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연주의 출산에 대한 다소 막연한 환상과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의료진이 최소한으로 개입된 출산을 하겠다는 생각만 해놓고, 정작 출산에 관해서는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무지한 얘기지만, 때 되면 알아서 아기가 나오는 게 출산인 줄 알았다.
진통은 아기가 엄마 몸 밖으로 나올 때 보내는 신호이며, 그때 그냥 낳으면 되는 줄 알았다.
대부분 아빠도 이 정도로만 알고 있지 않을까?
경험이 없다는 것은 무지함이 동반되는 일인 것 같다.
더군다나 당시 출산을 준비하던 제주에서 ‘자연주의 출산’이 가능한 병원은 한 군데뿐이었다.
당시의 자연주의 출산이란 ‘편안한 침실에서 남편과 함께 출산을 진행하고, 출산 직후 캥거루 케어가 가능한, 아기의 태맥을 느낄 수 있는 방법으로 알려져 있었다.
병원 또한 자연주의 출산에 대해 막 홍보하며 만들어 가는 단계였기 때문에, 당시만 해도 체계적이고 세부적인 별도 교육이 따로 없었다.
그때 나에게 자연주의 출산은 막연히 수중 분만이거나 일반 분만실을 떠나 가족 분만실에서 아기를 낳는 정도의 방법이었다(실제로 일반 분만실과 달리 특실과 동일한 대우를 받으며 진행할 예정이었다).
자연주의 출산을 할 때 진통하는 동안 산모 옆에서 도와주고 진행을 도와주는 ‘둘라’라는 존재가 있는데, 이 둘라가 제주에 당시 딱 한 분 계셨다.
그때 둘라 선생님은 제주로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가 코로나 시기도 맞물려 있어서 제주에 있는 병원에서 출산을 진행한 적이 없었다.
선생님은 ‘출산 리허설’이라는 출산 교육을 해 주시고, 남편이 분만실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실제적인 도움이 되는지 알려주고 계셨다.
나는 출산 예정일 열흘 전에 우연히 둘라 선생님의 존재를 알게 됐고, 기적적으로 남편과 함께 출산 리허설 관련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병원 의사 선생님께 출산 시 분만실에 둘라 선생님이 출입할 수 있도록 협조와 허락을 받았고, 이렇게 둘라와 함께 하는 자연주의 출산을 처음으로 제주에서 진행되게 되었다.
제주에서 둘라와 함께 탄생한 자연주의 출산 1호 아이가 바로 우리 제니였다.
‘나의 둘라가 출산할 때 산모와 같이 있다는데, 그럼 준비가 다 된 거나 다름없지! 둘라와 함께 하는데 출산이 얼마나 순탄하겠어!’라고 생각했으니, 내가 얼마나 무지했던 건지…
이렇게 한참 지나고 글을 써보면서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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