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
어른들 안에는 아이가 산대: 내면 아이가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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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 대한 오해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기 전까지 저는 제가 화가 별로 없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정서적으로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거나 긍정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욱하거나 성격이 불같지는 않았거든요. 오히려 좋은 게 좋은거라 하며 살아가는 편이었죠. 오죽하면 대학생 때 상담을 받을 때 화를 내보라는 주문을 받거나 과거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에게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니까요? (물론 실패했었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도 내가 어떤 엄마가 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은 막연했던 거 같아요. 아이는 사랑스럽겠지, 우리 가정은 행복하겠지… 그리고 나는 아이를 사랑하는 좋은 엄마겠지. 뒷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알 것 같지요?

아이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만 어느 날, 아이 손을 찰싹 때리고만 어느 날… 도대체 (남편에게 외에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이런 격한 감정은 어디에서 온 걸까 고민해 보기 시작했지요. 이렇게 작고 약한, 그리고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존재 앞에서 나는 왜 화가 나는 거지?

💌 고민의 출발점은 어린 시절, 내면 아이 

아이를 낳고 좌충우돌 키우다 보면 별수 없이 어린 시절 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 부모님은 어떻게 했더라?’에서 시작해 ‘다른 엄마들은 예뻐 죽겠다는데 왜 나는 나에게 달라붙는 아이가 힘든 걸까?’ 를 거쳐 ‘나는 어떤 아이였지?’ 로 생각이 옮겨 갈 즈음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육아에 대한 고민을 안은 채 심리학을 배우게 됩니다.

대학원 진학쯤, 첫째를 버겁게 키워가며 꽂혔던 단어가 바로 내면 아이였어요. 내면아이의 사전적 정의를 먼저 살펴볼게요. 내면 아이 분야의 권위자 John Bradshaw의 저서 ‘상처받은 내면 아이 치유’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어린아이의 성장이 저지되거나 감정이 억제되었을 때, 특히 화가 나거나 상처받았을 때의 감정들을 그 아이가 그대로 가진 채 자라서 성인이 된다면, 화나 있고 상처받은 그 아이는 어른이 된 후에도 계속해서 그의 내면에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내면의 아이는 그 사람이 성인으로서 행동하는 데 계속해서 지장을 주게 된다는 것이다.”

라고, 소개되어 있는데요, 한 마디로 무의식 속에 남아있는 어린 시절의 아픔과 상처를 대면하고 힘을 가진 어른이 된 내가 그때의 나를 살피며 재양육하자는 상담 기법입니다.

제가 꽂힌 것은 이러한 내면 아이를 만나는 일련의 과정 및 기법이 아니라 내면 아이라는 개념 그 자체였던 것 같아요.

그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면 오은영 박사님이 금쪽이의 문제를 금쪽이 부모의 문제로 가져와서 엄마 아빠의 애착이나 어린 시절 상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지요.

요즘은 뇌과학이 발달하며, 무의식의 상당 부분… 내면아이 이론의 근간이 된 심리학자 융의 이론, 대상관계이론, 교류 분석과 같은 이론들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빈 곳을 이야기로 채워가는 가변적인 것인지를 밝혀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면 아이란 없다’라는 어느 신문 칼럼의 입장도 이해가 갑니다. 현재의 문제를 과거로 치환해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고 지금의 나를 사랑하고 현재를 살라는 그의 칼럼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적어도 아이를 기르는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어린 시절의 나, 대물림과 같은 것들에서 자유롭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그다지 즐겁고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내지 못한 입장에서 아이들에게 좋은 시간을 만들어 주려고 애를 쓰고 노력하는데 아이들이 투정을 부리고 짜증을 내면 화가 납니다.

이것은 엄마의 노고를 몰라주고 배부른 투정을 부린 아이들의 잘못일까요? 

아이들은 그냥 힘들고 짜증이 나니까 표현을 한 것뿐입니다. 이것을 엄마의 노고에 대해 인정을 해주지 않는 것처럼 느끼는 것은 저의 이슈인 것이죠.

이런 것들을 인지하기 시작하며 저의 육아는 많이 바뀌기 시작했답니다.

