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입덧이 너무 심했다. 먹는 음식 냄새에 대해 특히 예민했었고, 향수 냄새, 화장품 냄새, 땀 냄새, 고양이 냄새 등 모든 냄새에도 아주 예민했었다. 입덧하면서 알게 되었던 아기와의 만남은 임신 기간 내내 힘들게 했지만, 돌이켜 보면 아기에게 건강한 음식, 신선한 음식을 먹이고자 하는 몸의 반응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그래도 입덧은 너무 힘든 과정이었다. 우리 엄마는 남동생 임신했을 때만 입덧이 조금 있었지, 나를 임신했을 때는 전혀 없었다고 한다.입덧은 친정엄마를 닮는다고 하던데 나는 냄새, 양치, 토, 체, 상상 등 입덧을 검색하면 나오는 증상들은 다 겪었고, 만삭 때까지 체중은 점점 감소했다.나중에 알고 보니 친할머니는 물만 드셔도 입덧할 정도로 만삭 때까지 무척 힘드셨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나의 외면이나 내면이 친가랑 많이 닮았다고 들으며 자랐는데 입덧까지 닮았던 것 같다.내가 너무 입덧으로 힘들어하니 산부인과 진료를 받을 때 담당 과장님께서 너무 힘들면 입덧약을 처방해 주시겠다고 했다.처음에는 1~2알로 시작했는데, 약을 먹은 후만 조금 편안해질 뿐이었다.입덧약은 비급여로 약값이 꽤 비싼 편인데 1알에 1,200원 정도 꼴로 약국마다 다른 걸로 알고 있다. 비싸더라도 입덧약도 수액도 안 듣는 사람이 있는 걸로 들었는데 그나마 잘 드는 걸 찾아서 다행이라고 생각이 든다. 다음 진료 때 약을 먹은 후 어떤지 물어보셨고, 약을 먹으면 그나마 조금 나아진다고 말씀을 드려서 약의 최대치인 하루 4알을 처방받았고, 입덧 수액이 있으니 맞아보길 권유하셔서 수액도 맞아보았다.역시 주사가 최고인지 입덧약을 복용해도 나아지지 않던 나의 입덧은 수액을 맞자, 입덧이 끝난 것처럼 속이 편안해졌다.다만 아쉬운 것은 지속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도 약보다는 지속력이 길어서 시간이 있을 때는 병원에 방문하여 입덧 수액을 맞으며 하루를 버텼다.임신하면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저녁을 먹은 뒤 8~9시가 가장 많이 졸렸는데 이때를 놓치면 원래 있던 불면증이 더 심해져 새벽 3~4시쯤에 잠들고, 아침 7~8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했었다.따져보면 하루에 3~4시간 정도 잤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지금 내 옆에 잠들어 있는 테오도 잠이 없다.임신 전에는 매운 음식 자체를 잘 먹지 못했었는데 입덧 덕분인지 청양고추도 아삭아삭 베어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매운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강철 입맛이 되었고, 계란 노른자와 생크림으로 만든 까르보나라를 일주일에 3번은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느끼한 음식을 좋아하던 입맛은 1달에 1번 먹을까 말까 하는 입맛으로 바뀌고 말았다. 지금도 크림 파스타 정도만 먹을 수 있다. 결정적으로 마라탕과 훠궈를 진짜 엄청 사랑했는데 마라탕 상상만 해도 토가 나와서 마라 단어 자체가 금지였다. 마라탕은 출산 100일 정도 지나자 조금씩 먹을 수 있게 되었지만, 훠궈는 아직 도전을 못 하겠다. 좋아하던 음식을 못 먹고, 쳐다보지도 않던 된장찌개, 간장게장 등 남편이 좋아하던 음식을 너무 먹고 싶어서 못 먹으면 서글픈 기분이 드는 신기한 경험을 많이 했었다.이때 먹덧도 같이 왔던 거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주변에 물어보니 그냥 먹고 싶은 거지 먹덧은 아니라고 해서 조금은 안심했었다. 입덧과 먹덧이 같이 왔더라면 어땠을지 상상할 수도 없다.입덧과 먹덧이 같이 겪은 임신부분들이 정말 존경스러울 뿐이다. 아직도 기억나는 임신 후 첫 외식은 매콤한 샤브 칼국수.임신 후 고기 생각만 해도 속이 울렁거렸는데 갑자기 이게 먹고 싶어서 입덧 수액을 맞은 후 남편과 바로 가서 맛있게 먹었었다.그런 다음 소화할 겸 인천대공원에 가서 자전거를 타고, 산책도 하면서 아이와 함께 온 가족을 보며 우리도 내년에는 유아차를 끌고, 함께 벚꽃을 보러 오자고 남편과 얘기를 나누었다(이때는 임신부에게 자전거는 타면 안 좋다는 것을 몰랐었다).