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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시 중헌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나에게 칭찬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아기 낳기 전에는 “옷 잘 입었다”, “피부 좋다”, “예뻐졌다” 등 나를 위한 칭찬을 들었는데, 사실 나는 그때마다 칭찬의 의미를 정밀 분석하고 파악해가며 기분이 좋았다 나빴다 오르락내리락했다. 피곤하게도…

근데 아기 낳은 후가 되니 “애기 왜 이리 예쁘게 생겼어요”, “벌써 이걸 해요? 대단해” 등 아이를 위한 칭찬은 그 의미를 찾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냥 좋다.

그 말에서 주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은 예의상 한 말이었다 해도 마냥 좋은 티 팍팍 내고 있는 나를
하루에 수도 없이 발견하게 된다.

가끔 그 이야기를 들으려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일부러 찾아간 적도 있다.

은근히 자랑하기.
그리고 예쁜 말을 들어보기.

어느 순간 스트레스 해소가 되기도 했다.

누구나 제 자식이 예쁜 건 당연하다.

*

임신했을 때는 딸을 원했다.

집안에서 유일한 엄마 편이자, 밖에서는 엄마의 절친인 엄마의 분신.

거기에 존재만으로 아빠를 한순간에 바보로 만드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딸을 원했다.

그래서 아들이란 이야기를 듣고 살짝 아쉬워했으나 아들이든 딸이든 건강이 최고지! 라며 마음을 달랬었다.

이상하게 많은 사람의 실망하지말라는 섣부른 위로 때문에 더 짜증 난 게 있어서
어디 가서도 아들이 뭐가 어때서! 하며 더 씩씩하게 그랬던 것도 있었다.

하지만 태어난 지금은 엄마와 아빠를 그냥 바보 멍청이 해바라기로 만드는 능력을 갖춘 아들.

키워보니 딸만큼 예뻐죽겠고 깨물어주고 싶다.

그리고 아들도 내 껌딱지니 이 아이가 바로 내 편, 내 분신이지 싶다.

**

그렇게 하려고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우리 모임에서 모이는 아가들의 성비는 딸 4명, 아들 1명이었다.

바로, 우리 아가가 청일점!
아들 아가는 우리 아가 단 한 명이었다.

아가 시절에는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그래도 청일점이라는 게 은근 기분 좋아지면서 신이 났다.

온종일 계속 해피모드 쌉가능.

유일한 아들이다 보니 공동육아에서도 아들이 어떤지 딸 맘들은 궁금해했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 딸들은 어떤 놀이를 하며 노는지 너무 궁금했다.

어른들이 아들은 힘도 더 세고 난리 치며 노는 반면 딸들은 얌전하고 진짜 공주처럼 논다고 얘기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막상 보니, 지금 이 시기에는 딸이든 아들이든 구분 없이 노는 것도 똑같고 행동도 비슷했다.

단지, 모든 것은 성향의 차이!

그렇게 모여 공동육아를 하고 집으로 가려고 하니 비가 무섭게 쏟아져 내렸다.

집에서 출발할 때는 비가 오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집으로 가려 하니 마치 더 놀다 가라고 신호를 주듯 비가 와주는 거라고 엄마들 모두가 똑같이 의미 부여까지 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계획에도 없었던 카페 가기가 생겨버렸다.  

음료를 시키고 돌아오니 우리 옆 테이블에 앉아 계셨던 아주머니들이 이미 아가들을 보고 말을 걸고 계셨다.

아우~ 다 딸들인가 보네.
하나같이 너무 예쁘다.”

우리 아들도 포함해서 딸이라고 해주니 하늘이 아무리 어두컴컴하고 비가 무섭게 내린다고 해도 이 시간만큼은 내 기분이 높은 파란 하늘을 한껏 날아올라 빛이 퐁퐁퐁하는 기분이었다.

마치 필터 빵빵하게 채운 셀카를 찍었을 때 오로라가 예쁜 듯한 그런 느낌.

옆에 앉아 내 표정을 보고 있던 엄마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그렇게 좋아?”라고 말할 정도로 티를 풀풀 내고 있었다.

강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허허거리며 아저씨 웃음을 내비쳐 보였다.

아들 엄마들은 똑같이 극공하는 부분.

예의상이든, 인사치레든
그게 뭐든 간에 아들인데 딸이 아니냐고 물어보는 질문에 어찌 안 좋아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상하게 이 말이 무조건 자랑으로 되더라.

그만큼 예쁘게 생겼다는 셈이니까 그런 것 같다.

***

“아우~ 아줌마! 얘는 아들이에요!”

아이들을 보고 있던 엄마 중 한 명이 그걸 콕 하고 집었다.

그 순간 아이들을 보고 예쁘다고 했던 아주머니는 살짝 민망해했다.

표정이 살짝 땀삐질,
‘아아-’ 하며 할 말을 못 찾고 있었다.