💌 어른들 안에는 아이가 산대

이곳에서 아이를 키우며 그림책과 함께 생각하게 된 것들을 나누는 몇 주간의 여정을 시작하기에 앞서 ‘어른들 안에는 아이가 산대’라는 그림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그림책은 누구나 안에 아이를 품은 채 어른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데요. 앞에서 말했던 내면 아이처럼 상처받은 아이만을 말하는 건 아니에요. 장난꾸러기, 장난감 사달라고 떼쓰는 아이, 동생이 미운 아이처럼 어떻게 보면 철이 없고, 어떻게 말하면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어른들…

처음 이 책을 봤을 때는 어른인 나의 입장에서 우리 안에는 어떤 아이가 살고 있을까? 생각하며 봤다면 이번에 이 글을 쓰며 다시 보니 어른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 아이들에게, “이해해 주렴. 어른들도 안에 아이가 있어서 그래.”라고 말해주는 책같이 느껴졌답니다.

나의 사랑보다 더 큰 아이의 사랑을 느낄 때의 마음 같은 걸까요?

그와 더불어, 지금 우리 아이는 안에 어떤 아이를 품은 어른으로 자라나게 될까 돌아보게 됩니다. 부디, 즐겁고 해맑은 아이를 지녔다고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열심히 육아합니다.

내면 아이 이론에서도 그리하여 그림자 아이로 표현되는 상처받은 내면 아이 말고 햇빛 아이라는 개념도 등장합니다. 긍정적인 각인과 좋은 느낌을 대변하는 아이예요.

우리는 대부분 상처와 결핍을 가진 채 자라납니다. 어느 가정이든 마찬가지 일거에요. 완벽한 부모란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마찬가지로 좋은 기억이 없는 사람도 드물 겁니다. 결국 우리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자신이고, 상황은 바뀌지 않더라도 우리의 생각을 바꾸는 것으로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 이것은 희망일까요? 아니면 가혹한 책임 전가로 들릴까요?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가진 폭력성을 너무 잘 알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아이가 어릴 때 이런 저런 문제들로 힘들어 제가 미술치료를 받으러 간 적이 있었고, 어린 시절을 찰흙으로 빚어보라는 주문에 저는 똥을 만들었어요. 구체적으로 생각나는 일상들은 없고 나의 억울했던, 속상했던, 부당했던 사건들에 대한 기억들만 우수수 떠올랐거든요. 그런데 신기하게 그렇게 보고하고 집으로 왔는데 문득문득 어릴 때의 소소한 기억들이 떠오르는 거예요. 놀이터에서 친구들이랑 얼음 땡을 했던 기억, 문방구에서 영아트 팬시용품을 보며 사고 싶다고 생각하던 기억, 차를 타고 바다로 휴가를 가던 기억…

신선한 경험이었어요. 묻어 놓았던 어린 시절의 저를, 그 아이를 기억하고 바라볼 수 있었던?

💌 내 안에는 누가 있나요?

여러분 안에는 어떤 아이가 살고 있나요? 그 친구는 어떨 때 행복하고 어떨 때 짜증이 나는 것 같나요? 정말 나쁜 어른 안에는 나쁜 아이가 살고 있을까요? 움츠린 약한 아이가 살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어떤 유년 시절을 보냈든든 관계없이 지금의 우리가 되기까지 애를 쓴 친구들이 들어있을 것 같아요. 너무 묵직하게는 말고, 그저 산뜻하게 그 친구들을 껴안고 즐겁게 살고 싶은 마음입니다. 부디 내 안의 어린아이를 부정하고 억압하지만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현재의 나를 만들어 준, 기특하고 안쓰러운 친구들로 보듬고 가면 내 내면이 한 뼘 성장할 수 있어요.

