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아이의 갑상선 자극 호르몬 수치(feat. 순천향대병원 이동환 교수님)
갑상선이 뭔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잘 몰랐다. 관심이 없었다고 하는 게 더 맞겠다. 건강검진을 가면 갑상선에 혹이 많다고 했던 거, 임신 기간 중 갑상선 호르몬 수치 때문에 약을 처방받았던 게 내가 접했던 갑상선의 대한 인상의 전부였다. 뭘 깊게 알아본다는 건 그게 나한테 어떤 이익을 가져다준다거나 반대로 얼마큼 데미지를 줄 때일 텐데… 건강검진에서 갑상선에 혹이 많은 건 흔한 일이고고 임신 중 갑상선 호르몬 수치는 약을 먹으면 나와 아이에게 별문제가 없다고 들었기에 더 자세히 알아보지 않았던 것 같다.
조리원에서 퇴소하고 본격적인 육아에 돌입해 아이를 돌보던 중 출산을 했던 병원에서 전화를 받았다. 소아청소년과 선생님이 전화를 주셨는데 아이의 갑상선 수치가 불안정하다고 하셨다. 확실히 문제가 있을 만한 수치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상 범주도 아니라고. 본인의 아이라면 큰 병원으로 데려가 검사를 받을 것 같다고 하셨다. 큰 병원을 가려면 1, 2차 병원에서의 소견서가 필요하니 빠른 시일 내에 방문하길 바란다고 말씀하셨다.
※ 정확히 말하자면 갑상선이 아니라 갑상선 자극 호르몬(TSH) 수치였으며, 우리 아기는 7점대를 보였던 것 같다. 정상이라면 5점대 미만, 비정상이면 10을 넘어선다. (이 수치는 2019년 기준이다.) 정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몇백 단위의 숫자가 나오기도 한다. 갑상선 자극 호르몬. 그러니까 갑상선 호르몬이 잘 나오도록 자극해주는 호르몬인데, 문제가 있을 경우 갑상선 호르몬 분비에 문제가 생겨 아이의 성장,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태어난 아이 모두 피검사를 통해 이 갑상선 자극 호르몬이 잘 나오는지 확인한다. 사실, 이 내용은 출산 전 사놓은 책에서 이미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간호사 출신 선생님이 아이의 발달 사항에 대해 구체적으로 적어놓으신 책인데 이 호르몬 수치를 낮은 개월 수에서 꼭 확인해봐야 한다고 나와 있어 밑줄까지 쳐놓은 터였다. 하지만 변명해보자면 워낙 임신 기간 중 온갖 이벤트를 겪었던 터라 기억을 할 수 없었다. 또 임신을 처음 겪다 보니 공부해야 할 것, 알아야 할 것 투성이였다. ※
선생님 전화를 끊고 바로 스마트폰에서 검색창을 켰다. 검색해보니 온갖 무시무시한 말들이 적혀 있었던 것 같다. 그날로 포털 사이트에 검색 결과로 나오는 갑상선 호르몬 관련 글은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때 알게 되었다. 갑상선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가 정말 많다는 것. 갑상선이 아예 없는 아이부터 호르몬 약으로 수치가 조절되지 않는 아이, 그리고 정말 다행스럽게 커가면서 호르몬 수치가 제자리로 돌아오는 아이 등. 또 정말 다행인 건 웬만한 아이는 약만 잘 먹으면 평생 호르몬 수치를 조절해 살아나갈 수 있다는 것. 반대로 말하면 평생 약 먹어야 하는 아이가 된다는 것. 어렴풋이 대학 때 갑상선 약을 먹었던 친구가 생각이 났다. 일상생활을 잘하던 친구였고 술도 좋아해서 즐기는 친구였다. 약을 왜 먹냐고 물어봤을 때 평생 먹어야 하며, 안 먹으면 무척 피곤해진다고 대답했다. 속으로 그럴 거면 술이나 먹지말지,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무지했다.
병원에서 받은 소견서를 가지고 대학병원에 예약 해야했다. 나는 경기도 화성시에 거주하고 있어 가까운 대학 병원 중 내분비과 선생님이 계신 곳을 알아봤다. 갑상선 관련 진료는 내분비과를 방문해야 했다. 두 군데에 전화했다. 한 곳은 3개월 후, 한 곳은 6개월 후에나 예약이 가능하다고 했다. 마음이 초조해졌다. 당시 아이는 태어난 지 한 달 남짓 되었을 때이므로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강남에 있는 대학병원부터 쭉쭉 위로 올라가며 강북에 있는 병원까지 남편과 함께 전화를 돌렸지만 가장 빨리 예약할 수 있는 날짜는 한 달 후였다. 이 질환은 문제가 있으면 진단을 받고 하루라도 빨리 약을 먹어줘야 정상 발달 속도를 따라갈 수 있어 한시가 급했다.