우리 아이에게 손가락질해가며 버럭 이야기하는 그 모습은 내가 느꼈던 기분 좋은 감정들을 한순간에 착-하고 가라앉게 했다.

나 또한 속으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굳이 그걸 꼭 콕 집어줘야 했나 싶었다.

어차피 어릴 때야 남자아가인지 여자아가인지도 모를텐데…
쟤도 참 어지간하다 싶었다. 

“네네~ 맞아요. 우리 아가만 아들입니다.
청일점이요. 하하.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나 세상에! 그래요?
오히려 나는 얘 때문에 다 딸이구나 생각한 건데~”

“아우, 아줌마~ 누가 봐도 아들인데 딸이라고 그래요~
그죠 언니들~
누가 봐도 딸은 아닌데……”

아~ 저 엄마가 선 씨게 넘네.
왜 저러는 거지 진짜.

분위기 진짜 뭐 같이 만드는데 선수네.
지가 뭔데 그걸 굳이 떠들어대.

나는 최대한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시끄러운 속마음과 다르게 아무런 대꾸도, 일상적인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저 엄마는 저번에도 이 비슷한 말과 행동을 한 적 있었다.

문화센터 강의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마트에서 일하는 직원분이 우리 아이를 보고 딸이냐고 물었고, 덧붙여 눈이 너무 예쁘다고 한껏 칭찬까지 곁들여 얘기했었다.

특히, 우리 아이가 새로운 사람이 여럿 있으니 빤히 보고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중에 우리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고 생각한다.  

그때도 저 엄마는 나를 대신해서 딸이 아니라 아들이라고, 누가 봐도 아들이라고 하면서 혼자 열심히 설명하고 떠들어댔다.

그때는 그냥 지나갔지만 계속 그러니 사실은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분명 본인 딸에게 예쁘다고 하지 않아서 이러는 거다.
그거 밖에 답이 나오지 않았다.

어디 한번 두고 보자.

****

순식간에 내 표정이 굳었는지, 내 옆에 있던 엄마가 내 등을 슬슬 쓸어주며 입모양으로 참으라고 해줬다.

음, 뭐랄까…
순간 치밀어 오르듯 화가 난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도 기분 나빴으니 너도 똑같이 만들어주기 위해 한마디는 해줄까 생각하는 그 시점에 타이밍 좋게 쓸어주는 구원의 손길이었다.

덕분에 공격적으로 대하고 싶었던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아무 말 하지 않고 상황을 계속해서 지켜보는 걸 선택했다.

이성적으로 돌아오니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고, 이 모임도 깨고 싶지 않았다.

지금 나약한 한 인간의 순간적으로 나온 질투가 나를 아무리 공격해도
나는 소나무요
나는 돌이요
지나가는 바람이 내 옷자락을 펄럭였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짧은 시간에 격하게 도를 닦았다.
종교는 없지만, 이 순간만큼은 나는 종교인이었다.

어쨌든 유일한 오프라인 모임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다.

사람이 모이면 이런 저런 사람들이 다 모인다 생각하면 별일 아닌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시원한 커피를 들이켜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아들인데 딸이라고 얘기들어서
기분 안 좋죠~?”

“아우 자기야, 쫌 눈치 좀 챙기자~
그리고 아까부터 애기 칭얼거리는 것 같으니까
본인 애기나 신경써야 할 것 같아~”

시비 아닌 시비를 걸어오는 그 엄마에게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모임 맏언니가 먼저 제재해주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눈짓을 줬다.
마치, 원래 이런 애니까 그냥 이렇게 지나가자는 느낌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내가 점점 표정이 좋지 않아 분위기를 흐리고 있었던 것만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면서도 내 편을 들어주면서 저 주댕이를 막아주니 속이 후~련 해지기도 했다.

만약 아무도 해주지 않았다면 비꼬는 말로 싸우고 나서 아이를 들쳐 안고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위험하게 집으로 왔을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

그날 모임이 끝난 이후 한동안 모임은 없었다.

그리고 우리 아이가 감기에 걸려 2주간 문화센터에 가지도 못했다.

그러던 와중 그 모임에서 제일 막내인 엄마가 소식을 전했다.

“언니! 그날 이후 문센에서
그 언니가 또 말실수하고
왕언니 엄청나게 화내고 싸우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결국 끝이 이렇게 되었다.

사람은 뿌린 대로 거둔다고 했다.
말로 열심히 뿌려대더니 말로 그대로 혼나기도 해야겠지.

그래도 그 사람은 본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제대로 파악도 못할 것이고, 오히려 싸운 것에 대해 여기저기 욕하고 다니고 있겠지 싶었다.

근데, 한가지 아쉬운 건 왕언니랑 질투의 여신이 싸울 때 옆에 없었다는 점.
그 때 있었으면 왕언니를 대신해 내가 본때를 보여 줬을 텐데…….

또라이를 훌훌 쉽게 털어 버리고 싶을 때는 이 방법만 한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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