이날 임신 기간 중에 본 벚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기도 하고, 출산예정일을 받은 날이기에 더욱 기억이 남는 거 같다. 아침에 입덧약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해서 출근 4시간 전에는 무조건 먹어야 했고, 마지막 약은 자기 전에 먹어야 그나마 밤에 편하게 잘 수 있었다.늦잠으로 인해 입덧약을 늦게 먹은 날은 하루 종일 숙취에 시달리는 것처럼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이런 날은 학원에서 아이들이 먹은 간식 냄새, 강의실 냄새, 공기청정기 냄새, 길거리 음식 냄새에 아주 곤욕스러웠다(입덧약을 복용 해도 입덧이 심한 날은 학원에 양해를 구하고, 그 날 출근을 미루기도 했었다).특히 출근 전 점심은 밥을 가장 먹기 싫은 시간이었다.입덧약 효과가 나지도 않았고, 혼자 먹는다는 게 더욱 싫었다. 그걸 아는 남편은 점심시간에 시간이 되면 항상 먹고 싶어 하는 맛있는 걸 사다 주거나 집 반찬을 꺼내서 밥을 차려주었다. 주말에는 입덧약을 안 먹고 버텨보려고, 참아본 적도 있다.주변에서 그냥 빨리 약 먹으라고 할 정도로 냄새만 맡으면 화장실로 달려가거나, 울렁거리는 속 때문에 두통이 잦았었다.속이 울렁거릴 때는 자극적인 과자나 시원한 음료, 탄산수가 효과 최고였다. 갑자기 단 음식이 당길 때는 초코에몽에 코코볼을 섞어 먹기도 했고, 매콤 음식이 당길 때에는 좋아하는 닭발집에서 무뼈닭발과 오돌뼈를 포장해 오기도 했다.이럴 때는 입덧이 끝난 건가? 하며 오만한 생각도 했다.어느 날은 갑자기 밤 9시가 넘은 상황에서 롯데리아 불고기 버거를 먹고 싶은데 집 근처 롯데리아가 다 문을 닫아서 차로 30분 정도 나가서 사가지고오면서 차에서 먹고, 집에 와서 또 먹었던 적도 있다.체를 할까 봐 걱정되기는 했지만 당장은 먹고 싶은 게 먼저였기에 행복해하면서 먹었던 기억이 있다. 입덧으로 골고루 음식을 챙겨 먹지 못하니 영양제와 아기 두뇌 발달을 위해 아몬드, 면역력을 위해 제철 과일도 챙겨 먹기 시작했었다.우리 아기는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를 소망하면서 말이다. 입덧은 대부분 16주 정도면 끝난다고 들었다.과장님조차 매번 진료 때마다“요즘 입덧은 어때요? 조금 좋아졌나요? 약을 좀 줄여보려고 하는데 어때요?”라고 물어보셨고, 나는 “입덧이 끝나기는 하나요?”라고 반문했었다. 초기에는 당연히 입덧은 16주까지만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중기가 되어도 계속되는 입덧에 “설마 만삭까지 입덧을 하겠어?”라는 불안감이 들 때도 있었다.이게 현실이 될지 모르고 말이다.특히 같이 생활하는 고양이 냄새에 대해 임신 사실을 알기 전부터 예민했는데, 화장실 모래 냄새를 맡고 헛구역질했다.이때는 그냥 장난스레 “우리 냥이들 응아 많이 해서 그런가 봐.”하고 넘겼었는데 모래 냄새부터 시작해서 고양이들 사료 냄새, 털 냄새 모든 것에 반응하기 시작했다.한 번은 고양이들 습식 사료(캔)를 주기 위해 개봉했다가 바로 화장실로 직행한 적이 있었다. 아픈지 걱정이 되었던 것인지 화장실 안과 밖에서 기다리는 고양이들에게 괜시리 미안해 코를 휴지로 막고 주기도 했다. 고양이 간식에는 고기와 참치, 연어로 이루어진 게 많은데, 고기와 해산물 냄새에 특히 예민하게 반응했던 코는 남편이 출근 전 간식 주는 냄새에도 깨고는 했었다. 아마 고양이들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냄새를 맡기만 하면 헛구역질을 했으니 말이다. 화장품 냄새 때문에 민망했던 적도 있었다. 퇴근 후 집으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는데 향수와 향기로운 화장품을 많이 쓰셨던 것인지 타시는 순간 냄새가 너무 역해서 그 분께 죄송하지만, 눈 앞에서 헛구역질을 하고, 남편 품에 얼굴을 박고 내리지도 못하고 힘들어했던 적이 있다.엘리베이터를 내리면 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집까지 1층 남은 상황에서 그분이 옥상을 가기 위해 타신 것이기에 차마 내려서 다른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여력도 계단으로 걸어서 올라갈 여력도 남아있지 않았었다. 우리는 아기가 나중에 누구 입맛을 따라가게 될지 매번 논의 아닌 논의했다.