없으니까.”였다.
그러면서 가끔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나 참견도 했지만, 나한테까지 강요하거나 해가 되지 않았고, 그곳에서 불쾌해하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했다.
**
맘톡에서 그 엄마의 역할은 딱 정해져 있었다.
종종 핫딜 링크를 물어와 뿌리기도 하고, 검색하다가 혹은 본인이 알게 된 정보는 당연한 듯 내가 있는 단톡방에 올려주었다.
안 그래도 뭐 하나 하는데 버벅거리고 부산스럽게 손이 많이 가는 초보 엄마들에게는 확실히 단비 같은 정보들이 많았다.
핫딜 링크의 물품을 사고 나서는 모두 비슷한 행동을 했는데, 바로 후기 아닌 후기를 올려주는 것.
어느새 그 방의 규칙이 되어 있었다.
“추천해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너무 잘 쓰고 있어요!
우리 애한테는 찰떡인 듯.”
할 수 있는 온갖 예쁜 수식어를 첨가하여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게다가 그 고마운 마음은 그 엄마의 아이들 사진이 올라올 때도 똑같았다.
아무래도 도움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다른 엄마들의 아이들 사진보다도 더 오바스럽게 반응을 쏟아냈지만 결국은 아이가 예뻐 죽겠다는 같은 의미의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 엄마는 그런 반응을 너무 좋아하기도 했지만, 즐기는 모습도 보였다.
그뿐이랴, 초보 엄마들의 다급한 SOS를 해결해 주려는 1등 공신이기도 했다.
물어볼 수 있는 곳은 다 물어보고 찾아볼 수 있는 건 다 찾아봐도 내 속을 팍팍 긁어주지 못한 시원치 않은 말들뿐일 때가 있다.
그럴 때, 엄마들이 모여 있는 곳에 사정을 올리면 비슷하거나 똑같이 경험한 경험담을 들려준다.
그게 확실히 도움도 되지만 이상하게 힘이 되기도 한다.
그걸 역시 그 엄마가 도맡아 하기도 했다.
종합적으로 그 엄마가 그 안에서 말하는 모든 것에 맹신하게 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런 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회사에서 왜 경력자를 우대하는지 알 수 있었다.
역시 초보 엄마들 보단 이미 한번 키워본 경력은 무시 못 하는 게 확실하다.
***
문제는 내가 SNS에 올린 사진 한 장에서 비롯되었다.
아이의 모습이 너무 예뻐 오랜만에 사진을 올렸는데, 거기에 살짝 비친 아기 용품을 본 것 같았다.
단순히 내 눈에 그게 너무 예뻐 보여서 산 거였다.
단톡방에는 다른 디자인의 같은 물건이 핫딜이라고 올라온 적 있었는데, 나는 그게 너무 별로였다.
그래서 여기저기 몇 날 며칠을 찾아보다가 예쁜 것을 구입했다.
어차피 내돈내산이니 내 만족이 중요했다.
“저기 있잖아.
내가 사라고 했던 링크 못 봤어?”
개인적으로 온 연락에 한 번,
전체적으로 이 질문이 지금 나한테 하는게 맞는 건가 하는 것에 또 한 번
이렇게 두 번 놀랐다.
워낙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니 이러겠지 했지만 기분이 이상했다.
하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냥 또 평소에 하던 대로 참견하려나 보다 하고 가볍게 생각했다.
“아! 안녕하세요!
네, 봤는데 다른 것이 좀 더 예뻐 보여서 이번에는 다른 걸 샀어요!”
“아니, 왜?”
?????
왜라니……
예뻐서 샀다고 얘기했는데 왜 되묻는 건지 의아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싸했다.
나는 이런 싸한 기분이 단 한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이거 100% 나한테 시비 걸려고 그러는 거다.
그게 아니면 도대체 나한테 뭘 하는 건가 싶었다.
“아니, 왜?”라고 돌아온 답변이 이미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받은 카톡 말투 뉘앙스로 느끼기엔 너무 예민하게 굴어 대고 있는 거 같으니,
나 또한 준비태세를 취하게 되었다.