지금은 나의 단점으로 느껴지는 지나치게 눈치를 보는 모습,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자 너무 애쓰는 모습, 마음을 잘 안 여는 모습 등등… 이런 모습들이 과거 어느 시점에 안전하지 않고 힘들던 환경에서 무던히 나를 지켜낸 꼭 필요했던 모습일 수 있잖아요. 덕분에 버텼다. 이제는 너무 그렇게 애쓰고 날을 세우지 않아도 괜찮아. 🙂

육아를 평화롭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게 내 아이가 누른 버튼이고, 어떤 게 이 친구가 누른 버튼인지를 잘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남편의 경우,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무얼 흘리면 불같이 화를 냈어요. 사실 아직 소근육이 발달하지 못한 어린아이가 쏟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잖아요? 그런데 아이가 무지 잘못한 것처럼 느껴지고 화를 내게 되는 것은 아마도 어린 시절 무엇을 쏟아서 무지 혼이 났던 어린 시절 남편의 영향이 아닐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지요?

나의 과거가 나의 육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만 알아도 성공입니다! 거기에서부터 변화는 싹틀 거예요.

묻어두었던 나의 상처를 직면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엄마가 되는 순간, 나의 내면 아이와 나의 아이를 동시에 양육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시고 일석이조 도전!

너무 무겁지 않게, 어른들 안에 있는 아이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는 이 그림책을 찬찬히 읽어 봅시다.

다양한 표정의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내 안에도 다양한 경험을 지닌 아이가 있겠지요? 그 친구를 만난다면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일까요?

실제로 만난다고 가정하고 그 친구를 안아주고 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대부분 젊은 우리는 너무나도 바쁘고 즐겁게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의 상처나 결핍을 인정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같은 판을 깔고, 같은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기가 쉽지요.

저는 지금 충분히 잘살고 있어요. 적당한 성취도 이루고 있고요. 그런데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안합니다.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고, 도태되는 것 같은 불안이 있어요.

어릴 적부터 학업이 뛰어난 언니와 온 가족의 기대를 듬뿍 받던 남동생 사이에 끼어 나의 존재감에 대한 결핍을 느끼며 자란 저는 그것을 채우기 위해 홀로 부단히 노력하며 성장했어요. 어쩌면 정말 그 덕에 이렇게까지 해내며 사는 걸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이제 그렇게 무리하지 않아도 되거든요. 이미 충분한 사람이고, 힘을 빼도 소중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은 하거든요. 

현재의 내가 아니라, 과거의 나와 화해해야 하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너 정말 애썼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너는 소중한 아이야.”

이렇게 내가 듣고 싶었던 말, 내가 누군가의 손길을 가장 필요로 했던 순간이 언제인지를 돌아보는 작업 자체가 나에 대해서 깊이 이해하는 지점이 될 것입니다.

💌 나를 더 사랑해야 하는 이유

그 누구보다도 나를 잘 알고, 나를 지지하는 사람은 나여야지요.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사랑도 받기가 힘들답니다. 그것은 부모-자식 간에도 마찬가지겠지요?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해 노력하기 전에 우리 자신부터 사랑하는 엄마로, 아이 곁에서 보여주도록 해요. 삶으로 보여주는 것만큼 강렬한 교육은 없으니까요.

그리고 나와의 관계가 한결 편안해지면 그것은 분명히 아이들과의 관계로 내려갑니다. 나를 사랑하는 것이 아이를 사랑하는 것 이전에 선행되어야 하는 작업 같아요.

너무 설레지 않나요? 살아가면서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줄을 서 있다는 것이요.

먼저 나를 꼭 안아주고, 위로해주고,  칭찬해주고 나면 그 경험과 에너지를 가지고 내 아이를 더 따스하게 안아주고, 그 마음에 공감해 주고, 있는 그대로… 정말 존재 자체로 사랑해 줄 수 있을 것이라 두 손 입에 대고 외쳐봅니다.

그 과정을 우리, 그림책과 함께해 보아요. 그림책은 정말 내 마음을 너무 잘 알고 비추어 주는 거울이랍니다. 아이에게 양보하지 말고 얼른 책장에서 뽑아서, 도서관에서 빌려서 조용히 나를 위해 읽어 봅시다. 

향이 좋은 커피도 한 잔 가져오세요. 내 마음으로, 내면 아이를 만나러 떠날 준비 되셨나요?

💊 여지민 앰버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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