한식을 좋아하면 엄마인 나와 먹을 수 있는 게 줄어들 것 같아서 속상했고, 양식을 좋아하면 아빠인 남편과 국밥을 못 먹게 되어 아쉬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입덧을 하면서 입맛은 점점 남편이 좋아하던 한식으로 바뀌었고, 매운 카레, 된장찌개, 간장게장, 양념게장 등 자극적이면서도 한식 종류의 음식만 찾게 되었다.남편은 한식을 같이 먹을 수 있어 기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기가 한식, 양식, 중식, 일식 다 골고루 잘 먹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했던 것 같다(참고로 남편은 느끼하고, 단 음식 빼고는 골고루 다 잘 먹는 스타일이다).태아에게 영양분을 주기 위해서는 골고루 먹어야 한다고, 엄마와 할머니들께 매번 들었다. 하지만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고, 상상조차 힘든 음식들.특히 고기는 더했다. 고기 킬러였던 나는 삼겹살을 먹지 못해 운 날도 있었다.아기에게 ‘엄마도 먹고 싶은데 왜 못게 해! 엄마도 고기 먹고 싶어’라고 하면서 말이다.그 덕에 남편도 회식 때 1~2번 정도 고기를 먹고 왔었고, 집에서는 감히 엄두도 못 냈다.내가 엄마가 되기 위해 입덧을 극복하려고 노력을 할 때 나의 엄마도 입덧에 관한 내용을 많이 찾아보고, 노력해주셨다.“입덧 심한 사람이 이거 먹으면 좋다더라, 너무 힘들면 이거라도 먹어보자.”라며 골고루 먹을 수 있도록 응원해 주시고, 냄새가 역하지 않은 제품들을 장 봐오시고는 했다.한번은 구워진 양념 갈비는 한 입이라도 먹을 수 있을거라고, 퇴근 전에 미리 구워 두신 적이 있었다.아기도 정성을 알아차린 걸까?5조각이나 먹을 수 있었고, 이때 너무 기뻐서 “아기도 고기를 좋아하나봐!”라며 기뻐했었다. 매번 바뀌는 입맛은 나조차도 적응하기 어려웠는데 같이 지내는 남편도 힘들었을 것 같다.열이 많은 남편은 여름이 오기 전부터 에어컨을 켰었는데 임신하면서 내가 더 열이 많아져서 남편과 붙어 자기 위해서는 선풍기가 필수템처럼 꼭 있어야만 했다.어느 날 자는데 새벽에 이상한 꿉꿉한 냄새가 나길래 깨어보니 나한테서 나는 땀냄새여서 너무 당황스럽고, 갑자기 서글펐었다.임신하면 체취가 변한다던데 ‘내 몸 냄새가 이렇게 심했나 싶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이런 냄새를 맡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일어나서 샤워하고, 임신부 로션이 아닌 좋아하던 로션을 바르며 ‘깨끗하게 자주 샤워하면 이런 냄새가 나지 않을 거야.’라며 자기 위로를 했다.아침이 되고, 남편이 출근하길래“내 몸에서 냄새나?”“무슨 냄새? 향기?”“장난치지 말고, 나 몸에서 이상한 냄새 안 나?” 라고 물어보았다.남편은 그런 냄새는 전혀 못 맡았다고, 오히려 나려면 자기 몸에서 나야 한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향기로운 냄새만 난다고 토닥여 주었다. 남편의 달콤한 말들 덕분인지 희한하게도 이날 이후로 정말 땀 냄새가 심하지 않은 날 빼고는 이게 냄새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역하지 않게 느끼게 되었다. 어느 날부터 남편이 속이 울렁거리고, 입맛이 없다고 회사에서 점심도 안 먹고 올 때가 있었는데 그냥 속이 좀 안 좋은가보다고 생각하고, 소화제를 먹고는 했었다.그게 남편이 하는 입덧인 줄 모르고 말이다.꾸바드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남편 입덧. 우리 남편은 아닌 줄만 알았다.홍쓴부부 유튜브를 보고 난 뒤 남편도 입덧한다는 걸 알아채고, 같이 매실청 에이드를 만들어 마시며 나는 입덧 선배님이니까 후배님께 입덧에 좋은 걸 알려드리겠다며 비스킷과 입덧 사탕도 나누어 주고는 했었다.남편 입덧은 남편이 아내를 정말 사랑할 때 같이 한다던데 우리 남편은 정말 찐 사랑인가 싶었다.아이가 생기면서 당연히 내가 두 번째일거라고 생각했는데 항상 아내가 첫 번째라고 말해주는 사랑꾼 내 남편이 있었기에 힘들었던 9달 입덧을 버틴 것 같다. Epilogue출산 후에는 돌아올 것 같았던 식성이 돌아오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다.식성이 바로 돌아오는 사람도 있고, 평생 그 음식을 못 먹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좋아하던 개불과 산낙지는 아직도 도전하지 못하고 있는데,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든다.