“네? 그냥 제 눈에 예쁜 걸 산 거 뿐이에요. 무슨 문제 있나요?”
“아니~ 있잖아.
이래서 초보 엄마 티 팍팍 난다.
내가 아기한테 괜찮은 소재인지 아닌지
다 판단하고
편하게 사기만 하라고 올린건데,
왜 말을 안 들었어~”
“하……. 그냥 예쁜 거 산건데요.”
“아유,아직 철이 덜 들었네.
애 엄마가 왜 그래~
예쁜 게 다가 아니잖아.”
와, 이건 그냥 벽이랑 얘기하는 거랑 다를바가 없었다.
뭔가 이야기가 계속 같은 말이 비슷하게 반복되는 느낌이었다.
같은 한국 사람인데 말이 안 통해도 이렇게 안 통할 수 있나…
그렇게 할 일이 없나, 아니 자기가 엄청나게 사랑하는 아이 육아나 할 것이지
쟤한테는 본인 아이에게 줄 관심까지도 나에게 줄 만큼 그렇게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었나…
별의별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고민 되었던 건 지금 저 말도 안 되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하는지였다.
****
그러다 갑자기 현타가 씨게 와 버려서 쌩까기로 했다.
그렇다, 쌩까는 게 답이지.
던져 놓고 아이와 한참 놀다 보니 시간이 많이 지나게 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핸드폰을 보니 여러 개의 메시지가 있어 확인했다.
진짜 가관이었다.
“초보맘들은 이래서 안돼.
실수가 실수 인지 모르거든.
그래서 경력자인 내가 알려줬잖아 “
“아휴~ 이번에는 그냥 넘어 갈게.
근데 다음부터는 뭐든 내 말 듣고 해.“
“그게 맞아.
정 사고 싶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
와… 이정도면 뭐 둘째맘 부심을 넘어서 마치 술주정 같았다.
내가 자기 사라는 거 안 사는 게 저렇게 속상한 일인가?
그래서 술까지 마셨나보다.
그러지 않고서야 제 정신으로
저런 쓰레기 같은 소리를 할 수 있나.
“술 드셨어요?”
못 볼 꼴 봤구나 하고 그냥 지나가면 되는 거였는데, 너무 짜증이 나서 물어봤다.
우리 엄마가 모르는 건 물어보라고 했다. 그게 창피한 건 아니라고 했다.
“뭐라고?”
“술 드셨냐고 물어봤는데요?”
“생각해서 말해주니까
무슨 말이 그따위야.
개념 밥 말아 먹었어?”
“응? 어디서 개념 타령?
얼굴도 모르는 사람한테 말 까는 것도 그렇고
꼰대 짓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누가 누굴 보고 개념을 말아먹었냐고 그래.”
보내고 바로 차단해버렸다.
마피아도 걸리면 게임이 종료되듯이 또라이를 무리에서 찾았으니 바로 손절치는 게 당연한 이치다.
차단을 눈치 챘는지 이번엔 단톡방에서 뭐라하는 거 같았다.
다들 무슨 일인지 분위기 파악 중이길래 그러던지 말던지 그들은 나에게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고 모든 사람이 나와 연관은 없었지만, 어차피 그 엄마는 나를 희대의 샹년으로 만들 것 같으니 그냥 뒤도 안 돌아보고 방나가기를 눌렀다.
*****
외로운 코시국에 조동 하나 없어 같이 힘이 되어 보자고, 위로가 되어 보자고 들어간 모임 톡에서 웃기는 짬뽕 덕에 나는 또다시 외로워졌지만 그래도 피곤한 스타일을 옆에 두고 더 스트레스받고 힘들어서 우울해지느니 그냥 혼자가 되는 편이 더 나을 듯싶었다.
더욱이 저 사람 말고도 힘이 되는 사람들은 널리고 널렸고, 위로되는 육아 동지들 또한 이미 많고 많으니 아쉬울 게 없었다.
그러니 영원히 빠이.
그렇게 잼민이 때나 하는 영웅 놀이하는 너는 안녕이다.
근데 핫딜하고 정보 못 보는 건 아쉬워하는 나란 인간.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앰버서더에게 응원 및 소감글 작성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