그러고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순천향대 병원에 전화했을 때 바로 돌아오는 평일, 이동환 교수님 진료 시간에 맞춰 외래로 방문하라는 답변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도 찡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이동환 교수님은 갑상선 질환과 관련해 권위자셨고 국가에서 막 태어난 아이들에게 이 검사를 필수로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놓으신 분이었다. 그 때문에 예약도 꽉 차 있지만 무엇보다 시일이 급한 질환이므로 외래 환자를 늘 받으시는 것 같았다. 그러고는 또 느꼈다. 왜 서울 집값이 비싼지, 왜 서울에 살아야 하는지. (물론 지금 이동환 교수님은 천안 단국대병원에서 근무하시는 걸로 안다. 이동환 교수님이 직접 운영하시는 네이버 밴드명: 갑상선이 아픈 아이들)
우리 아기는 이동환 교수님을 두 달 간간 두 번 뵌 끝에 ‘TSH 수치가 정상이네요’라는 말을 듣고 이 질환과 멀어졌다. 처음 방문했을 때 정말 많이 긴장했다. 질환 자체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100일도 되지 않은 아이와 오랫동안 밖을 나가 있는 게 처음이었기 때문에 모유 수유를 할 수 있을지, 대기시간을 예측할 수 없어 할 수 없다면 분유를 얼마큼 가져가야 할지, 아기가 멀미하지는 않을지, 괜히 병원에 가서 감기에 걸리지는 않을지 온갖 걱정이 몰려왔다. 그런데 최대 복병은 간호사 선생님이었다. 갑상선 호르몬 수치를 확인하려면 피검사를 해야 한다. 아기는 핏줄이 잘 보이지 않아 웬만한 베테랑 간호사 선생님도 핏줄을 찾기가 힘든가 보다. 첫 방문의 간호사 선생님은 아이가 너무도 평화롭게 채혈해서 별생각이 없었는데 두 번째 방문 때는 정말 끔찍했다. 다른 선생님이었는데 아이의 양 팔도 모자라 양 발까지 바늘을 다 찌른 끝에 겨우 채혈을 마칠 수 있었다. 머리로는 이해를 하지만 이 작은 아이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지 정말 야속했다.
이동환 교수님은 방문 전 미리 영상으로 뵈었는데 실제로 뵈니 더 나이가 들어 계셔서 놀랐다. 이 질환의 증상 중 하나인 혀 비대증을 확인하시려고 우리 아기의 혀를 봐주신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남편과 종종 이때를 이야기하곤 한다. 이런 의사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당시에 가입하게 된 교수님의 네이버 밴드를 아직 탈퇴하지 않고 있는데, 연세가 꽤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간절하고 막막한 마음을 이해해주시는 듯 모든 질문 글에 일일이 답변해주신다. 선생님이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진료도 계속해주시면 좋겠다.
이외에도 우리 아기에게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먼저, 청력 검사. 한 쪽 귀가 fail이라고 떠 있는 검사지를 받았을 때, 병원 간호사 선생님이 종종 이런 경우가 있으나 재검사하면 거의 정상이라고 하시는 말씀은 거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장애를 가진 아이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 상상의 나래가 거기까지 펼쳐졌다. 그리고 병원을 퇴원할 때 아이 신체의 이곳저곳을 살펴보신 후, 엉덩이 윗부분에 몽고점과 함께 털이 살짝 있으니(딤플 소견) 소아청소년과에 방문해서 검사를 한 번 받아보라고 하셨을 때. 참… 어떤 병의 의심 소견만으로도 부모의 마음은 무너지는 것 같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길래 우리 아이에게 이런 병이 올 수도 있는 것일까 생각하게 된다. 또, 설소대 수술(혹은 시술)은 조리원에서도 많이 해준다고 봤는데, 윗니에 붙어있는 상설소대는 5-6세쯤 넘어지면서서 찢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그래서 우리 아기는 현재 두꺼운 상설소대 때문에 앞니가 벌어져 있다. 딸기 혈관종도 있다. 태어난 지 1년까지 없어지지 않으면 나중에 시술해야 한다 들었는데 5살 정도 되니 옅어지고 있다. 이 모든 내용은 하정훈 선생님의 책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대망의 태열. 위 나열한 것에 비해 가장 데미지가 작지만 가장 심각해 보이는 것. 아이의 피부 역시 굉장히 왜곡되어 미디어에 나온다. 유아용 로션 같은 광고에 나오는 아이들은 이미 태어난 지 꽤 된 아이로 피부가 그렇게 보송해 보일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나는 더 걱정을 많이 했던 것 같아. 우리 아기의 피부는 검붉고 오톨도톨한 것들이 나 있고, 심지어 피지 같은 것도 보이고… 그래도 조리원에서 퇴소할 때까지만 해도 그나마 괜찮았던 피부가 집에 오자마자 울긋불긋하게 변하면서 진물이 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태열. 그 모습이 아주 임팩트 있어 또 죄책감이 들게 되었다. 병원에서도 이런 아이는 50%의 확률로 아토피가 생길 수 있다고 말할 뿐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지 않았다. 그냥 시원하게 해주라는 것뿐. 그래서 뜨거운 여름이었던 당시 우리집 온도는 20도를 유지하게 되었다. 태어나서 그렇게 시원한 여름은 처음이었다.
아이를 낳은 후 세상에 이렇게 많은 바이러스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새삼 그런 바이러스를 모두 이겨내고 사회생활을 하는 나와 주변 지인이 대견하고 대단하게 느껴질 만큼 아이는 바이러스에 취약한 존재다. 아이와 함께 이 바이러스를 이겨내면서 아이가 아픈 건 엄마의 잘못이 아니라 그냥 이 세상을 살아 나가는 과정일 뿐이라는 걸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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